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차차 육아 육아 #11
주말이 지나고, 혹은 오랜만에 본 서로의 안부를 묻기에 영화는 꽤 근사한 소재다. 근래 잘 나가는 영화라면 더할 나위 없다.
“혹시 그거 보셨어요?”
이 한 마디면 근황을 묻는 시작으로 괜찮은 말 아닌가. 봤다면 자연스럽게 얘기가 이어질 것이고 아니더라도, 분위기를 환기하는 데는 충분하다.
하지만 한동안 우리는, 마주하는 저 질문에 쓸쓸히 웃어 보이며 늘 같은 말로 대꾸했다.
“아이가 아직 어려서…”
그리고는 꼭 말을 이어 붙였다.
“마지막으로 극장에서 본 영화가, 사실 설국열차예요.”
맞다. 그 설국열차. 위대하신 봉 선생님께서 불란서고 미국이고 다 칭송할 엄청난 작품을 만드시는 동안, 우리는 그의 전작을 최신 극장 영화로 소중히 간직하고 있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이 충격적 최신작은 새로운 것으로 바뀔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아예 영화 자체를 보지 않고 살아온 건 아니다. 극장에 간 게 그렇다는 거지, 시간이 많이 지난 뒤라 해도 어떤 방식이 됐든 보고 싶은 영화는 꼭 챙겨 봤다. 게다가 과하게 엄살 피울 것도 아닌 게, 영화관은 자주 갔다. 어른들 좋자고 간 게 아니라 뽀로로나 엘사가 나오고, 이름 모를 바다 생물들이 나와서 그렇지 일상 육아에 지칠 때면 영화관은 좋은 친구였다.
물론 아쉬움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그래도 극장까지 가서 최신 영화를 포스터만 구경하고 돌이키는 발걸음은 꽤나 섭섭하다. 뻔히 끝내주게 재밌는 영화란 걸 들어 아는데 큰 화면으로 보지 못하는 게 이제는 제법 익숙하지만, 한편 여전히 속상하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괜찮다. 우스개로 하는 거지 정말로 마음 깊숙이 슬프고 쓰리고, 신세 한탄할 정도는 아니다. 사실 아이들 영화도 보다 보면 재밌어서 극장 나들이로도 충분하다. 오히려 집중하다 보면 여전히 고생하시는 성우분들의 노고와 새로운 뽀로로를 극장판으로 만들어 주는 제작사에 고마워하기 바쁘지 우리 처지를 돌아볼 새도 없다. 시간이 걸린다 뿐, 요즘은 예전보다 그리 오래 기다리지 않고도 최신 영화를 얼마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견디기 힘든 문제는 있는데 그중 1등은 단연 스포일러다. 우린 영화관에 마음껏 갈 자유를 빼앗긴 거지 영화의 결론을 모른 채 볼 권리를 빼앗긴 건 아니다.
흥행 작은 보통 극장에 오래도록 걸려있다. 즉, 그런 만큼 극장에서 다른 플랫폼에 풀리기까지 시간이 길게 소요된다는 말이기도 하다. 문제는, 으레 영화가 유명해지면 많은 게시판에서 관련한 이야기로 넘쳐나게 마련이다. 인터넷 세상과 단절된 채 살아갈 수만 있다면 별 상관없겠지만, 현대의 사람은 그렇게 살기에는 너무 심심하다.
결국에 우리는 그 시간 동안 영화도 볼 수 없고, 다른 인터넷 유흥도 즐길 수 없게 되어버리는 셈이다. 의도치 않은 매체 금식에 정신이 건강해진다면 얼마나 좋으련만, 당연히 그저 황폐하게 메마르기만 하니 영 별로다. 그래서 우리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방대한 세계관을 좋아하지만 동시에 그만큼이나 미워하게 됐다. ‘인피니트 워’와 ‘엔드 게임’의 기나긴 1년은 정말이지 최악이었다.
영화관에서 혼자 보는 건 싫고, 같이 볼 사람도 서로 외엔 없는 사정이다 보니, ‘올레 tv’와 ‘넷플릭스’가 새삼 고맙기 그지없다. 그들은 최고다. 불쌍한 부모를 위해 콘텐츠를 제공하는 모두 복 받을 거다. 화면이 넉넉히 크진 않더라도 스포일러 피하기의 피폐함을 조금이나마 덜 치르게 해 주는 것만으로 그저 황송할 따름이다.
몇몇 아쉬움을 제외하고선 불편함 없이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게 됐으니, 참 좋은 세상이다. 이렇게 글을 쓰게 된 것도, 마침 iptv에 ‘테넷’이 나온 걸 봤기 때문이다. 어차피 극장에 간 들 한 번에 이해하지 못했을 거라는 주변의 얘기를 들으니 오히려 잘 됐다 싶다. 집에서야 구매해서 n 회차를 공부하면서 보면 되니까. 극장에 반입이 힘든 냄새나고 맛있는 것들 입에 넣으면서 몇 번이고 이해할 때까지 볼 생각이다.
절대로, 영화관에서 크고 선명한 화면에 눈 시려가며, 짱짱한 음질에 귀 아파가면서 본 그들이 부러워서 이러는 거 아니다. 정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