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새치기는 큰 파장이 되어
수술 이후 가장 많이 받는 검사 중에 채혈은 빠질 수 없는 항목인 것 같다.
가장 어려운 관문이자 두려운 곳이다.
친절한 선생님들의 말투와 표정에도 불구하고 유난히 주사가 너무 무섭다.
수술은 수면마취로 기절하니 기억 안 나서 아픈지 모르고 나중에 회복할 때만
고통스럽지만
채혈 주사는 맞아야 하는 공포가 그대로 전해진다.
그러나 그 이벤트가 일어나기 전에 해야 하는 필수적인 요소.
바로 순번표 뽑기와 기다림이다.
대형병원만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순번을 뽑고 채혈 안내는 또 따로 접수증을 받는 과정이다.
그런데 바로 이 순간 묘한 상황들이 벌어진다.
아마 채혈뿐만 아니라 기다림에 있어서 이런 상황들은 늘 목격되기는 했지만
분명 순번표가 있음에도 어김없이 무시하고 질문하고 등록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아주 극소수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무시할 정도면 기분이 상하지 않지만
이게 한번 그런 사람이 등장하면 마치 기다렸듯이 이런 현상들이 일어난다.
질서의 붕괴는 이처럼 작은 시작에서 업무가 중단되는 상황까지도 만든다.
어디나 사람들이 모이면 여러 가지 모습을 보인다.
다양하다고 표현해도 되고 서로 다른 개성과 더불어 다른 수준의 상식의 잣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겠지만.
어찌 되었던 그렇게 새치기하는 사람들과 그걸 지적하는 사람들, 지적하고 싶지만 괜히 시시비비를 논하기
싫은 사람들, 같은 마음으로 그 순간 새치기에 동조하는 사람들. 묵묵히 기다리는 사람들.
한 번의 새치기는 많은 파장을 낳는다.
안타깝게도 그런 일을 일으키는 대다수는 ‘어른’이다.
아이들에게 상식을 말하고 규범을 말하고 도덕을 말하는 소히 ‘어른’
나 역시 그들 중에 하나이다. 채혈실에 새치기 안 할 뿐이지
살면서 새치기 같은 일을 안 했다고 장담하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는 살면서 타인에 대한 비판과 도덕을 잘 언급하지만
정작 본인에게는 그런 잣대로 평가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차라리 그런 윤리에 얽매이지 않는 새치기가 당당한 사람들이 더 이득을 보면 사는 세상 같아 보인다.
어설픈 윤리의식보다 이익을 챙기는 게 좋아 보일 때도 있었다.
권선징악.
솔직히 안 믿는다.
어릴 때는 모르겠지만 조금 나이 들어 살다 보니 사기당한 사람은 힘들게 살지만 사기 친 무리들은 잘 먹고 잘 산다.
그러나 이런 세상에 모두가 그렇다면 그야말로 지옥 그 자체일 것이다.
아직도 선한 사람들이 많이 있기에 세상이 유지되고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희망이 아주 없는 건 아니다.
작은 새치기를 하지 않고 아이들에게 그대로 가르치고 어른들이 실천한다면
그로 인해서 큰 새치기가 없는 세상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 시작은 남에게 권면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먼저 적용하여 실천하며 살아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