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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미 Sep 03. 2020

학생이 되는 날, 학교 가는 날

: 나의 국민학교와 아들의 초등학교

* 『학교 가는 날』(2016)

- 글: 송언, 그림: 김동수(보림)




2학기가 시작되었지만 코로나로 인해 아이의 학교 수업이 온라인 수업으로 대체되면서 아이는 학교에 가지 못하게 되었다. 아이가 2학기 교과서를 받으러 학교에 갔다. 교과서가 무거울까 봐 내가 같이 가주겠다고 했다. 아파트 사잇길을 지나니 아이가 나와 잡던 손을 꼼지락 거리는데, 이건 손을 잡은 것도 놓은 것도 아니었다. 아이는 혼자서 다녀오겠다고 한다. 엄마랑 같이 가는 것이 이제는 창피한가 보다.


“왜? 손 놓고 가고 싶어?”

“응. 엄마 나 혼자 갔다 올게.”



같이 따라나선 것에 미련이 남아서 뒤를 졸졸 따라갔다. 아이의 뒷모습이 보였다. 초등학교 입학할 때 사준 가방이 딱정벌레 마냥 아이의 등에 찰싹 달라붙어 있다. 가방이 아이의 목 아래와 겨드랑이를 조이는 듯하다. 벌써 가방이 너무 작아 보일 만큼 아이가 많이 컸다는 것이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초등학교 입학식 날 아이는 많이 긴장했다. 이름을 불러도 얼어서 고개를 제대로 돌리지 못했고, 교문 앞에 서 있는 것도 어색한지 사진 한 컷 찍는 것조차 사정을 해야 했다. 그랬던 아이가 단 몇 분 동안이지만 담임 선생님과 반 친구들을 만나는 것에 신이 나서 학교를 가고 있다. 그 모습을 뒤에서 보고 있자니 나는 만감이 교차했다.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할 때, 나는 『학교 가는 날』이라는 그림책을 선물했었다. 이 그림책에는 나의 국민학교 입학할 때 모습과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할 때의 모습이 모두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구동준과 김지윤이 입학을 앞둔 며칠 전부터 입학하고 며칠 정도까지 쓴 그림일기다. 나는 아이에게 나의 초등학교도 소개해 주고 싶었고,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도 축하해 주고 싶었다.




책 표지를 넘기면 왼쪽에는 구동준의 그림일기가 있고, 오른쪽에는 김지윤의 그림일기가 있다. 이 그림일기에서 구동준과 김지윤의 입학 며칠 전의 모습, 입학식 당일 날 모습, 입학 후 며칠 간의 학교생활을 볼 수 있었다.


구동준의 가족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구동준을 포함한 4남매이다. 구동준은 친구들과 어울려 밖에서 신이 나게 놀고, 집에 와서도 형제들과 신이 나게 논다. 친구들과 딱지치기를 하던 구동준에게 통장 아저씨가 입학통지서를 주고 가셨다. 예비소집 일에 만난 선생님께서 입학식 날 준비물을 알려주셨다. 선생님이 말한 준비물은 손수건이다. 그 손수건의 용도는 아이들이 자기 스스로 자신의 콧물을 닦는 것이었다. 나도 그 기억이 난다. 손수건을 왼쪽 가슴에 달고 그 위에 이름표를 달았다.


구동준은 학교 갈 준비를 한다. 형에게 한글 읽는 것도 배우고, 누나에게 숫자 세는 것도 배웠다. 새 책가방도 샀고, 아버지와 형과 함께 이발소와 목욕탕에 가서 몸도 깨끗하게 했다.


