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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냥이 Oct 26. 2024

셋에서 둘로.

그녀는 4개국어 능력자




집에서는 나름대로 독학으로 공부를 이어 나갔다.

수업에서 쓰는 교재 외에 내가 미리 보고 있던 책과 동영상 강의가 있었기에 그건 그거대로 이어가며

외우고 잊어버리고를 계속 반복하다 보니 어느 순간 일본어가 너무 재밌어지는 순간이 찾아왔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정말 일본어 무지렁이였다.

그냥 일본어 자체에 관심이 없었다는 것이 맞겠다.

어린 시절 보아왔던 수많은 일본만화는 모두 더빙판이었고, 자라오면서도 X-japan의 노래 같은 J-pop 음악은 관심도 없었다. 좋아하는 건 지브리 풍의 일본 애니 영화뿐이었는데, 그마저도 일본어를 관심 있게 들어본 적이 없으니 그냥 ‘지금 내 귀에 들리는 것이 일본어다’라는 정도였다.

그런 내가 새삼 공부를 시작하고 단어들을 외우면서 세상에 이게 이 뜻이었어? 놀랐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애니 시리즈 <이누야샤>의 이누 뜻이 개인지도 몰랐고, 사케 <간바레 오또상>이 아빠 힘내세요 라는 것도 몰랐으니 더 이상 말을 않겠다. (아니 대체 일본 여행은 어떻게 다닌 건지…)


그런 무지렁이 왕초보 학생에게 일본어 수업 가는 길은 더할 나위 없이 즐거웠다. 완전 기초 단계인지라 어려운 부분도 별로 없었다. 왕초보를 위한 교재에 한자는 최대한 배제되어 있었으니, 히라가나만 읽을 줄 알면 되는 이 과정에서는 일본어가 꽤 쉬운 언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선생님은 듣기와 말하기가 먼저 되어야 한다고 이론보다는 영상 수업을 많이 하셨고, 내가 집에서 독학하는 부분과는 분명한 차별점이 있었기에 이렇게 병행해서 공부하면 나도 금방 일본인과 대화하는 수준이 될 수 있을 거라는 크나큰 착각에 빠졌다. ‘한자’와 ‘동사 변형’이라는 큰 시련을 마주하기 전까지는…. 짧지만 행복했다.


그렇게 일본어 수업 세 번째 시간이 되었는데 내 옆자리가 비어 있었다.

선생님은 이제 맞은편 젊은 여성분과 (두 번째 시간에 따님이라고 밝히셨다!) 나, 둘이서 수업하게 되었다고 하셨다. 옆자리 예쁜 아주머니는 이제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고 하셨다.

사실 두 번째 수업에서 유독 힘이 없어 보이시긴 했다. 그날 수업 소감을 말하는데 전날 잠을 못 자서 너무 피곤하기도 하고 생각보다 수업이 어려웠다고도 하셨다. 그만두신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두 번의 만남 이후로 그분을 볼 수는 없었고, 그렇게 나와 따님 둘만의 수업이 진행되었다.

따님의 이름은  김윤서(가명). 윤서 씨는 이제 20살이 된 새내기 대학생이고 명문대 노어노문학과에 재학 중인 재원이었다. 수업이 끝나고 바로 과외 알바를 하러 간다고 나가기도 했는데 그 알바는 고3 수험생 영어 과외였다. 내가 스무 살 때 했던 알바와는 달랐….

가만 보자. 그럼… 영어 과외를 할 정도면 영어는 수준급인 거고, 노어노문학과이니 러시아어도 공부 중인 거고, 일본어는 청해가 되는 수준인 거면…. 한국어 포함 4개 국어 가능자인 것이었다.


응? 여기 왕초보 반 아니었나.

나, 이대로 자신감 잃지 않고 지속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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