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10월 21일 아침, 늦잠을 자고 일어나서 TV를 틀었는데 뉴스 속보가 쏟아지고 있었다.
성수대교가 무너졌다는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성수대교는 평소와 다름없이 출근길 사람들을 태우고 있었다. 강 위를 가로지르는 다리는 늘 그 자리에 있었고, 누구도 그날이 마지막이 될 거라 상상하지 못했다. 버스 안에는 등교하던 학생들이 있었고, 택시에는 생계를 위해 하루를 시작하는 가장이 타고 있었다. 모두에게 그 아침은 “평범한 하루의 시작”이었다.
그러나 다리는 갑자기 무너졌다. 쇳소리가 찢어지듯 울렸고, 도로는 아무런 예고 없이 공중에서 사라졌다.
차량들은 그대로 한강으로 떨어졌다. 물속으로 가라앉는 순간까지도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왜 이런 일이 자신에게 일어나는지, 오늘 저녁 집에 돌아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희생자 중에는 수학여행을 앞두고 교복을 입고 버스에 타고 있던 여고생도 있었다. 아침에 서둘러 나가느라 “다녀올게요”라는 말을 건네지 못한 것이 어머니의 평생 후회로 남았다 나중에 인터뷰도 있었다.
책상 위에 그대로 놓인 교과서와, 아직 쓰지 않은 공책은 그 아이가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더욱
선명하게 만들었다.
한 가장은 막 취직한 지 몇 달 되지 않아 가족을 부양하겠다는 희망에 차 있었다.
그의 아내는 사고 당일 저녁까지도 남편이 늦는 줄로만 알았다.
뉴스에 나온 붕괴 장면을 보면서도 “설마”라고 되뇌었고, 이름이 불리지 않기를 기도했다.
그러나 명단 속 한 줄의 이름은 한 가정을 송두리째 멈춰 세웠다.
유가족들은 사고 이후 또 다른 싸움을 시작해야 했다. 사랑하는 이를 잃은 슬픔도 견디기 힘든데,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설명을 요구해야 했다. 책임은 흐릿했고, 사과는 늦었으며, 보상은 슬픔의 크기를 담아내지 못했다. 부모를 잃은 아이들은 너무 이른 나이에 어른이 되었고, 자식을 잃은 부모의 시간은 그날에 멈췄다.
성수대교 붕괴는 단순한 사고가 아니었다. 부실한 관리와 무책임이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무너뜨리는지 보여준 비극이었다. 다리는 다시 세워졌지만, 희생자와 가족들의 삶은 결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그날의 한강은 많은 것을 삼켰고, 우리 사회는 너무 늦게서야 안전의 의미를 되묻게 되었다.
지금도 성수대교를 건너는 사람들 중 누군가는 그날을 기억한다. 이제는 유가족들만 기억할 이름 없이 지나간 희생자들, 그리고 남겨진 가족들의 안타까운 사연은 다리 위의 바람처럼 보이지 않지만 분명 존재한다.
그 기억을 잊지 않는 것, 그리고 같은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는 것만이 그들에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애도일 것이다.
그럼에도 어제 그 다리를 여전히 건너면서 생과사의 한순간이 엉겨진 채 살아가고 있다.
일생에서 사고 없이 마무리하는 평범한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엄청난 행운일지도 모른다.
비단 성수대교뿐만 아니라 누군가에게 비극적인 장소가 누군가에게는 희극적인 장소가 된다는 것은
수십 년, 수백 년, 수천 년을 밟고 살아가는 인생들의 흔적들이 사라지고 남겨지면서 반복되면서도
전혀 다른 삶의 지표가 되기 때문인지 모른다.
이제 우리 시대도 마지막 종착으로 향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세월이지만 이것을 이어가는 미래에 대해
오늘 우리가 주인이 아니라 미래에 빌려 쓰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좋게 돌려주는 일들을 하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