김지윤의 가족은 엄마, 아빠, 김지윤이다. 김지윤은 아파트 경비 아저씨에게 입학통지서를 전달받았다. 입학 전에 예방주사를 모두 체크해야 했고, 유치원과 엄마와 함께 학교생활을 연습해 보기도 했다. 예비 소집 날에 엄마와 함께 학교에 갔지만 겨울방학 중이라 학교는 비어 있었다. 김지윤은 실망했다. 우리 아이 예비소집 날이 생각이 났다. 그 날 아이는 유치원에 가서 내가 설레면서 혼자 학교에 갔었다. 각 아파트 단지별로 줄을 서서 안내문을 받았다. 그것이 전부였다. 1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예비소집일의 설렘이 무색하게 허전한 마음에 아이가 오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구동준과 김지윤의 입학식 날, 이들의 학교 가는 날의 풍경은 달랐지만, ‘학교 가는 날’의 모습은 똑같았다. 이들은 엄마 손을 잡고 설레는 마음으로 학교를 갔다. 가슴에 하얀 손수건을 달고 구동준은 동성 국민학교에 입학하였다. 슬레이트 지붕을 얹은 2층짜리 학교 건물, 회색 담벼락, 앙상한 나무가 입학생들을 반겨주고 있다. 입학식 날이 스산하고 춥게 느껴졌지만 하늘만은 파랗다. 반면, 김지윤은 건물 두 개 정도가 연결된 번듯해 보이는 4층짜리 학교 건물과 잎이 푸르른 나무들이 입학생들을 반겨주고 있다. 파란 하늘 아래, 학교 담벼락도 분홍색으로 화사하고, 학교 앞은 보도 블록이 깔끔하게 깔려 있다.


입학식장 안으로 따라 들어가 보면, 구동준은 운동장에 있는 자기 반 팻말 앞으로 선생님께 혼날까 봐 긴장해서 줄을 맞춰 서 있다. 김지윤은 체육관에서 6학년 언니 손을 잡고 들어가서 자기 반 팻말 앞에 놓인 줄 맞춰진 의자에 앉아 있었다. 구동준은 입학식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엄마와 짜장면을 맛있게 먹었다. 이 짜장면 집 이름은 중국성으로 1968년 달력이 벽에 붙어 있다. 구동준은 1968년에 국민학교를 입학한 아이였다. 반면, 김지윤은 저녁에 아빠가 사 온 케이크를 함께 먹으면서 입학을 축하했는데, 맛이 없었다고 했다. 김지윤이 케이크가 맛이 없었던 것은 담임 선생님이 할아버지라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김지윤이 실망했던 할아버지 담임 선생님이 구동준이었다. 구동준은 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자신의 꿈을 이루었다. 시대가 단절되지 않았다는 것이 이 그림책을 보는 묘미였다. 오른쪽과 왼쪽의 각자의 이야기가 마지막에 가서 구슬이 다 꿰어지듯이 하나로 이어진다.   




입학식장 안의 아이들의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다. 집중해서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 아이, 뒤를 돌아보는 아이, 고개를 숙이고 있는 아이 등 아이들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은 아이들이다. 그리고 구동준과 김지윤의 학교 생활도 크게 다르지 않다.


구동준은 학교 운동장에서 김지윤은 체육관에서 노래와 율동을 배웠다. 구동준은 선생님을 따라서 책을 읽으면서 더 이상 선생님이 무섭지 않았고, 김지윤은 아이들 요구에 여러 번 그림책을 읽어주시는 할아버지 선생님이 좋아졌다. 구동준은 발표를 잘했다고 칭찬을 받고 자신도 선생님이 되고 싶은 꿈이 생겼다. 김지윤은 인사를 잘했다고 칭찬을 받아서 기분이 좋아졌다.


구동준과 김지윤이 1968년과 오늘날이라는 시대로 다른 환경에서 지내지만, 아이들의 모습은 그 때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다. 아마도 1968년도 구동준과 오늘날의 김지윤이 만나도 아이의 모습으로 잘 놀 것이다.


