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싫어!

: '소통의 부재'가 분노로 표출

by 박세미

*『꿀오소리 이야기』(2018)

: 글/ 그림 쁘띠삐에(씨드북)




사회생활을 하면서 힘든 것 중에 하나는 ‘사람’ 일 것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우리는 그 사람으로부터 위안을 얻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은 사람 사이에 소통이 이루어지고 그것으로 인해 공감을 받게 될 때 얻어지는 것 같다.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사람은 다양하고 복잡하다. 서로의 환경이 다르고, 경험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다. 그래서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나처럼 행동할 것은 착각이다. 이렇게 타인을 대하면 예상하지 못했던 상처를 주고받기 쉽다. 소통이 이루어지지 못한 잘못된 인간관계는 사람의 자존감까지 흔드는 경우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왜 저분에게 그렇게 화가 나셨어요?”

“저 사람은 결혼해서 애도 있고, 남편도 사업해서 돈도 잘 번다는데, 왜 회사까지 나와서 남의 일자리를 빼앗아? 그래서 싫어! 그리고 이 사람, 저 사람하고 다 친한 것도 꼴 보기 싫어. 회사에 놀러 왔어?”


“그런데……. 왜 이렇게 화가 나셨어요?”

“저 사람만 왜 특혜를 받는 거야? 나도 열심히 하는데, 왜 나는 그 사람만큼 받지 못하는 거야?”


“그런데……. 왜 화가 나셨어요?”

“저 사람이 너무 웃잖아. 대체 뭐가 좋아서 저렇게 웃고 다니는 거야? 시끄러워 죽겠어!”



상대에게 화가 난 이유가 그 사람이 가진 환경과 사교성 때문이고, 주변에서 그 사람을 감싸는 것만으로도 자신이 피해를 받고 있다고 느끼고, 웃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나빠지기 때문이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유는 아니다.


자신의 이러한 감정을 남들에게 드러내 놓는 것을 ‘솔직한 성격’이라는 말로 포장한다. 정작 본인은 때때로 다른 사람들보다 제대로 일하지 않으면서도 불만은 누구보다 많다는 것을 모른다. 주변 사람들이 자신의 눈치를 보고 있고, 자신 때문에 힘들어한다는 것은 상상하지도 못할 것이다. 자신의 잘못된 행동에는 모두에게 이해받을 수 있을 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우리 주변에 이런 사람들은 마치 꿀오소리 같다. 꿀오소리는 태어날 때부터 난폭한 성격을 가지고 있어서 상대를 가리지 않고 달려든다고 한다. 꿀을 좋아하여 벌에 쏘일 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벌집을 무너트려 꿀을 먹는데, 이것은 두꺼운 피부와 독에 대한 내성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한다. 이런 꿀오소리에 비춰보면, 꿀오소리 같은 사람들도 남들의 시선에는 내성이 생겨서 남에 대한 배려 없이 자신의 감정만을 드러내 놓고, 자신의 분노는 항상 타당하다고 말할 수도 있는 것 같다. 꿀오소리의 이야기를 담은 그림책을 보면서 꿀오소리 같은 사람들이 떠올랐다.




그림책 『꿀오소리 이야기』에서 꿀오소리는 화가 나서 화를 냈다. 꿀오소리는 작은 고슴도치를 겁주고, 느린 거북이를 발로 찼다. 그리고 큰 곰에게는 덤벼들고, 빠른 치타를 사납게 쫓아갔다. 꿀오소리는 크고, 작고, 빠르고, 느린 것과 같이 다른 동물들이 각자 가지고 있는 본능 때문에 화가 났다.


뿐만 아니라, 꿀오소리는 친절하게 준 선물을 내팽개쳤고, 자기 집 옆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이웃집을 부쉈다. 그러면서도 자기는 안락한 집에서 자기 새끼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결국 다른 동물들은 꿀오소리 때문에 밤새 대책 회의를 해서 모두 이사를 떠나기로 했다. 이제 숲에는 꿀오소리 가족밖에 없다.


모두가 떠나고 꿀오소리 가족만 남은 그림책 속에 작가가 묻는다.


“미워하던 모두가 사라졌으니 꿀오소리는 이제 행복하겠죠?”


