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차차 육아 육아 #35
영화 ‘인사이드 아웃’에서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의 예전 세계들이 점점 무너지는 장면이 있다. 아이들이 옆에 있어 드러내 하진 못해도, 우리는 이걸 보면서 조금 울었다. 그건 기본적으로 영화 진행상 심금을 울리는 부분이라 그랬겠지만, 실은 그 이상으로 감정이 이입되는 무엇 때문이었다.
최근에 부쩍 비밀이 늘어난 딸을 보며 다시금 그 영화를 떠올려 본다. 당시에는 머잖아 그런 날이 올 거라는 막연함이었는데, 조금씩 우리가 함께 구축했던 세계가 붕괴할 거란 조짐을 느끼면서 마음이 조금 더 복잡해졌다. 반가운 거야 이루 말할 수 없다. 때에 맞게 아이의 몸과 마음이 자라고 있다는 증거니까.
하지만 그런 만큼 아쉽기도 했다. 그리고 솔직하게 말해서, 섭섭함보다는 약간의 두려움이 더 앞섰다. 그건 아마도 우리가 준비한 게 터무니없이 부족한 데 반해, 아이의 성장이 너무 성큼 다가왔기 때문일 거다. 빨리 흐르는 시간이 그저 야속하다. 언제 이만큼이나 자라난 건지.
광석이 형의 노랫말대로 우린 매일 이별하며 살아가고 있다. 육아의 세계라는 것도 어쩌면 이별의 순간들로 이어진, 기나긴 세월이다. 걸음이 힘들고 말이 온전치 못하던 아이들이 능숙하게 된다. 지켜보는 우리는 그들의 어설픔과 이별하고 곧 익숙해진다. 그런 익숙함도 오래가진 않는다. 시간이 흘러 당연한 것들과 낯설어지고, 어느새 완전한 작별을 고해야만 하는 시간이 오게 마련이다. 그렇듯 아장거리며 부모에게 의존하던 아이의 세계는 당시에는 영원할 것처럼 단단해 보였지만, 시간이 흐르며 조금씩 부서지고 무너진다. 그러면서 아이가 하나의 인격체로 성장한다. 그 변화의 과정이 다소 받아들이기 힘들 수 있어도, 그게 순리다. 섭섭하다고 어찌할 수 있는 건 아니란 거다.
그런데 이런 복잡한 마음을 위로하는 생각이 스친다. 가만 돌아보면 영화 속 아이 마음속이 무너지는 것으로 끝나지는 않았다는 기억이다. 분명 그 자리에는 새로운 것들이 다시 자리한다. 색이 달라지고 형태가 바뀔 수는 있어도, 무너진 채 살아가는 게 아닌 다른 모습으로 변화된 새로운 세상을 구축하는 거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부모 된 사람으로서 무얼 해야 할지 가늠이 된다. 무너지고 그만이라면 문제겠지만, 아이가 자라면서 자기 세계를 공고히 하는데 뭐가 걱정이란 말인가. 그저 옆에서 그 세계가 엇나가지 않도록, 건강하고 아름답도록 도와주면 그만이다. 아기 때 만든, 함께 만들었다기에는 부모의 입김이 더 강했을 세계를 허물고 아이만의 개성과 특색으로 가득한 멋진 게 만들어지는 걸 구경할 수 있다니, 상상해보니 설레고 감격스럽다.
이쯤 되니 주저앉아 걱정만 할 때는 아닌 것 같다. 오히려 옆에서 거들어야 할 일이 태산인데 싶으니 마음이 급해진다. 아이가 만들어갈 세계를 기대해본다. 우리의 손때가 묻지는 않겠지만 멋지고 훌륭할 거다. 아니, 우리 품 따위 필요 없을 정도로 정말 근사한 걸 만들어낼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