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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미 Jul 20. 2020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할까.

: 마리솔이 보여주는 ‘-ish’와 파랗지만은 않은 하늘

* 『느끼는 대로』(2004)

- 글, 그림: 피터 레이놀즈 옮김: 엄혜숙(문학동네어린이)


* 『그리는 대로』(2017)

- 글, 그림: 피터 레이놀즈 옮김: 엄혜숙(나는별)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나는 브런치 글은 블로그에 쓰는 글과 일기에 쓰는 글과는 달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정보를 전달하는 것도 아닌 것 같고, 내 넋두리를 해도 안 될 것 같은 공간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브런치 글은 어때야 된다는 것은 없다. 단지, 내 편견이다.


나는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쓸까?’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 하루에도 수십 개의 생각이 내 머릿속을 헤집고 다니지만, 그것 중 하나를 끄집어내는 것은 쉽지 않다. 더구나 그것을 정리해서 하나의 호흡으로 쓰는 것은 생각보다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내 생각을 세상 속에 내놓는다는 것은 나의 예상보다 더 조심스럽고 두려운 일이었다.




내 글을 읽은 사람이 나에게 말했다.


“당신 글은 너무 어렵습니다.”


“당신 글은 재미가 없습니다.”


“당신 글은 너무 옛날 스타일입니다.”


“당신 글은 깁니다.”


“당신 글 앞에 설명을 좀 넣어 보세요.”


“당신 글에 사진이나 그림을 넣어 보세요.”


“당신 글에서 당신이 말하고자 하는 부분에 색을 넣어 눈에 띄게 해 주세요.”


그 말을 들은 나는 주저 없이 대답했다.


“고맙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직 당신의 조언을 따를 수가 없습니다.”



나의 글을 염려하여 건네준 그 사람들의 말은 고마웠지만, 나는 그 조언을 따를 수가 없었다. 나는 일부러 어렵게 쓰는 것도, 길게 쓰는 것도 아니었고, 재미없게 쓰는 것도 아니었다. 내가 왜 이런 글을 썼는지 등에 대한 배경을 글로 설명하고, 사진이나 그림을 넣으면, 사람들은 내 글에 대해 이해하기가 좀 더 쉬울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설명이나 사진과 그림이 내가 쓴 글자들을 밀어낼까 봐 두려웠다. 사람들은 내가 쓴 글을 다 읽기보다는 설명을 통해 이해하고 사진과 그림으로 짐작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내가 하고 싶은 말에 색깔을 넣어 보는 것은 내 생각을 그들에게 강요하는 기분이 들었다. 읽는 사람이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아니라, 자기가 보고 싶은 것을 볼 수도 있는데, 읽는 사람이 느끼는 것을 내가 한정 짓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조심스러워 나는 어떤 장치도 이용할 수가 없었다.


나는 이러한 나만의 생각으로 고집인지 아집인지를 부리면서 글을 쓰고 있다. 내 글은 흑백이다. 나는 내 글에 어떤 색을 어떻게 칠해야 할지를 고민하고 있다.


나는 다양한 스케치를 하는 기분으로 글을 쓴다. 내가 풍경화를 잘 그릴지, 인물화를 잘 그릴지, 정물화를 잘 그릴지, 내가 수묵화를 할 수 있을지, 유화를 할 수 있을지, 판화를 할 수 있을지를 아직 모르겠다. 내 글의 모습과 방법을 나는 아직 모른다. 모르기 때문에 그냥 묵묵히 내 생각을 잘 정리해서 어떤 날은 풍경화의 모습으로, 어떤 날은 인물화의 모습으로, 어떤 날은 수묵화로, 어떤 날은 유화로 그려 내놓을 뿐이다. 또 어떤 날은 이 세상에서 보지 못한 기법을 사용하여 새로운 장르를 내놓을지도 모르겠다. 하루하루 허투루 하지 않고 그려내다 보면 어느 날 내가 내 것의 모습과 방법에 대해 깨닫는 날이 오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만 하고 있다.


나는 글을 쓴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이렇게 방황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변명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무책임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혼란스럽다.




내가 마리솔만큼의 감각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마리솔은 『느끼는 대로』 이야기 속 주인공인 레이먼의 여동생이다. 레이먼은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는데, 형이 자신의 그림을 비웃자 무엇이든지 더욱 똑같이 그리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레이먼은 똑같이 그려내지 못했다. 결국 그 아이는 그림 그리는 것을 포기하려고 했다. 그 순간에 여동생 마리솔이 레이먼이 그리다가 버린 구겨진 종이를 집어 들고 자기 방으로 도망을 쳤다.


