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광한 Jan 18. 2021

뼈를 내어주고 살을 취하다.

육아차차 육아 육아 #22

    개를 포함한 애가 셋이다 보니 불러야 할 이름도 당연히 셋이다. 그러다 보니 많이들 그러하듯, 우리 역시 아이들의 이름을 종종 헷갈린다. 아들을 개의 이름으로 부르든, 혹은 사고를 치는 개를 급히 아들의 이름을 불러 제지하든. 그러고 보니 유독 둘을 자꾸 헷갈리는 거 같긴 하다.

    좌우지간에 자주 혼동하고 실수하곤 한다. 새삼 최근 들어 부쩍 번호 기억하기도 쉽지 않고, 깜빡거리는 것도  잦아졌다. 나야 원래 정신이 없던 인간이어서 젊어서도 그랬다. 하지만, 아내의 이런 실수를 만나면 왠지 더 마음이 아프다. 해가 갈수록 심해지는 건망증과 미세하나마 둔해진 총기가 느껴질 때면 그 속상함은 더해진다.


    그녀는 참 똘똘했'었'다. 지금도 충분히 똑똑하지만, 연애 시절, 아니 불과 출산 전까지만 해도 두뇌 회전이 가히 살벌했었다. 서글프게도 그 시절은 추억에만 남고, 정작 영특함은 아이들에게 고루 빼앗겨 버린 게 아닌가 싶을 때가 간혹 있다. 예를 들자면 몇 해 전 준비했던 간단한 자격증 시험에 유달리 어려움을 호소했던 경우 말이다. 기어이 합격하기는 했지만, 아이를 낳기 전까지는 평생 시험이라고는 큰 어려움 없던 사람이 그 고생을 하는 게 참 안타까웠다. 아이들 때문에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하기는 했다. 하지만 아내 본인이 느끼기에 예전 같은 집중력이나 기억력이 아니라고 엄청 슬퍼했더랬다.


    비단 영민함의 둔화에만 그친다면 그나마 나을지 모르겠다. 그녀는 겨울이면 극심한 수족냉증에 시달리게 됐다. 이것 역시 출산 전에는 없던 증상이다. 정확히는 첫째까지도 딱히 겪지 않았지만 둘째를 낳은 후 매년 겨울이면 발목 근처가 '너무 지나치게' 시리고 아리다고 한다. 마치 아킬레우스의 어머니가 산후조리를 해 준 것처럼 딱 그 근처다. 수면 양말을 신고 뭘 감아도 그렇게 춥다고 한다. 


    해마다 나이를 먹는 것도 서러운데 몇 가지 증상들이 도드라져 괴롭히니 더 재미가 없다. 워낙에 성격 좋고 낙천적인 사람이라 아이들을 보며 위안을 얻는다지만 옆에서 보기에는 그것도 마냥 진실은 아니다. 거저 크는 것만은 아니니 그 과정도 고생스럽기는 마찬가지니 말이다. 

    물론 아이를 낳고 기른다는 게 큰 행복을 주는 건 사실이다. 경험하지 않았다면 미처 상상도 하지 못할 즐거움을 주는 것만으로도 녀석들의 역할은 충분하다. 그냥 잃은 만큼 얻은 것이라 생각이 들면 갑자기 삶이라는 녀석이 넌지시 말을 건다. 그리고는 젠체하며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게 있다며 스스로 공평함을 강조한다. 따라서 행복만큼 잃은 것뿐이라고 우리를 가르치려 든다. 좋다 이거다. 그런데 등가교환이라고만 따진다면 오히려 속상하다. 그녀가 잃은 총명함과 발목 건강만큼이라면 아이들이 지금보다 훨씬 더 잘 자라야 한다.

    게다가 실제로 삶은 그다지 공평하지도 않다. 안타깝게도 출산한 아내만 모든 걸 직접적인 타격을 입었으니까. 옆에서 아무리 정서적으로 공감하고 물질적으로 보완하려고 해도 내가 피해 당사자가 아니니 한계는 분명하다. 그렇다 하더라도, 나는 내 역할에 충실할 수밖에 없다. 해 줄 수 있는 게 그것뿐이라면 마음을 가득 담아 그녀가 잃은 DHA와 흘려버린 칼슘을 보충해주는 데 최선을 다해야겠지. 겨우 영양제 잘 챙겨주자는 얘기가 아니란 거는 다들 알 거다.     

이전 09화 발리에서 생긴 일? 괌에서 생긴 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