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오랜 경력이 있기는 하죠
평생 직업이 될 거라고 생각을 딱히 해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그럴 줄 알았는데
여의도에서 19년 정도 같은 일을 해왔는데 한순간 일을 아예 하지 못하는 상황까지 갔다가
이제는 전혀 해보지 않은 일을 하고 있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배움을 통해서 지식과 경험을 쌓아서 사회로 나아가는 과정을
밟게 되는데 그중에는 내가 해왔던 일을 위해서 배우는 과정도 있다.
문득 순찰을 하다가 강의실에 붙어 있는 교육과정을 보니
새삼 내가 지난 19년 동안 해온 일을 누군가는 이제야 시작하는 단계에 있고
새로운 사람들이 쌓인 노하우와 새로운 변화를 결합시켜서 또다시 대중들에게
많이 선보일 두근거림이 살아 있는 것 같다.
특히 오랫동안 다큐멘터리 제작 PD로 일을 하면서 다양한 나라와 민족, 문화 그리고
상황들 속에서 함께 잠시 머무는 시간, 동화될 것 같은 시간들, 모두가 좋았다.
이제는 모두 접어 두고 새로운 상황에 적응해야 하는데
모든 장비를 다 정리하고 미련 없이 떠나왔다고 생각했고 새로운 나의 건국을 위해서
전진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가끔 살짝 뒤돌아보는 날 보게 된다.
브런치에 도전하게 된 것도 그러한 몸부림에서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었다.
물론 글을 쓸 수 있기까지는 4번의 탈락이 있었다. 4전 5기. 끝에 브런치에
나의 이야기를 쓸 수 있게 되었지만 어떤 내용을 써야 할지 딱히 정한 게 없었다.
사고 이후 가장 많이 든 생각은 "무능하다"였다.
19년간 한 가지 일을 해오면서 다른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보니 막상 이런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떤 분야이든 마찬가지겠지만 대신할 사람들은 많고 더 뛰어난 사람들은 계속해서
등장하기 때문이다.
지금 느리게 흘러가는 듯한 생활이 오히려 약간 더 스트레스가 있기는 하다
이왕 할 거라면 1등은 아니어도 인정받는 위치까지는 가야만 하는 성격도 한몫하겠지만
보통 그런 과거에 대해서 경험의 노하우를 말하는 게 가장 손쉬운 글쓰기 소재일 수 있다.
그러나 내겐 강제로 멈추게 된 과거, 마무리 짓지 못한 연극 무대 같은 상황이라서
외면했던 것 같다.
과거를 외면하고 나아가는 미래는 없고 그렇게 행복을 만들 수 있는 오늘이 없을 텐데
꽤 오랜 시간 외면하고 살아온 것 같다.
긍정적으로 살아가려고 했는데 실상 외면하고 웃고 있었던 피에로 분장 같은 마음이었다.
그래서 오늘은 털어내고 앞으로 나아가고 싶다.
그게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모르지만 미련은 미련대로 현실은 현실대로
꿈은 꿈대로 - 모든 순간을 잇는 나 자신을 되찾아 살아내야지.
지금은 지금대로! 오랜 경력이 일하는데 도움이 될지 안 될지 따지기보다는
현재 일에 최선을 다하고 싶다.
이것도 내 인생의 다큐멘터리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