레이먼이 마리솔을 쫓아간 그녀의 방에서 놀라운 것을 보았다. 그동안 자신이 구겨서 버린 그림들이 벽에 가득 붙어 있었다. 마리솔은 레이먼이 그린 꽃병을 가리키며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그림이라고 했다. 그녀는 그 꽃병 그림이 꽃병처럼 보이지 않아도 꽃병의 느낌이 난다고 레이먼에게 말해주었다. 이 말에 힘을 얻은 레이먼은 즐겁고 신이 나게 자신이 느끼는 대로 그리고 싶은 것들을 그리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느끼는 대로 글도 쓸 수 있게 되었다.


어느 봄날 아침, 레이먼은 어떤 글이나 그림으로도 붙잡을 수 없는 굉장한 느낌을 그림이나 글로 붙잡지 않기로 했다. 레이먼은 그냥 그 느낌을 마음껏 즐겼다.


레이먼은 사물에 대해 자신의 느낌을 담아내다가 감정에도 자신의 느낌을 느끼는 대로 담아내게 된다. ‘똑같이’가 아니라, 그는 자신이 느끼는 대로 표현하면서 즐거움을 느낀다. 그리고 결국에는 꼭 그림이나 글로 표현하지 않아도 자신이 느끼는 자체만으로도 행복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기준에 맞추어 재단하듯이 하는 창작활동은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처음에는 내가 레이먼과 비슷한 입장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마리솔의 방을 보고 난  뒤 변화하는 레이먼을 보면서 나는 레이먼과 같은 인물이 아니었다. 나는 조언을 감사하게 받지만 내가 변화하려고 전혀 노력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저 나는 내가 느끼는 것에 대해 항상 답을 찾고 있었다. ‘내가 느끼는 것이 남들의 시선에서 이상하지 않을까?’ ‘그들이 내 느낌에 공감할까?’ 그래서 내가 느끼는 것을 내 모습의 틀에 넣어 남들에게 보여주는 것을 매우 조심스러워했다. 이것이 답이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마리솔이 자라서 『그리는 대로』의 주인공이 되었다. 그녀는 친구들도 인정하는 화가가 되었다. 반 아이들과 함께 도서관 벽화를 그리게 된 마리솔은 파란색 물감이 없어서 하늘을 어떻게 그려야 할지를 고민하였다. 그래서 마리솔은 하늘을 끊임없이 관찰한다. 그 날 마리솔은  꿈에서 파란색 옷을 입고, 여러 가지 색깔이 소용돌이치는 하늘을 둥둥 떠다녔다. 다음날 빗속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마리솔은 하늘이 꼭 파란색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학교에 가자마자 마리솔은 도서관으로 가서 여러 가지 색깔의 물감을 섞어서 새로운 색깔을 만들어냈다. 그 다양한 색깔로 하늘을 표현했다.


실제로 하늘은 파랗지만은 않다. 그런데 우리는 하늘을 대표하는 색으로 파란색을 떠올린다. 나 역시 편하게 파란색 하늘을 그리는 사람이다. 내가 깨야 할 고정관념이 너무 많다. 내 생각 속에서 조차 나는 자유롭지 못할 때가 많다.  




마리솔을 보면서 나는 내가 쓰는 것들에 대해 너무 조심하지 말자는 생각을 했다. 이 그림책에서 자유롭고 솔직하게 자신이 느끼는 대로 그림을 그릴 때 색이 칠해진다. 내 글은 여전히 흑백이다.


글자밖에 없는 내 글 속에서도 나다운 모습으로 자유롭게 내가 느끼고 생각한 것에 대해서 쓴다면, 나의 글이 긴 것도, 어렵게 느껴지는 것도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문자의 힘을 믿는다. 내가 정말 잘 다듬어 내놓은 글은 아무리 길어도 어렵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나답게 쓰는 것이 무엇일까.’ ‘나답게 쓰는 것이 좋은 것일까’라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생각을 접자. 마리솔이 보여준 ‘-ish’와 파랗지만은 않은 하늘만을 기억하자고 다짐해 본다. 느껴지는 대로 과감하게 써 보는 노력이 지금 나에게 무엇보다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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