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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미 Jan 16. 2023

전쟁으로 되찾지 못한 친구

: ‘못 찾 겠 다, 꾀 꼬 리.’

『숨바꼭질』(2018)

글/그림: 김정선(사계절)




해가 뜨기도 전에 순득이네 양조장은 술을 빚기 위해 환하게 하루를 열었다. 양조장 뒤편에서는 환한 양조장 불빛과 대조적으로 검은 무리의 사람들이 자신의 몸집만 한 짐과 함께 어딘가로 쓸려 가듯이 가고 있다. 평화롭게 일상이 시작되는 양조장과는 달리 검은 무리의 움직임이 알 수 없는 불안감을 고조시킨다.



양조장 집 박순득은 해가 활짝 떠오르자 자전포 집으로 달려갔다. 자전거 포는 또 다른 순득이의 집이다. 박순득. 달성국민학교에 함께 다니는 이순득의 단짝이다. 학교가 끝나도 함께 놀다가 해 질 녘쯤에 엄마 손에 끌려서 집으로 돌아갈 정도로 이들은 하루 종일 함께 있었다.



박순득 이외에는 자전거 포 앞을 지나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 자전거 포 문도 나무막대로 꽁꽁 싸여 있다. 굳게 닫혀 있는 자전거 포처럼 마을에 모든 것이 멈춘 것 마냥 적막하기만 하다. 박순득은 이순득을 찾아 나섰다. 남색 한복 치마를 입은 이순득이 표정 없는 회색빛의 수많은 사람들 속에 섞여 어딘가로 가고 있었다. 파란 원피스를 입은 박순득이 그런 이순득을 찾아냈다. 박순득을 발견한 이순득도 시선을 친구에게서 떼지 못했다.   



둘의 숨바꼭질이 시작되었다. 박순득이 먼저 술래를 하기로 했다. 이순득은 낮에는 산길로 숨었고, 밤에는 콩밭에 누웠다. 밤하늘은 야속하리만큼 아름다웠다. 낙동강을 건널 때는 첨벙첨벙 대며 신이 났고, 머리 위의 비행기들이 신기하면서도 폭격을 할 때면 무서웠다.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한 채 부모님을 따라 걷고 또 걸었다.



이순득은 머리카락이 보이지 않을 만큼 숨었다. 이순득은 박순득이 도저히 찾을 수 없을 만큼 마을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천막촌까지 들어갔다. 그곳에는 많은 천막들이 세워져 있었고, 줄 서서 배급을 받아야 했다. 이순득 역시 가족들과 천막에 몸을 누였고, 죽을 받아먹고살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이제 이순득이 박순득을 찾을 차례이다. 이순득이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술래가 된 이순득은 앞장서서 낙동강을 건너기 시작했다. 박순득을 찾으러 가는 그 발걸음에서 설렘이 느껴진다. 집에서 떠나왔던 방향을 다시 거슬러 갔다. 집을 떠날 때 한 여름의 공기가 가을로 변해 있었다. 누런 벼가 이순득만큼 자라 있었고, 푸른 나무도 단풍이 들어 있었다.



이순득은 드디어 집에 도착했다. 자전거 포 문을 꽁꽁 싸맸던 나무 막대기들이 너덜너덜 떨어져 있고, 마을 안의 건물들은 모두 무너져 있었다. 커다란 태풍이 휩쓸고 간 것처럼 마을은 피폐한 모습을 그대로 드러낸 채 망가진 모습으로 이순득 가족을 맞았다.  



이순득은 집에도 들어가지 않고 박순득네로 달려갔다. 그런데 양조장 역시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부서져 있었다. 박순득도 보이지 않았다. 박순득의 반려견 점박이만이 집을 지키고 있었다. 아무리 찾아도 박순득은 보이지 않았다.



결국 이순득이 외친다.

‘못 찾 겠 다, 꾀 꼬 리.’



하얀 눈이 양조장을 뒤덮었다. 주변에는 점박이와 이순득의 발자국밖에 없다. 박순득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만 같은데, 이순득은 박순득을 기다리며 눈사람을 만들어 놓았다. 박순득이 돌아와서 이 눈사람을 본다면 바로 이순득을 찾아올 것이다.



박순득이 떠난 자리에는 ‘순득이네 자전거 포’가 ‘이가네 자전거 포’가 되었고, 무너진 집들도 다시 새집처럼 버젓이 서 있었다. 마을의 모습이 조금씩 변했고, 이순득도 큰 자전거를 타고 다닐 만큼 조금 자랐다. 하지만 박순득에 대한 이순득의 마음은 여전하다. 이순득의 자전거 뒷자리에 탄 점박이가 그 마음을 대변하고 있는 것 같다.  



한국전쟁 당시 대구지역에 살던 두 순득이가 피난길에 오르면서 서로 헤어지게 된 이야기를 숨바꼭질에 비유해 그 서사를 펼쳐 냈다. 이러한 설정에서 로베르토 베니니 감독의 「인생은 아름다워」라는 영화가 떠올랐다.



언제 가스실로 끌려갈지 모르는 참혹한 현실을 숨기기 위해 아버지 귀도는 아들 조슈아에게 재미있는 놀이로 수용소 생활을 꾸며내 1천 점을 먼저 따면 진짜 탱크를 선물로 받아 고향에 돌아갈 수 있다고 했다. 이 거짓말을 실제처럼 보이기 위해 아버지는 병정의 걸음걸이로 독일군에게 총살당하러 가면서 아들에게 활짝 웃어주었다.



전쟁으로 인한 가혹한 현실을 아이들에게 그대로 보여주기보다 그 시간을 아이들이 잘 견뎌낼 수 있도록 아이들의 상상 속에서 새로운 세상을 설정한 것이 영화와 그림책이 서로 닮아있다.



그림책은 두 장의 면지에 두 순득이의 공간을 나눠서 보여주면서 서로의 물리적, 심리적 거리를 느끼게 하고, 그것으로 아이들의 움직임이 전달된다. 두 순득이가 엄마와 함께 집에 가는 장면에서 시작되는 두 순득이의 공간은 오른쪽은 이순득, 왼쪽은 박순득의 공간이다.



그래서 이순득이 피난을 가는 방향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박순득과 멀어지다가 집으로 다시 돌아오는 장면에서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움직이며 다시 박순득과 가까워지게 그려져 있다. 또, 박순득을 찾는 장면에서도 오른쪽에서부터 왼쪽으로 점차 움직이고, 결국 박순득을 찾지 못하는 이순득은 오른쪽에 혼자 배치되어 있다. 이러한 배치에서 혼자 남은 이순득의 외로움이 더 크게 다가온다. 그리고 방향성을 가진 움직임에서 생동감이 느껴진다.



전쟁에서 살기 위해 사람들은 적군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숨바꼭질을 하게 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적군에게뿐만 아니라, 자신의 가족이나 친구로부터도 숨게 되어 결국 서로를 찾지 못하게 되기도 했다. 서로 다시 만나 새로운 놀이를 하지 못하게 만든 것이 전쟁이다. 전쟁은 일상을 파괴한다.



이제는 자신이 술래인지 숨어 있는 사람인지도 잊을 정도로 너무 많은 시간이 흘러버렸다. 서로 찾지는 못했을지라도 서로의 추억은 간직했으면 한다. 그리고 너무 늦지 않게 그 추억을 서로가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이 왔으면 좋겠다.





<우리 아이의 한 마디>

전쟁 당시 사람들은 강제로 숨바꼭질을 해야만 했다.

얼마나 무서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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