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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미 Aug 07. 2020

후회 없이 살고 싶은 내 삶의 방향

- Cry, Heart, But Never Break

* 『오래 슬퍼하지 마』(2007)

- 글: 글렌 링트베드, 그림: 샬로테 파르디, 번역: 안미란(느림보)




얼마 전 동생이 병원에 입원하였다. 동생이 있었던 병동에는 흉부외과 환자들도 있었다. 그들 대부분이 수술을 받고 나서 회복하는 환자들이었다. 병실 밖에는 붙여진 입원 환자 이름표에는 이름의 마지막 글자가 가려져 있었고, 그 옆에 나이가 적혀 있었다. 무심코 바라본 곳에 78세라고 적혀 있었다. 동생보다 이틀 정도 뒤에 입원한 할머니의 나이였다. 할머니는 고운 외모에 카랑카랑한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핑크색 삼선 슬리퍼를 신으셔서 나랑 동생은 ‘핑크 할머니’라고 불렀다.


핑크 할머니는 무사히 수술을 마치고 중환자실에 하루 계시다가 다음날, 내 동생 옆자리로 오셨다. 핑크 할머니를 반가워할 틈도 없이 그 날 저녁 할머니는 많이 힘들어하셨다. 핑크 할머니가 간호하는 자신의 딸에게 무슨 말을 하는데 그 목소리가 너무 작아서 나에게는 잘 들리지 않았다. 핑크 할머니의 말을 들은 딸이 ‘엄마, 여기? 여기에 있어? 엄마는 보여?’라고 말했다. 핑크 할머니가 ‘응, 너는 안 보여? 모자 썼잖아’라고 대답했다. 핑크 할머니는 모자를 쓴 사람이 웃고 있는데 사진처럼 보인다고 했다.  


옆에서 들리는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나는 등이 오싹해졌다. 간호사는 섬망 증세일 수도 있다는 말로 할머니의 이야기를 일축했지만, 나는 마치 죽음의 세계의 문이 열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오래 슬퍼하지 마』라는 그림책이 떠올랐다. 이 그림책에는 ‘죽음(Death)’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는 죽음은 검은 망토를 뒤집어쓰고 커다란 낫을 들고 다닌다. 죽음은 아이들이 놀랄까 봐 그 낫은 집 밖에 두고 아이들을 만났다.


이 그림책에는 할머니와 4남매가 함께 사는 집에 죽음이 찾아와서 죽는다는 것이 인생의 순리인 것을 아이들에게 알려주는 이야기가 수채화로 표현되어 있다. 할머니를 떠나보내고 싶지 않은 아이들에게 죽음은 슬픔이(Sorrow)와 기쁨이(Joy), 눈물이(Grief)와 웃음이(Delight)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리고 이들처럼 삶(life)과 죽음(death)도 서로 떨어트려 놓을 수 없는 관계라고 이야기해준다.



“삶과 죽음도 마찬가지란다. 얘들아, 죽음이 없다면 삶이 무슨 의미가 있겠니?

비 오는 날이 없어도 햇빛의 고마움을 알 수 있을까?

밤이 없다면 아침을 기다릴 필요가 없겠지?”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자 죽음은 아이들에게 위로 삼아 이렇게 말한다.



Cry, Heart, But Never Break



나는 이 글을 보는 순간 머리를 딱 맞은 것 같았다. 번역서에는 “마음아 울어라, 하지만 오래 슬퍼하지는 말거라”라고 되어 있다. 내가 받아들인 이 말은 “실컷 울어라, 그리고 느껴라, 행복했던 것, 따뜻했던 것을 잊지 말고 간직해라. 하지만 결코 너 자신을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는 뜻을 가진 것이었다.




인생이라는 파도를 타야 하는 순간마다 나는 두려움을 갖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연애에 실패했을 때는 다시는 다른 사람을 만나지 못할 거라는 두려움을 갖지 않으려고 했었고, 시험에 실패했을 때는 그 길만이 있다는 두려움을 갖지 않으려고 했었고, 사람에게 실망했을 때는 나에게는 그 사람만이 유일한 내 사람이라는 두려움을 갖지 않으려고 했었다. 나는 실패에 대해 오래 슬퍼하지 않으려고만 했다. 그리고 나는 나 자신이 무너지지 않으려고만 했다.


