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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미 Mar 01. 2023

미안함의 울타리

: 경계의 울타리가 아니라 보호의 울타리

김병하, 『미안해』(한울림어린이, 2022)




화가 김 씨 아저씨는 콧노래를 부르며 마당 한편에 텃밭을 만들었다. 상추, 배추, 열무, 쑥갓, 옥수수, 강낭콩의 씨앗을 심고, 고추, 가지, 토마토, 오이, 수세미의 모종을 심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텃밭에 가서 물도 주고, 벌레도 잡아주고, 쓰러지지 말라고 지지대에 묶어 주기도 하고, 타고 올라가라고 기둥을 세워 주기도 했다. 잎도 따주고, 열매도 솎아 주고, 거름도 주면서 심어 놓은 채소가 쑥쑥 자라기를 바랐다. 아저씨 눈에는 텃밭의 채소만 보였다. 채소는 무럭무럭 자라 싱싱하고 맛있는 열매로 아저씨의 간절한 마음과 성실한 노력에 보답했다.



아저씨가 바구니 한가득 텃밭 채소를 담아 돌아오는 길에 아저씨의 발에 무엇인가가 걸렸다. 날개 꺾인 새 같은 작은 민들레 한 송이가 아저씨 발에 밟혀서 널브러져 있었다. 이미 여러 차례 밟혔던 것 같다. 아저씨는 그 꽃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늦은 밤에도 아저씨는 창밖으로 낮에 자신이 무심코 밟았던 민들레를 내다보며 한참을 생각했다. 그리고 어둠 속으로 나와 자신이 밟았던 민들레를 보러 가서도 한참이나 그 주변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도대체 아저씨는 왜 그렇게 길에서 밟힌 민들레에게 마음을 쓰는 것일까?’



다음날 아침, 전날 밤보다 한결 가벼워진 표정으로 텃밭을 가는 아저씨의 모습에서 그 궁금증은 더 커졌다.



‘도대체 아저씨는 그 민들레 주변에서 한참 동안 무엇을 했을까?’



커다란 물뿌리개를 힘겹게 들고 지나가는 아저씨 길 위에 어제 밟혔던 민들레가 돌무리 사이로 고개를 삐죽 내밀고 있다. 그 민들레 주변에 돌로 만든 작은 울타리가 생겼다. 전날 밤 아저씨의 어두웠던 표정이 가벼운 표정으로 바뀐 이유였다. 아저씨는 민들레 한 송이가 거친 땅 위에 혼자 펴있다가 자신에게 여러 차례 밟혀 너덜너덜해진 모습이 된 것이 마음에 걸렸나 보다. 그래서 그것이 또 밟히지 않도록 돌로 울타리를 만들어 준 것이다.



울타리는 일반적으로 경계를 짓기 위한 장치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그 경계는 안과 밖을 구분 짓고, ‘우리’와 ‘우리 아님’을 나누어 준다. 그런데 아저씨의 울타리는 경계가 아니라 보호였다. 민들레를 가두어 두려는 것이 아니라, 다시는 밟지 않기 위해서 민들레 주변에 돌로 작은 울타리를 만들어 준 것이다. ‘우리’ 민들레라는 이름을 붙여 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낸 상처에 밴드를 붙인 것처럼 자신의 미안한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길에 핀 민들레에게 저렇게까지 마음을 쓸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아저씨가 정성스럽게 만든 풍성한 텃밭의 모습이 떠올랐다. 길에 피어 밟히는 것이 일상인 민들레와 소중하게 잘 자라주기를 바라면서 관리받는 텃밭의 모습이 대조적으로 보였다.



이들 모두 하루하루 자라고 있는 생명체인데, 길에 핀 것은 밟히는 것이 자연스럽고, 텃밭에서 자라는 것은 보호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어 서글펐다. 아마도 김 씨 아저씨가 자신이 밟은 민들레 곁을 떠나지 못했던 마음이 이런 마음이 아니었을까 싶다. 자신의 텃밭에서 다양한 생명이 잘 자라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정성을 쏟았던 그 행동들 속에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다른 생명을 해치는 행동이 들어 있었다는 것이 자신이 텃밭을 가꾸는 행위가 무엇을 위한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게 만들었을 것 같다.



우리가 자신이 가고자 하는 방향만을 향해 달리다 보면, 그 설렘과 두려움으로 주변은 보지 못할 때가 있다. 그래서 내가 의도하지 않는 상처를 주변에 줄 때도 있다. 그리고 상처 준 것조차 내가 인식하지도 못하고 지나쳐 버리는 순간도 너무 많다. 아저씨가 자신이 언제 길에 핀 민들레를 밟았는지도 모르게 말이다.



나 역시 무심코 길에 핀 민들레를 밟고 지나간 일은 없었을까.

내가 시간에 쫓겨 정신없이 나가야 할 때, 나를 부르는 아이의 목소리를 흘려버리지는 않았을까.

내가 해야 할 일에 몰두했을 때, 자신을 좀 도와 달라는 친구의 이야기를 외면한 적은 없었을까.



상처 준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순간까지 우리가 반성할 수는 없겠지만, 그것을 알게 되는 순간이 오면 미안한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다. 몰랐다는 것으로 모든 행동이 이해받을 수는 없다. 그리고 아저씨가 밟은 민들레에게 울타리를 만들어 준 것처럼 미안함을 표현하는 것도 중요한 것 같다. 이 세상에 함부로 대해도 되는 생명은 없으니까 말이다.  






<우리 아이의 한 마디>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 나태주, ‘풀꽃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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