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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미 May 27. 2021

누구의 진심을 듣고 싶은가요?

: 알사탕의 마법

*『알사탕』(2017)

: 글/ 그림 백희나(책읽는곰)




내가 알고 싶은 사람의 마음을 몰라서 답답할 때가 있다. 내가 나를 확신하지 못해서 스스로 움츠러들 때가 있다. 이야기를 나눌수록 오해가 풀리기보다 상처만 받을 때가 있다. 변명이라도 하고 싶지만, 어떤 말로 어디서부터 어떻게 말해야 될지 모를 때가 있다.


‘말’이라는 것이 다른 사람의 마음에 내 마음처럼 다가가면 좋을 텐데, 그러지 못할 때가 많이 있다. ‘말’이 ‘소리’가 되는 순간, 책임은 나에게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 것이 아닌 것 같을 때가 있다. 경험과 학습을 통해 자신의 말을 조절하고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려고 노력할 뿐이다.


반대로, ‘말’ 하지 않아도 내 마음을 알아줄 것이라는 기대감에 표현을 하지 않을 때도 있다. 함께 지낸 시간과 추억으로 나의 마음을 나처럼 봐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 또한 지내온 세월로 다른 사람의 마음을 가늠하곤 한다. 하지만, 이것은 어느 한 사람의 인생에 위기가 오면 균형을 잃기 쉽다. 서로의 마음을 알아주기를 바라고, 알아줄 것이라는 기대만으로는 소통할 수가 없다. ‘말’을 해야 상황을 알고, 마음을 알아야 행동을 할 수가 있다.


이럴 때, 내 마음은 들키지 않으면서 내가 듣고 싶은 혹은 들어야 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내 생각이나 행동에 어렵지 않게 확신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동동이가 마법의 알사탕을 먹어서 아빠와 구슬이의 마음의 소리를 듣게 되어 그들을 이해하고, 돌아가신 할머니 목소리를 들어 그 빈자리를 채우면서 친구에게 먼저 다가갈 수 있는 용기를 낸 모습에 흐뭇한 미소가 지어지는 건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동동이는 구슬이와 아파트 놀이터에 나왔다. 구슬이는 같이 지낸 지 8년이 된 동동이의 반려견이다. 동동이는 혼자 구슬치기를 해도 외롭지 않다고 생각하려고 애쓰는 것처럼 보인다. 친구들이 구슬치기의 재미를 몰라서 공놀이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구슬이만 구슬치기를 하는 동동이를 쳐다보고 있다.


‘동동이,’ ‘구슬치기,’ ‘구슬이’ 그리고 동그란 아이의 얼굴이 동동이가 순하고 둥글둥글한 성격을 가졌을 것 같은 느낌을 주지만, 이 아이의 얼굴에는 표정이 없어 무뚝뚝하게 보이고, 뭔가 불만스러워 보여 까칠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동동이는 새 구슬이 필요해서 문방구에 갔다가, 크기도 모양도 색깔도 다양한 구슬처럼 생긴 알사탕을 샀다. 동동이는 몰랐지만, 이 알사탕은 마법의 사탕이었다. 이 알사탕을 먹으면 그것과 같은 색깔과 모양의 주변 사물이나 사람의 소리가 들렸다가, 다 먹고 나면 그 소리도 함께 사라진다.  


6개의 달콤한 알사탕 중에 동동이는 눈에 익은 붉은 체크무늬의 알사탕을 먼저 먹었다. 박하맛이었다.  


귀가 뚫릴 듯한 진한 박하 향을 비집고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이상한 소리를 따라가 보니 알사탕과 같은 붉은 체크무늬의 소파가 동동이에게 말을 하고 있다. 지난 일요일부터 보이지 않았던 리모컨이 소파의 옆구리에 껴 있다는 것을 소파가 알려주었다. 소파는 그것 때문에 결려서 아프다고 했다. 그리고 아빠 방귀 냄새 때문에 숨쉬기가 힘들다고 했다.


동동이는 신기한 이 상황을 시험해 보는 마음으로 하얀색에 갈색 점박이가 있는 알사탕을 먹었다. 역시 동동이의 예상대로, 그 알사탕과 같은 점박이 무늬가 있는 구슬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동동이는 구슬이와 대화를 나누면서 구슬이에 대한 오해를 풀었다. 구슬이가 동동이와 노는 것이 싫은 것이 아니라, 늙어서 힘들다는 것을 오늘에서야 알게 되었다.


세 번째로 동동이는 아빠의 잔소리에 대한 복수로, 아빠의 턱수염과 같은 모양의 알사탕을 먹고 자려고 했다. 아빠는 퇴근하고 들어서면서부터 동동이에게 수십 가지 잔소리를 쏟아낸다. 동동이는 아빠의 잔소리가 너무 싫다. 잔소리만 하는 아빠 마음의 소리가 동동이에게 들리기 시작했다.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아빠의 마음에서 수없이  ‘사랑해’라는 말을 쏟아내고 있다. 동동이가 예상하지 못한 말이었다. 동동이는 설거지하는 아빠 뒤에 서서 아빠를 꼭 안아주었다.


