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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미 Sep 20. 2020

동생을 팔러 시장에 간 누나

: 싸게라도 팔아버리고 싶은 내 동생

* 『내 동생 싸게 팔아요』(2010)

- 글: 임정자, 그림: 김영수(아이세움)



부모님이 나보다 동생을 더 예뻐해서 질투를 느낀 기억이 나에게는 별로 없다. 오히려 내 동생이 언니 위주로 살았던 것에 대해서 아마도 불만이 있을 것 같다. 우리가 초등학교 때 엄마가 나를 따라 소풍을 가다 보니, 동생은 항상 혼자 소풍을 갔다. 그때는 어린 동생을 생각하기보다는 반장이었던 나를 따라 엄마가 가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었다. 내 동생이 새 학년이 될 때마다 들었던 이야기가 ‘네가 OO 동생이구나’였다고 한다. 우리가 다른 중학교를 가면서 내 동생은 ‘OO의 동생’이라는 꼬리표를 떼어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역시 동생의 존재가 적지 않았고, 그런 동생이 귀찮았던 적이 많았다.
 



“언니, 어디가?”
내 동생의 목소리가 내 등을 철썩 때린다. 하지만 나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뒤를 돌아보는 순간 그 목소리가 내 발목을 잡을 것을 알기 때문이다.

‘다다다닥, 다다다닥’
동생이 빠르게 뛰어오는 발소리가 들린다. 나는 이제 걸을 여유를 잃었다. 최소한 동생의 속도만큼은 내가 뛰어야 한다.

‘언니! 언니!’
자신의 외침이 공중에 사라지는 것을 몇 번 확인하고 나서야 동생은 모든 것을 체념하듯이 마지막 힘을 다해 소리친다.

“엄마한테 이를 거야!”

앙칼진 동생의 그 외침으로 상황이 종료되었다. 나는 여유를 다시 찾고 걷기 시작했다.

내가 어렸을 때, 자주 있던 일이다. 친구들하고 놀려고 하면, 동생은 꼭 나를 따라나선다. 나는 친구들하고만 놀고 싶었다. 그래서 동생 몰래 집을 나왔다. 그럴 때면 동생은 어떻게 알았는지 귀신같이 뒤쫓아 나왔다. 동생을 버려두다시피 하고 도망갔다가 친구들과 신나게 놀고 집으로 돌아오면 동생은 나를 한 번 '쫙' 째려보았다. 그러고 나서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우리는 또 같이 놀았다.

나에게는 여동생과 남동생이 한 명씩 있는데, 남동생과는 4살 터울이다 보니 싸우기보다는 내가 일방적으로 혼내는 입장이었다. 반면, 여동생과는 2살 터울에다 체격도 비슷하다 보니 둘이 말로도 몸으로도 엄청 많이 싸웠다. 싸우고 나면, ‘동생이 없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동생이 제일 좋은 친구라는 것은 성인이 돼서 알게 된 것 같다. 어렸을 때 동생은 단지 나를 귀찮게도 하고, 화나게 만들기도 하고, 내가 무엇이든지 잘해야 한다고 압박하기도 하는 존재일 뿐이었다. 동생은 내가 하는 것을 다 따라 했고, 내 잘못도 굳이 엄마에게 이야기했고, 동생이 잘못한 것까지도 가끔은 내가 혼이 났다.




『내 동생 싸게 팔아요』라는 책 제목을 보자마자 내 동생에 대한 이런 생각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책 표지의 그림만으로 누나가 동생을 그냥 파는 것도 모라자서 왜 싸게 팔고 싶은지 알 수 있었다.



1-2초도 안 되는 순간에 신기하게도 동생과의 옛 기억들이 나를 가득 채웠다.




짱짱이가 동생을 팔러 시장에 갔다. 동생을 자전거 뒤에 태우고 가는 짱짱이와 동생의 표정이 해맑다. 시장은 동네 골목시장의 모습이다. 인물들은 크레파스의 굵은 선으로 그려져 있고, 색깔도 칠해져 있는데 반해서 시장은 가느다란 연필로만 그려져 있고, 색깔도 입혀져 있지 않았다. 그래도 다양한 물건들과 북적거리는 사람들이 있는 시장의 분위기가 생동감 있게 느껴졌다.

아마도 인물과 시장의 대조적인 그림의 표현은 짱짱이가 동생을 판다는 설정에서부터 시작된 것 같다. 물건을 팔듯이 동생을 팔 수는 있는 시장은 이 세상에 없다. 물건을 파는 시장에서 색깔을 빼서 아이를 팔 수 있는 존재하지 않는 시장의 모습을 표현한 것 같다.

