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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미 Mar 12. 2023

용기 있는 사과와 제도적 치유

: 전쟁의 가해자였던 기억

권윤덕, 『용맹호』 (사계절, 2021)




커다랗고 길쭉한 판형의 그림책 표지를 초록색, 검은색, 회색이 혼탁하게 서로 뒤엉켜 덮여 있다.



복잡하게 얽혀 있는 그림 속에 습한 기운이 엄습해 온다. 푸른 숲에 가려진 하얀 ‘용맹호’라는 글자가 빨리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노란 에어릴호스를 들고 있는 호랑이 한 마리를 발견할 때까지는 말이다. 그는 마치 숨어서 어떤 이들의 전쟁을 지켜보고 있는 것 같다. 그가 들고 있는 노란 에어릴호스는 푸른 숲 속에 노란 띠로 된 경계를 만들어 어떤 이야기 한 토막을 베어내고 있는 것 같다.



표지를 걷어내듯이 한 장을 넘기면 내지에 정글이 펼쳐져 있다. 그 정글을 넘기면, 호랑이 형상을 한 용맹호 씨가 더운 여름 시원한 선풍기 앞에서 한가롭게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 그가 채널을 돌리다가 ‘100분 토론’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멈추었다. 2000년 7월 6일 31회 100분 토론은 ‘베트남전 우리에게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이야기가 펼쳐졌다. 용맹호 씨는 사람들이 둘러앉아 그 이야기를 자유롭게 하는 것이 몹시 불편하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결국 용맹호 씨는 TV 리모컨을 집어던졌고, 텔레비전 코드로 뽑아 버렸다.



용맹호 씨는 왜 그렇게까지 했을까?

이 토론을 보던 용맹호 씨는 왜 당황하고 분개하였을까?    



용맹호 씨는 자동차 정비소에서 일하는 정비공이다. 그는 하루에 자동차 일곱 대를 수리한다. 다른 사람들처럼 아침에 출근했다가 저녁에 지친 몸으로 퇴근한다. 비록 용맹호 씨는 호랑이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과 어울려 살고 있다. 사람들도 용맹호 씨를 이상하게 바라보지 않는다. 어쩌면 다른 사람들 눈에 용맹호 씨는 호랑이가 아닌 사람으로 비추어지는지도 모르겠다. 호랑이의 모습은 용맹호 씨가 스스로 얽어 놓은 자신의 모습일 수도 있다. 그는 현재도 호랑이 부대(맹호부대) 소속으로 베트남에 파견되었던 자신의 모습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100분 토론에서 베트남 전쟁 이야기가 나온 것을 본 뒤로 자신이 잊으려고 노력해 왔던 고통이 스물스물 다시 꺼내졌다.



용맹호 씨는 길에서 마주친 검은 옷을 입은 아기 엄마를 보면 숨이 막혔고, 밤마다 자려고 누우면 왕지네가 발밑으로 기어가고, 거미가 나무에 매달려 흔들거리는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해서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잠이 든다고 해도 풀숲에서 자신을 부르는 전우들의 목소리가 들리고 자신이 겁탈한 여자의 찢겨진 검은 옷이 널려 있는 것이 보여 괴로웠다. 공구 소리를 들으면 AK 소총 소리가 들리는 듯해서 손이 떨리고 가슴이 벌렁거렸다. 때로는 자신이 학살했던 민간인들의 모습이 보여 기겁하기도 했다.



자신의 가슴속에 묻고 묻어도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 전쟁의 상처가 튀어나와 있었다. 용맹호 씨는 어느 날은 귀가 하나 더 생기고, 또 어느 날은 가슴이, 또 어느 날은 눈이, 또 어느 날은 발이 생겼고, 분홍색 살점이 몸에 덕지덕지 들러붙어 있었다. 그림책을 넘길수록 용맹호 씨의 고통에 가속도가 붙는 기분이 들었다.



처음에는 다른 사람들이 용맹호 씨의 몸에 생긴 상처들을 눈치채지 못했지만 나중에는 가리고 싶어도 가릴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이러한 상처들에 결국 용맹호 씨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쓰러지고 말았다.



용맹호 씨와 같은 사람들 역시 전쟁의 피해자라고 한다면, 그것은 전쟁으로 인해 모든 것을 잃은 민간인들에 대한 예의가 아닐 것 같지만, 전쟁으로 인한 잘못을 개인이 지고 가기에는 너무 버거운 것은 사실이다. 쓰러진 용맹호 씨를 살리려고 달려드는 사람들처럼 우리 사회가 이 사람들을 챙겨야 한다.



