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심삼일이 취미인 나, 사실 작년 여름에도 일본어 공부를 아주 잠깐 했었더랬다. 그 결심은 히라가나를 제대로 외우기 전에 끝나고 말았지만.
이번엔 다르다. 중도 하차란 없다.
1년 반 만에 JLPT 1급을 취득하고 일본인과 자유롭게 프리토킹을 하는 성시경님의 공부 자극 영상을 보며, 내가 머리가 나쁘긴 해도 시간은 더 많지! 라며 1년 반 후 1급까진 아니더라도 2급 정도 수준의 나를 상상하면서 히라가나를 외우고, 가타카나를 외우면서 기초를 다져나갔다.
사실 언어라는 것이 충분히 독학으로 가능하다고 생각은 한다. 모든 장르가 그러하겠지만 독학의 단점은 꾸준하기가 어렵다는 것이고. 봐주는 사람이 없으니, 발음과 억양이 산으로 가는지 강으로 가는지도 모른다. 아직 입도 뻥긋 못하는 내가 발음 교정을 받을 수준까지 가는 건 한참 먼 미래의 이야기이니 접어두고…. 이 열정, 지치지 않고 계속하기 위해선 그만두지 않을 장치가 필요했다.
그리고 그 다짐 유지를 위해서는 <현질>만큼 강제스러운 것이 없다.
그렇게 야심 차게 나를 도와줄 일본어 선생님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주변에 일본어 학원은커녕 주민센터나 문화센터에서 하는 일본어 강좌조차 없었고, 내 선택지는 소규모 개인 교습이나 온라인 화상 전화, 그리고 학습지로 좁혀졌다. 어느 정도 기본기가 잡히기 전까지 화상 전화는 전혀 소용이 없을 것 같았고, 학습지는 내가 과연 밀리지 않고 꾸준히 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마지막 선택지인 소규모 일본어 교습을 찾아보다 포기하고 혼자 신나게(사실 쓸쓸히) 일본어 공부를 하던 어느 날, 지역 카페의 1년 전 글에서 일본어 강좌 모집 공고를 발견했다.
아직도 수업하고 계시냐는 물음에 대기 중인 한 분이 계시고 내가 들어오면 두 명이라 바로 오픈 가능하다는 답장을 받았다. 그로부터 이틀 후 나는 집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선생님댁으로 가서 수업을 받기 시작했다.
수업은 선생님 댁 거실에서 진행되었다.
주방 바로 옆에 붙은 식탁 겸 공부 테이블이 우리의 수업 장소였는데, 바로 옆에 붙어있는 책장에는 경제서와 소설, 다양한 장르의 책들이 빼곡히 꽂혀있었다.
인원은 처음 이야기를 들었던 나 포함 두 명이 아닌 맞은편 미리 와서 앉아 있던 젊은 여성분까지 세 명이었고, 나는 처음엔 한 명이 그새 더 신청했나 보다 생각했다. 근데 슬쩍슬쩍 선생님과 여성분을 번갈아 본 결과(대놓고 볼 수는 없었다) 나는 둘이 모녀지간일 것이라는 잠정 결론을 내렸다.
첫 수업인지라 역시나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빠질 수 없는 자기소개 타임이 이어졌다.
내 옆자리에는 예쁘신 아주머니가 앉아계셨는데, 본인은 딸만 셋이고 그중 고등학생인 첫째 딸이 일본 애니메이션을 좋아해서 일본 여행을 자주 하다 보니 일본어의 필요성을 느껴서 수업을 듣게 되었다고 하셨다.
내 차례다. ‘죽기 전에 외국어 하나를 해보고 싶었고 어쩌다 보니 가까운 게 일본이라 여기에 앉아있어요.’라고 말은 못 하고 그냥 아들 둘을 키우는 아줌마고 일본 여행에서 제대로 써먹고 싶어서 공부하게 되었다고 둘러 말했다.
나는 그즈음 히라가나를 겨우 뗐고 일본어 첫걸음 책과 동영상 등을 보며 ‘오하요 고자이마스’와 ‘곤니찌와’와 ‘곰방와’의 차이점을 알게 되었던 때였는데, 아침 인사, 낮 인사, 저녁 인사를 구별도 못 하는 무지렁이라는 말은 차마 하지 못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따님(어디까지나 내 추측)으로 보이는 젊은 여성분은 일본어를 좀 더 공부하고 싶어서 수업에 참여하게 되었고, 일본어 애니나 드라마 등은 많이 접해서 청해는 어느정도 가능하다고 했다. 청해 외엔 아무것도 안된다는 뒤의 말은 내 귀에 들리지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