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차차 육아 육아 #33
발달과업이라는 게 있다. 인간이 살아가면서 특정 시기에 성취할 것으로 기대되는 일 정도로 설명이 될 건데, 이를테면 취업이나 결혼 따위 말이다. 우리나라처럼 독특한 환경에선 마치 경쟁하듯 생애 주기표가 나와버리니 이걸 따져 묻는 게 반가울 건 없다. 그런데 아이를 키우다 보면 본의 아니게 발달과업에 예민해지는 순간과 맞닥뜨릴 수밖에 없다.
어느 부모가 남들과 비교하자고 처음부터 마음먹겠느냐마는, 걸음이라도 더디면, 말이라도 늦으면 조바심이 나게 마련이다. 쿨한 부모가 되어 기다려보자고 다짐해도 쉽지는 않다. 그건 아마도 혹시 모를 심각한 문제일까 하는 걱정에서 비롯된 거니 어쩌면 당연한 거다.
우리 역시도 뱃속에서부터 다짐하기로는 절대 비교하지 말자고 했더랬다. 각 발달과업에 있어서 지나치게 문제가 될 정도가 아니라면 아이의 자립을 기다려주자고, 저마다 자기 색깔과 속도가 있게 마련이니 또래의 다른 경우에 빗대는 건 어리석은 일이라고 치부했었다. 하지만 아이가 걷고 말하며 어느 정도까지 자라기까지, 고백하건대 그 다짐대로 꿋꿋이 살지만은 못한 거 같다.
다만 아이가 어느 정도 자란 후에, 감사하게도 크고 심각한 문제가 없이 잘 자라고 있다는 걸 인지한 뒤로는 그런 작은 비교도 삼가려고 노력한다. 아이의 건강한 성장은 물론, 부모가 올바른 양육자이기 위한 필수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런 우리였거늘, 아내가 갑자기 아이에게 발달과업을 부여했다.
바로 보조 바퀴 없이 자전거 타기였다.
딸아이의 자전거가 작아진 게 발단이었다. 엄밀히 따지자면 자전거는 그대로이고 아이가 비 온 뒤 대나무처럼 자라 버린 게 더 큰 원인이겠지만. 어쨌든 자전거를 바꿔야만 하는 그즈음에, 이왕 이렇게 된 거 보조 바퀴가 없는 조금 큰 걸 사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다.
적당한 크기의 네발자전거를 산다면 얼마 동안 타기는 하겠지만 언젠가 다시 바꿔야 하거나, 하다못해 바퀴라도 떼어야 할 거니 맞는 말이긴 했다. 문제는 자전거를 타는 기술은 하늘에서 떨어지거나 나면서부터 익혀져 나오진 않는다는 점이었다. 내 몫의 발달과업이 동시에 생겼다. 비로소 자전거 타기 미션이 단지 아이만의 것에 그치지 않게 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운명공동체로 묶였다.
당당하게 말하자면, 난 운동신경이 없다. 애초에 운동과 그리 친하지도 않은데 나이가 드니 내 몸 하나 마음대로 가누는 것도 힘들다. 그런 내가 아이의 중심 잡기를 도와줄 수 있을지, 일단 부담이 컸다. 아무리 생각해도 못 할 것 같았다. 그렇지만 어쩌겠는가. 자전거를 탈 수 있어야 새 자전거가 생긴다고 이해한 딸아이는 눈을 반짝이며 나를 쳐다봤고, 그 천진한 눈망울은 그 어떤 협박보다도 더 강력했다.
근처 공원에서 주말을 이용해 힘겨운 강습이 시작됐다. 예상대로 내 보잘것없는 운동신경과 그걸 절반의 유전자로 삼은 아이 모두가 어려움을 겪었다. 그래도 난 아빠였다. 주중에 따로 짬을 내기 힘든 상황에서 이번 주말을 놓치면 다음 주까지 넘어가야 한다는 압박도 조여왔다. 내가 배웠던 기억을 더듬어 가며, 넘어지고 다치는 아이를 독려하며 열심히 함께 뛰었다.
아이 또한 의지가 강했다. 처음 몇 번 넘어져 다치니 의기소침해지는가 싶더니 금세 마음을 다잡았다. 둘의 노력이 가상했는지, 아니면 다른 반쪽의 유전자가 더 나았던 건지, 딸아이는 하루 만에 느리기는 해도 단독 주행이 가능하게 됐다.
뿌듯했다. 내가 느끼는 보람도 엄청났지만, 아이의 성취감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이튿날 주말 오후 신이 나서 페달을 돌리는 딸아이를 보니 뭔가 모를 감동도 있었다.
여기에서 끝이 났다면 여기까지의 고생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간과한 게 있었으니 내게 아이가 하나 더 있다는 사실이었다. 발달과업을 이룬 누나를 부럽게 쳐다보는 눈빛이 다시 다짐하게 했다. 이왕이면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나도 감을 잡았을 때, 마저 가르치는 게 더 나았다.
그다음 주, 같은 장소에서 주인공만 바뀐 강습이 다시 이뤄졌다. 좀 더 수업이 힘들어진 건 옆에서 훈수를 두는 졸업생의 오지랖에 신입 수강생의 의지가 꺾인 탓이었다. 게다가 몸이 가벼워서 더 수월할 줄 알았던 아이가 오히려 균형 잡는데 어려움을 내비친 게 결정적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딸아이의 강습 과정에서 손상을 입은 자전거 핸들이 마구 움직인 탓에 아들은 시작부터 더 넘어지고 고생을 해야만 했다.
자전거 대여소서 다시 자전거를 빌리고서야 제대로 된 강습이 진행됐다. 그리고 반복된 우여곡절 끝에 결국 스스로 자전거를 탈 수 있는 아이를 또 하나 만들어냈다. 졸업생은 둘이지만 이뤄냈다는 기쁨은 두 배 이상이었다. 못난 아빠가 무언가를 해줄 수 있다는 건 형언하기 힘든 기분을 느끼게 했다. 직접 부대끼고 같은 목표로 차근히 나아가는 과정은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만족감도 선사했다.
마침 벚꽃이 만개한 볕 좋던 날, 온 식구가 자전거를 타고 근처 강변 공원에 갔다. 흩날리는 꽃잎을 배경으로 나란히 발을 굴리는 녀석들을 보니 왈칵 눈물이 나왔다. 막연히 아이의 발달과업으로 여겼던 이 과제가, 아직도 배울 게 많은 부모에게 커다란 가르침으로 다가왔다. 시작은 아이의 것이었는지 몰라도, 오히려 내가 얻은 게 더 많은 자전거 강습이었다. 그것도 두 번이나 했으니, 꽤 뜻깊은 경험이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