전쟁터에 가기를 원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국가의 부름’이라는 명목 아래 전쟁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젊은이들이 전쟁터로 끌려갔을 것이다. 따라서 전쟁에 대한 잘못을 제대로 된 사과 하고, 이들이 겪은 트라우마에 대해서도 국가 차원에서 제대로 된 치료를 해 주어야 할 것이다.



베트남 전쟁이라는 배경이 낯설지 않았다. 주변에 베트남 전쟁을 다녀오신 분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우리 아버지 역시 베트남 참전 군인이었다. 아버지는 군대의 첫 휴가를 끝내고 복귀하는 길에 헌병에게 이유 없이 끌려가 보니 베트남 파병 부대였다고 했다. 그 뒤로 백마부대 소속으로 1968년에 베트남에 통신병으로 2년여 정도를 근무했다. 우리 아버지뿐만 아니라, 그 나이 또래 많은 사람들이 베트남 전쟁에 다녀왔기 때문에 그 당시 군대 가는 사람들이라면, 베트남 전쟁에 가는 것이 특별한 일은 아니었을 것 같다.  



다만, 베트남 전쟁에서 우리 국군을 가해자의 모습으로 그린 것은 낯설었다. 그래서 민간인을 학살하고 여성 인권을 유린한 장면에서는 숙연해지기까지 했다. 우리나라가 많은 외세의 침략을 받았다는 역사 교육 때문인지 우리는 피해자의 자리에 있는 것이 더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전쟁이 지속되면 가해자가 따로 정해져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서로의 생존을 위해 인간의 가장 밑바닥의 본능까지 긁어모으게 만드는 것이 전쟁인 것 같다.  



아버지에게 베트남 전쟁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는데, 아버지는 3시간을 쉬지 않고 말씀하셨다. 시간이 길어지자 빨리 이야기를 끝내고 싶은 마음에 아버지께 가장 비참하고 처참했던 기억에 남는 전투를 말해 달라고 했다.



“그게 한두 개여야지. 전투는 다 비참하고 처참해. 내 동료가 내 앞에서 꼬꾸라지는데, 눈이 돌더라. 나도 모르게 죽창을 들었어. 나는 무전병인데……. 전쟁에서 돌아오니, 할머니가 그러더라. 나보고 눈이 돌았다고. 한동안 술 없이는 잠을 못 잤어.”



아버지의 이 말에 무언가로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할 말을 잃었다. 나는 전쟁이 비참한 것이라고 머리로는 생각하면서도 전쟁을 여행처럼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 생각은 너무 어리석었다. 전쟁은 적을 죽이지 않으면 ‘우리’가 죽는 무시무시한 게임과 같은 것 같다. 그래서 전쟁은 사람을 미치광이로 만들어 놓기도 할 것 같다.



용맹호 씨에게서 술로 전쟁의 기억을 잊으려던 아버지의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자신의 아픈 기억을 묻어 두고 싶은데, 역사라는 이름으로 끄집어내어 개인의 잘못으로 헤집어 놓는다면, 어떤 사람이 제대로 살 수 있을까?



이 그림책을 닫으면서 그림을 해치지 않으려던 글을 따라가다 보니 그림에 압도되면서 한 사람의 잊힌 기억 속에 들어갔다 나온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과거에서 나와 지금 현재로 돌아왔는데 불구하고, 여전히 과거의 문제를 안고 있는 것 같다.



전쟁은 ‘종전’을 서로 선언하면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전쟁으로 모두가 피해자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 안에는 반드시 피해자와 가해자가 존재하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 전쟁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 그 전쟁은 현재까지도 진행 중인 것이다. 그 상처와 아픔이 모두 치료되어 용서가 이루어져 그 기억이 희미해질 수 있어야 비로소 전쟁이 끝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도 우리의 잘못을 돌아보고 제대로 된 사과를 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혼자서 그 잘못과 싸우고 있는 사람들을 국가가 안아줄 제도도 필요하다. 전쟁의 경제적 효용가치를 말하기 전에 그것으로 상처받은 사람들을 먼저 바라봐 줘야 할 것이다.






<우리 아이의 한마디>

전쟁의 고통은 전쟁이 끝났고 해서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https://m.oheadline.com/articles/FWKZiO8RdeL8zKCmUhQfDw==?uid=4f8c6c5e6d91434c8dde0827240053c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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