짱짱이가 동생을 팔기 위해서 장난감 가게, 꽃집, 빵집에 들렀다. 짱짱이는 얄밉고, 고자질쟁이고, 욕심꾸러기, 먹보인 동생을 인형 하나, 꽃 한 다발, 빵 하나를 중 어느 것 하나만 받으면 팔려고 했다. 그러나 그때마다 그런 동생은 그곳에 필요가 없다고 했다. 짱짱이는 매번 거절당했다.

짱짱이가 다시 동생을 팔기 위해 나서면서 친구 순이를 만났다. 그런데 순이조차 그런 동생은 거저 줘도 싫다고 했다. ‘거저 줘도 싫다’는 말에 짱짱이는 곰곰이 생각이라는 것을 하기 시작했다. 동생을 인형 하나, 꽃 한 다발, 빵 하나 정도는 얻어야 팔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공짜로 줘도 동생을 데려갈 사람이 없다는 말이 짱짱이를 서운하게 했던 모양이다.

짱짱이는 동생이 같이 놀 때는 자신이 시키는 것을 잘한다고 순이에게 자랑을 했다. 그러면서 짱짱이는 아기, 하녀, 왕자 역할도 잘하고, 심부름도 잘하는 동생이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순이가 거저 달라고 하자 짱짱이는 이런 동생을 거저 주기가 아까워졌다. 동생은 노래를 잘 부르고, 색종이로 시들지 않은 꽃도 잘 접고, 말도 할 수 있고, 춤도 출 수 있었다. 그리고 동생과 집에 함께 있으면 짱짱이는 집을 지키는 것도 무섭지도 않았다. 이제 짱짱이는 빵 하나, 꽃 한 다발, 인형 하나에 동생을 싸게 팔 수가 없어졌다.

말 안 듣고, 귀찮고, 더럽고, 얄미운 동생, 울보, 욕심쟁이, 먹보, 고자질쟁이, 바보 동생이지만 짱짱이에게는 무엇보다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깨달았다. 짱짱이는 누군가가 동생을 사갈 것을 두려워하며 집으로 돌아간다. 반면, 동생은 자신이 싸게 팔릴 것도 모른 채 누나를 따라 시장을 누비며 즐겁게 다녔다. 그래서 막상 집으로 돌아가게 되자, 누나의 마음을 모르는 동생은 시장에서 더 놀다 가자고 한다.

이 그림책의 글을 통해서 동생을 싸게라도 팔고 싶은 누나의 마음이 이해가 되었다. 그리고 공감 가는 현실적인 상황 설정과 과장되게 표현된 듯한 재미있는 인물의 표정의 그림은 웃음이 나게 했다. 글과 그림이 서로 잘 어울려 한 편의 콩트를 보는 기분이 들었다.


특히, 마음먹고 동생을 싸게라도 어떻게든 팔려고 했던 누나가 억만 원을 줘야 팔 수 있을 정도로 동생에 대한 애정을 확인한 뒤, 집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는 것에 이 그림책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아마도 여기서 끝났다면 이 그림책은 누나와 동생 사이의 우애를 강요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을 것 같다.


글은 누나가 동생을 태우고 집으로 신나게 집으로 달려간다는 것으로 끝이 났다. 그런데 그림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결국 동생은 누나 마음을 몰라주고 제멋대로 장난치는 모습으로 끝이 난다. 다시 시장으로 돌아가지 않자 동생은 누나의 머리를 당기면서 누나에게 장난을 친다. 누나는 화가 났다. 그리고 누나는 곧 동생을 거저라도 주지 않은 것에 대해서 후회하게 될 것이다. 누나와 동생의 관계는 가장 솔직하고 일상 속에서 이루어진다. 이것은 현실 속 어느 집에나 있는 누나와 동생의 모습일 것이다.


누나와 동생은 서로 애정은 있지만, 어린 동생이 하는 장난들이 도돌이표 같이 반복되는 일상을 누나가 항상 받아줘야 하는 것이 버거울 수도 있다. 애정은 위기 상황이 아니면 잘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평상시에 제멋대로 하는 동생을 팔아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나는 경험으로 이들이 좀 더 성장하거나 혹은 성인으로 다 성장하면 서로에게 의지할 수 있는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이 그림책을 다 읽고 덮으면서 나는 옅은 웃음이 났다. 물론 때로는 남보다 못한 관계인 경우도 있을 수도 있겠지만, 형제는 같은 어린 시절을 공유한 유일한 존재라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래서 형제는 나의 유년시절과 젊은 나의 부모 모습을 함께 기억할 수 있는 유일한 친구다. 이 사실이 지금 당장의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은 아닐지라도, 그것이 때로는 힘이 되기도 하고 위로가 되는 순간이 있을 것이다.

나는 오늘 이 그림책으로 내 유년시절의 나와 우리 가족을 꺼내 보았고, 짱짱이와 동생의 모습에 한 번 웃었다. 이것으로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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