나는 마지막 장으로 달려가면서, 자신의 주변에 있던 모두가 떠나서 혼자가 되었다면, 아무리 못된 고집불통 꿀오소리라도 자신을 돌아보고 떠난 모두에게 미안하다고 할 것이라고 결말을 예상했다. 최소한 사회는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것이며, 나의 가족을 지키려고 모두를 적으로 만들었다는 것은 비겁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뻔한 결론이지만, 그것이 당연하고, 그래야 어린이들에게 교훈을 주는 그림책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마지막 장은 나의 예상을 빗나갔다. 마치 그런 결말을 기대했던 나에게 꿀오소리가 화를 내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마지막 장이 넘겨졌다. 잔뜩 화가 난 꿀오소리가 얼굴만 지상으로 쏙 내밀고 있다. 그리고 ‘끝’이라고 쓰여 있다. 동시에 ‘정말 꿀오소리 같은 사람들은 피하는 것이 상책일까?’라는 질문이 떠올랐다. 그럴듯한 정답을 말하고 싶지만, 개인적으로는 피하는 것이 답이라는 생각이 도덕 교과서적인 답보다는 앞선다. 이 그림책에서 꿀오소리는 주변에 아무도 없어도 속상해 보이지는 않았다. 다만, 자신의 분노를 받아줄 상대가 없는 것에 화가 나는 것 같았다. 마지막 장을 보면서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어쩌면 당연한 결론이라고 생각했다. 꿀오소리는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할 의지가 전혀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이 책은 분노조절장애를 소재로 하여 이야기했다고도 하는데, 나는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분노란 부당하거나 고통스러운 상황을 겪으면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감정이라고 볼 수 있는데, 꿀오소리는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도 분노를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꿀오소리가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는 것보다는 분노의 원인 자체에 주목해야 할 것 같다.


나는 꿀오소리의 분노의 원인은 상대의 존재 자체가 싫다는 것에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꿀오소리는 상대의 정체성을 드러낼 만한 것들에 모두 화를 냈던 것 같다. 이것은 ‘소통의 부재’를 말해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꿀오소리는 누구와도 소통하고 싶지 않고, 철저하게 자기만의 동굴에만 있으려고 하는 것 같다. 누구도 꿀오소리에게 ‘왜 화가 났니?’라든가 ‘문제가 뭐니?’라고 묻지 않는다. 모두가 그 순간을 피하려고만 하고, 그 공간을 떠나려고만 한다. 이것은 꿀오소리의 마음이 상대에게 손톱만큼도 비친 것이 없기 때문은 아닐까. ‘꿀오소리의 옆에 잠깐이라도 있어볼까’라는 마음이 들지 않게 꿀오소리가 상대를 철저하게 차단시킨 것은 아닐까.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에요!’ 라거나 ‘마음대로 그렇게 생각하라고 해!’라며 원천봉쇄의 말을 하는 사람에게는 ‘왜?’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은 마음이 들 수가 없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이해할 수 있는 경우의 수를 완전히 제거하기 때문이다. 꿀오소리에게는 모두가 지나가는 나그네였고, 자신 앞을 가로막는 장애물이었을 뿐이다. 흑백의 그림처럼, 꿀오소리에게는 ‘나’ 아니면 ‘적’이었다. 세상은 흑백이 아닌데, 꿀오소리만 흑백의 논리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또, 이것은 누군가에게는 폭력이 될 수도 있다. 꿀오소리 같은 사람 주변에는 자신이 꿀오소리 같은 사람에게 당하는 것이 자신에게 문제가 있기 때문인지를 고민하며, 열심히 자신의 문제점을 찾는 사람이 분명히 있다. 아무리 찾아도 자신에게 문제가 없는데, 매번 꿀오소리와 문제가 생길 때마다 그 당당함에 위축되어 ‘나에게 문제가 있는 것인가’를 의심하기 시작하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은 괴로울 수 있다.


소통은 서로에 대한 적응과 신뢰에서 시작될 수 있는 것 같다. 서로가 다른 것을 인정하고 서로에게 적응하면서 그 시간 속에서 신뢰를 쌓아야지 비로소 소통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적응은 무조건 서로에게 맞추라는 것이 아니라 포기할 것은 포기하고, 주장할 것은 주장하면서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인간관계 속에서 관계는 발전되고, 사람은 성장될 것을 기대한다.




<우리 아이의 한 줄 평>

나는 꿀오소리의 행동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꿀오소리가 왜 그랬을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다. 꿀오소리가 경계심이 너무 커서 두려움에 공격을 먼저 한 것 같았다. 그래서 ‘꿀오소리는 항상 나쁠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항상 나쁜 것은 없을 것 같다. 담배와 술을 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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