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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한 Jan 11. 2021

님아, 그 면을 불리지 마오.

육아차차 육아 육아 #18

    눈물 젖은 빵.

    아마 요즘 세대는 알지도 못할 슬픈 비유다. 나도 전설처럼 듣기만 했을 뿐 먹어보긴커녕 본 적도 없다. 다만 직간접적으로 비슷한 다른 걸 경험하긴 했다. 이른바 불어 터진 라면. 

    취향에 따라 나뉠 수는 있겠지만, 라면은 국물이 뜨겁고 면발이 붇지 않았을 때 가장 맛있다. 밀가루로 만든 유탕면이라는 게 국물에 오래 노출되면 불어 터지게 마련이니까 결국 조리 후 먹기까지 시간이 짧을수록 좋다는 얘기다. 마음먹고 차린 정찬도 아닌 5분 정도면 완성되는 단순한 요리임에도, 이 지극히 간단한 원칙을 지키지 못하는 경우는 정말 불가피한 상황일 거니 서글픔은 더 가중될 거다. 

    이를테면 초기 육아의 정신없는 나날 말이다. 

    아내와 내가 이 단어의 서러움을 처음 만난 건, 직접 경험은 아니었다. 우리보다 먼저 결혼하신 아내의 언니, 그러니까 내게 처형되시는 분의 육아 조언 중 나온 경험담이었다. 출산을 앞둔 아내를 격려차 방문하신 처형은 육아 선배다운 피가 되고 살이 될 조언들을 쏟아내셨다. 이미 두 아이를 가진 경험자의 살아 숨 쉬는 가르침을 베푸시다 문득 생각난 듯 그녀가 말했다.


    “애 낳고 당분간은 야식으로 라면은 먹지 마. 슬퍼져.”

    

    사연은 이러했다. 첫 조카가 아직 돌이 되지 않았을 때, 어느 날 일찍 잠든 아이를 보며 그녀는 야식으로 라면을 끓이셨단다. 따지고 보면 야식도 아닌 게 형님이 안 계셨던 그 날 저녁을 거르시고 이제 막 끼니를 때우시던 차였다. 하지만 으레 그렇듯 찰나의 즐거움을 용납할 리 없는 작은 악마는 깨어 울기 시작했고, 생각보다 진정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결국에 사태가 수습됐을 때는, 이제 막 한 젓가락 뜨려던 라면은 퉁퉁 불어 국물과 한 몸이 되어 있더랬다. 단 한 번도 육아가 슬픈 일이라 여기지 않았던 그녀는 그날 펑펑 울며 울분을 토했다고 회상했다. 아니, 실제 표현은 좀 더 격앙돼 있었다.


    “라면 냄비 채로 싱크대에 처박아 버렸어. 남편도 없이 너무 짜증 나고 서럽더라고.”


    듣고 보니 정말 서러울 일이었다. 그리고 한 가지 다짐을 했다. 아, 라면은 절대 불리면 안 되겠구나.

그 뒤로 우리에게도 위기가 한 번 직접 찾아왔다. 우린 그녀의 뼈 아픈 조언을 무시하고 라면을 끓였고 딸아이는 귀신같이 깨어나서 우리의 취식을 방해했다. 난 재빨리 불을 끄고 면만 건져냈다. 국물이야 나중에 다시 데워 끼얹으면 됐다. 면을 불리지 않는 게 더 중요했다. 그렇게 아내가 깨어있는 아이와 씨름하는 동안, 나는 라면과 사투를 벌였다. 육아 초기의 날카로운 기억을 남기게 하고 싶지 않았다. 모두 수습된 후, 다행히 못 먹을 정도는 아닌 수준에서 우린 남은 야식을 즐길 수 있었다. 다 처형 덕이었다. 그녀가 아니었으면 우리도 꼼짝없이 당할 처지였다.     


    혹여 이 글을 읽는 초기 육아의 위대한 전사들이여, 가능하다면 야식으로 라면은 피하시길 조언한다. 처형께서 하신 말씀이 옳았다. 만약 너무 먹고 싶어서 견딜 수 없다면, 얼른 끓여서 빨리 먹어 치우는 게 가장 낫다고 말하고 싶다. 두 사람이니 번갈아 먹거나, 제삼자에게 부탁하는 방법도 가능하겠지만, 원래 야식이라는 게 둘이서 속닥거리며 먹는 게 제맛이니 그걸 포기할 수 없다면 결국 속도가 생명이다. 

    진짜 부득이하게 아이가 깬다면, 최대한 이른 시간 내에 면발을 국물과 분리하시라. 요즘에야 그렇지 않지만 다 예전 학교 매점에서도 이뤄지던 조리법이다. 온도로 인한 과도한 익힘만 잠시 멈춘다면, 만족스러울 정도는 아니라도 어떻게든 라면은 부활할 수 있다. 제발 허투루 듣지 말고, 이 말을 새겨 명심한다면 굳이 하지 않아도 될 경험 하나를 막을 수 있을 것이다.

    불어 터진 라면이야 뭐 버리고 새로 끓이면 되지 않느냐고? 그게 아니다. 그 못 먹을 걸 버리고 있노라면 없었던 서러움도 밀려올 거다. 정 궁금하면 한 번 경험해 보시라. 굳이 권하고 싶진 않지만. 어쩌면 언젠가 이 싱거운 글이 엄청 고마워질 날이 올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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