연애에 실패하고 동시에 유학시험에도 떨어진 적이 있었다. 그때 대상포진이라는 병이 나를 찾아왔다. 나는 링거를 꼽은 채로 취업 원서를 썼고, 약을 먹으면서 면접을 보았다. 그러면서 내가 생각한 것은 딱 하나였다. 그것은 내 실패로 나의 자존감이 더 이상 떨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었다. 다행히도 나는 취업에 성공했다. 비록 내 전공과 관련성은 있는 일이었지만, 나는 내가 이전에 생각해 본 적도 없는 일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나 자신이 한숨을 돌릴 수 있게 되었다는 것과 남들로부터 인정받는다는 기분이 들어서 직장생활에 따라 그렇게 흘러가는 내 인생을 나는 순순히 받아들이게 되었다.


나는 어떤 것이든 실패를 하면 목표에 집중했던 나를 지워버리고, 빨리 다른 대안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그 속에서 항상 나 자신에게 아쉬움을 느꼈다. 대안으로만 사는 인생 같아서 지금의 인생이 최선이라고 말하지 못하는 것이 아쉬웠다. 나는 늘 급급했다. 실패를 만회해 보려고 원래 목표했던 것에 버금가는 대안을 찾으려고 하다 보니 나는 늘 조급하고 불안했다. 그래서 나는 실패한 것에 대해 목 놓아 울거나 불만을 토로하거나 자기반성을 할 만한 여유가 없었다. 나에게는 그 여유가 사치처럼 느껴졌다. 플랜 B를 제대로 실행하는 것에만 온 신경이 집중되어 있었다.


나는 ‘But Never Break’라는 말로 나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나에게는 ‘Cry, Heart’라는 말이 없었다. 충분히 슬퍼하고 그것을 공감하고 느끼고 소중하게 기억하는 과정을 갖지 못했다. 빨리 성취하고 인정받고만 싶었다. 결혼을 하고 내 역할이 늘어나면서 나는 이제 나에게 충분한 숨 고르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역할만이 늘어난 것이 아니라, 내가 책임져야 할 부분이 더 커졌기 때문이다. 내 감정을 들여다보고, 덜어낼 것은 덜어내고, 전달할 것은 전달하는 과정이 무엇보다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이 그림책에서 인생의 가장 슬픈 일인 죽음조차도 태양처럼 붉고 삶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의 심장을 뛰게 한다고 했다. 그리고 영혼을 육체에서 떠나게 하는 그 순간의 슬픔을 죽음도 느낀다고 했다. 나는 다시 죽음의 얼굴을 보았다. 검은색 망토에 가리어진 얼굴이 점차 드러났다. 지쳐 보이고, 슬퍼 보이기만 했던 얼굴이 점차 인생에 순응하는 듯한 모습으로 느껴졌다.


그림책을 읽는 동안에는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림책을 덮으면서는 삶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화두를 던진다고 생각했다. 삶과 죽음은 서로를 빛내주는 관계로 죽음을 맞이하기 전에 충분히 삶을 즐기라고 이야기해주는 것 같다. 죽음은 인생의 끝이 아니라 삶의 또 다른 과정인 것 같다.



Cry, Heart, But Never Break



이 말을 알게 된 후로 나는 이 말을 마음에 두고 산다. 내 삶을 충분히 느끼고, 표현하고,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하려고 한다. 훗날 죽음의 문턱에서 후회 없이 웃으며 내 삶을 돌아볼 수 있기를 바라면서 나는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일들은 받아들이고,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은 흘려보내면서 나를 잃어버리지 않고 살려고 한다. 너무 애쓰지 않고, 나에게 다가오는 파도에 저항을 줄이면서 나 자신을 믿고 휩쓸려 가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는 슬픔과 기쁨, 눈물과 웃음, 삶과 죽음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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