그 마음이 책 표지에 담겨 있다. 책의 앞표지에는 눈이 오는 날에 구동준의 학교 운동장에서 아이들이 공을 차고 썰매를 타고 있다. 아이들은 선으로만 그려져 있다. 구동준은 책가방을 앞으로 들고 김지윤을 바라보며 서 있고, 김지윤은 구동준 맞은편에 책가방을 메고 썰매 타는 아이를 쳐다보며 웃고 있다. 이들은 모두 색깔이 입혀져 있다. 책의 뒷 표지에도 눈이 오고 있다. 발레, 스케이트 타는 아이들과 공부하는 아이들이 색깔 없는 선으로만 그려져 있고 김지윤은 학교로 뛰어가는 듯하게 그려져 있다. 맞은편의 구동준은 그런 김지윤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여기서도 구동준과 김지윤만 색깔이 입혀져 있다. 마치 ‘이상한 나라 폴’이라는 예전 만화에서 폴이 다른 세상으로 들어갈 때 모든 것이 멈추고 폴만 움직일 때처럼, 구동준과 김지윤만 색이 칠해져 있는 것이 이들은 과거와 현재를 소통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 그림책은 국민학교를 다녔던 부모 세대에게는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아이 세대에게는 자신들의 모습을 보는 재미가 있다. 사회가 변화하면서 생활의 모습이 달라졌다. 대가족이 핵가족이 되었고, 형제들에게 글자와 숫자를 배우던 아이들이 유치원에서 학교 갈 준비를 하게 되었다. 짜장면이란 특별한 날에만 먹을 수 있는 대단한 음식이었던 것이 케이크조차 입에 맞지 않는 날이 있을 정도로 음식을 귀하게 여기던 시대가 지났다. 달라진 세상을 보는 재미가 있다.


한편으로 나는 이 책에서 사회가 변화했는데도 불구하고 성역할은 변하지 않았다는 것에 아쉬움이 남았다. 예나 지금이나 육아는 엄마의 몫이다. 구동준도 김지윤도 모두 엄마와 함께 입학식에 갔고, 그날 모인 학부형들은 모두 엄마였다. 김지윤의 입학식 장면에서 아빠는 없다. 워킹맘의 흔적도 없다. 사회가 변하면서 성의 역할도 자연스럽게 변화하는 것을 그림책에서도 자연스럽게 보여주었다면 좀 더 좋았을 것 같다.




이 그림책을 보면서 1983년 나의 초등학교 입학식을 떠올려 보려고 노력했다. 끊어진 영화 필름처럼 기억나는 나의 모습에는 구동준의 모습과 김지윤의 모습이 모두 있다. 새로 산 만화가 그려진 빨간 책가방과 손수건과 파란색 이름표를 옷핀으로 함께 내 왼쪽 가슴에 꽂았던 것이 기억이 난다. 그리고 유치원 졸업식과 매주 하나씩 오던 '일일 공부' 학습지가 기억이 난다. 그 끊어진 기억을 이 그림책으로 이어서 우리 아이에게 그때 이야기를 해 줄 수 있어서 좋았다.


코로나 19로 인해 학교 가는 것이 특별한 일상이 된 요즘에 다시 이 책을 꺼내보니, 어느 시대이건 간에 학교는 아이들을 품어 주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초등학교 입학은 아이들의 사회가 시작되는 시점이고, 아이들이 꿈을 키워나가는 시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이 세상에 자신의 한 발을 스스로 내딛는 순간인 것 같다. 이런 의미에서 올해 초등학교 1학년들은 입학식도 제대로 치르지 못하고 학교생활을 시작했다는 것이 참으로 안타깝다.


‘학교’가 이제는 물리적 공간을 벗어나고 있다. 학교라는 제한된 공간을 벗어나는데, 코로나가 한몫하고 있다. 아마도 10년쯤 후면 왼쪽에는 김지윤의 초등학교 입학식, 오른쪽에는 다양한 장소에서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학생들의 입학식이 그려진 그림책이 나올 수 있을 것 같다. 시대는 변하고, 그에 따라 삶의 모습도 변할 수 있지만, 학생이 된다는 본질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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