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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미 Jan 28. 2023

소통의 창문으로 더 소중한 ‘나의 구석’

: 가장 ‘나다운’ 곳

                 

글/그림: 조오, 『나의 구석』(웅진주니어, 2020)          




새 한 마리가 빈 구석에 날아들었다. 새는 구석에 앉아보기도 하고, 누워 보기도 했다. 새는 당황하거나 힘들어하지 않았다. 구석이 주는 아늑함을 느낀 것 같다. 자유롭게 날아다닐 때 느꼈던 불안감을 해소시켜 주는 공간이 되었을 수도 있다.  



나는 사각형의 물건들이 있는 공간에서 안정감을 느낀다. 네모 공간 방에 책상도 의자도 침대도 소파도 모두 네모다. 직선들이 서로 부딪힌다는 느낌보다는 직선들로부터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는 느낌을 받는다. 직선과 직선이 만나서 만드는 구석이라는 공간이 특히 직선들이 마무리되는 느낌이라서 나는 더 편안함을 느낀다. 구석자리를 딱 맞춰 놓으면 물건이 제자리를 찾아간 것 같다.



새가 여기저기 탐색하는 것을 보아 아마도 이 구석을 찾아 일부러 들어오기보다는 우연히 들어오게 된 것 같다. 새는 이 낯선 공간에 자신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하나씩 챙겨 나르기 시작했다.   



‘나라면, 이 구석에 무엇을 놓았을까?’



구석은 좁은 공간을 암시한다. 그래서 최소한의 것들로 채워야 하기 때문에 가장 ‘나다운’ 것들로 채우고 싶을 것 같다.



새는 침대, 책과 책장을 배치하고 그 앞에 러그를 깔았다. 그리고 책장 위에는 스탠드를 놓았고, 침대 옆에는 작은 화분을 두었다. 그 작은 화분에 햇볕 대신 스탠드 불빛을 비추어 주고, 열심히 물도 주었다. 새는 화분을 친구 삼아 인사도 건네보고 화분 옆에 앉아 책도 읽었고, 잠도 그 옆에서 잤다. 새가 만든 자신의 공간에서 생명을 가진 것은 화분뿐이었다.    



새가 우연히 날아든 곳은 처음에 아무것도 없던 좁은 구석이었다. 그냥 구석 자리였다. 그 공간을 새가 자신이 필요한 물건으로 채우고 나자 이 공간은 새만을 위한 특별한 공간이 되었다. 주인이 있는 공간이 되었다. 이 구석에 새가 아닌 다른 무엇인가가 왔었다면 이 구석의 모습은 또 달라졌을 것이다. 마치 같은 아파트에도 집집마다 분위기가 다른 것처럼 말이다. 공간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또 다른 모습이다.           



새는 자신이 필요한 것으로 채우고 나서도 또 생각했다.

‘무엇이 더 필요할까?’          



새는 벽에 기하학적인 그림으로 벽을 가득 채워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이 그림들은 마치 문 같기도 하고, 창문 같기도 하고, 벽지 같기도 하고, 타일 같기도 했다. 화분에 쏟던 새의 모든 관심이 그림으로 옮겨졌다. 새는 사다리를 놓으면서까지 벽의 전면에 그림을 그리는 것에 집중했다. 그러면서 음악에서 그 고단함을 위안받았다. 음악은 혼자만의 그림 세계에 빠진 새를 외롭지 않게 해 주었다.



벽면을 그림으로 가득 채우고 나자 새는 신이 났다. 그러나 그 신이 난 기분도 잠시뿐이었다. 새는 오히려 허전함을 느꼈다. 그 허전함에 새는 창문을 만들었다. 창문은 자연의 시간을 알려준다. 해가 뜨면 햇빛을 비춰 들여보내 주고, 해가 지면 어둠을 알려주고,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분다고 창문을 흔들어주기도 하고, 비가 오면 비가 온다고 창문에 비가 와서 부딪히기도 한다. 동시에 창문은 창문 밖의 세상을 보여주기도 한다. 새는 창문 밖에 지나가던 새에게 인사를 건넸다. 혼자 있던 구석에서 창문이라는 통로를 통해 새는 다른 이들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의 주요 색깔은 회색과 노란색이다. 회색에서는 소외된 외로운 기분이 느껴지고, 노란색은 소통을 통해 마음이 따뜻해지는 기분이 든다. 그래서 이 책의 안쪽 면지도 앞은 회색이고, 뒷쪽은 노란색으로 회색에서 노란색으로의 변화가 혼자 있던 구석에서 창을 만들어 구석과 바깥세상이 소통하는 변화를 보여주는 것 같다.



세로로 길쭉한 책의 모양이 마치 내 마음의 한구석 같다. 그 구석 안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들로 꾸며 놓고 마음껏 혼자만의 시간을 누리고 싶을 때가 있다. 그것이 휴식이다. 나 혼자만 누리고 싶은 편안한 시간, 편안한 공간, 편안한 정서. 그 공간에 잠시라도 혼자 있으면 휴식이 된다.



물리적인 공간으로서의 구석은 폐쇄적이지만 자신의 노력으로 창문을 만들어 바깥세상과 소통하는 새의 모습을 통해 심리적으로도 누구나 가지고 있을 법한 자신만의 구석을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내 마음의 구석에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싶은 감정이 있을 것이다. 그 마음의 구석은 자신을 가장 자신답게 보이게 한다. 그래서 굳이 구석에 있는 것들을 모두 끌어다 내보일 필요는 없는 것 같다. 다만, 마음의 창문이 있어야 그것을 선택할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원하지 않는 혼자는 소외에 지나지 않는다. 새가 자신의 공간에 필요한 물건을 두고, 음악과 미술로 정서적 위안을 받아도 결국에는 ‘공허함’에 창문을 만들어 열고 나온 것처럼, 우리도 공동체 안에서 함께 소통하면서 살아갈 때 개인이 더 빛이 나고, 휴식이 소중하게 다가오는 것 같다.           



혼자 있는 공간과 다른 사람들이 있는 공간을 적절하게 넘나들면서 에너지를 주고받을 수 있는 자신만의 창문이 필요하다. 소통의 창문이 ‘나의 구석’을 더 소중하게 만들어주고, 누군가와 함께 있는 순간을 감사하게 만들어 주는 것 같다.      






<우리 아이의 한 마디>

자신만의 공간이 주는 위안이 있다. 그 위안은 힘들 때 큰 힘이 되어준다.

그런데 다른 사람과 함께 있는 것도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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