다음날, 동동이는 분홍색 알사탕을 먹었다. 먹어보니 사탕이 아니라, 풍선껌이었다. 풍선을 불었더니 그것이 날아다니다가 동동이 귓가에서 터졌다. 터진 풍선껌 사이로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할머니는 친구들을 만나서 재미있게 잘 지내고 있다고 했다.


할머니의 알사탕은 왜 분홍색 풍선껌이었을까? 먼저, 분홍색인 이유는 구슬이가 동동이네 집에 오게 된 이야기가 그려진 『나는 개다』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그 이야기 속에서 할머니는 즐겁게 분홍색 립스틱을 바르고 외출을 한다. 할머니가 멋을 낼 때 바른 분홍색 립스틱이 할머니의 행복한 모습을 대변해 주고 있다.


그리고 할머니의 알사탕은 사탕이 아니라, 풍선껌이었던 것은 껌은 ‘펑’ 터지기는 하지만, 내가 버리지 않는 한 그 형체가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동동이는 그 풍선껌을 식탁 밑에 붙여 두고는 할머니 목소리가 듣고 싶을 때면 언제든지 다시 그 풍선껌을 씹으려고 했다. 할머니를 의지하는 동동이의 마음이 얼마나 큰지 느낄 수 있다. 아마도 동동이에게 할머니가 엄마의 자리를 대신했을 것이다.


분홍색 풍선껌은 할머니에 대한 동동이의 그리움이다. 풍선껌은 할머니가 동동이 옆에 살아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해 주었다. 현실적으로 할머니를 만날 수는 없지만, 할머니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것만으로도 동동이는 위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나의 어린 시절이 녹음된 테이프에 실려 나오는 철없는 나의 밝은 목소리와 우리 부모님의 젊은 목소리가 나를 다독여줄 때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동동이가 울긋불긋한 단풍을 닮은 알사탕을 먹자 밖에서 소리가 들렸다. 소리를 따라 나간 그곳에서 낙엽이 인사를 한다.


“안녕.” “안녕.” “안녕.”  …… “안녕.” “안녕.” “안녕.”


커튼처럼 드리워진 나뭇잎 사이 너머 색깔 줄무늬 티셔츠를 입은 동동이 또래 남자아이가 서 있는 모습이 희미하게 보인다.


동동이는 마지막으로 투명한 알사탕을 먹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 정적을 뚫고 동동이가 그 아이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나랑 같이 놀래?”


동동이는 킥보드를 타고 아이는 스케이드보드를 타고 함께 놀았다. 그 킥보드와 스케이드보드가 동동이네 아파트 앞에 나란히 세워져 있다. 동동이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다. 동동이에게 친구가 생겼다.


투명한 알사탕에 색깔을 입히는 것은 이제 동동이의 몫이다. 자신이 어떤 색의 사람으로 성장할지는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동동이는 더 이상 외롭지 않고, 소극적인 아이는 아니라는 것이다.




동동이는 돌아가신 할머니를 그리워하면서 아빠와 둘이 산다. 동동이에게 엄마는 없지만, 엄마가 필요한 아이가 아니라, 친구가 필요한 아이로 보인다. 그런데 친구에게 먼저 다가갈 용기는 없다. 반려견 구슬이를 친구로 지내면서 혼자서 놀아도 충분했다고 생각했다. 이런 동동이를 우리 주변에서 만나는 것을 어렵지 않다.


이 그림책의 그림에 등장하는 소품은 사실적이고, 구체적이다. 스컬피로 만든 인물들은 3D 기법 촬영으로 그림책 속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 같다. 게다가 글 텍스트의 그 크기와 모양 등으로 소리가 진짜 들리는 것 같다.


특히, 지면 전체에 띄어쓰기도 되어 있지 않은 채, 빽빽하게 들어서 있는 아빠의 잔소리는 쉬지 않고 쏘아대는 아빠의 목소리로 들리는 것 같았다. 글의 내용을 보면, 퇴근한 아빠가 현관문에 들어서면서 시작된 이 잔소리가 동동이가 잠자리에 들기까지 계속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느 집에서나 일어날 법한 이야기라서 공감이 돼서 웃음이 난다. 그리고 동동이 아빠에게서 엄마의 냄새가 난다. 동동이 아빠는 아빠 역할뿐 아니라, 동동이에게 엄마로서의 역할도 최선을 다해서 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서 동동이에게 엄마의 자리에 대한 아련함이 느껴지지 않았던 것 같다.


이 그림책은 본문뿐 아니라, 책의 앞뒤 속지까지 인물들이 돌아다니면서 하나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희미한 배경 속에 감춰져 있는 것을 찾다 보면서 어느새 동동이를 응원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알사탕이라는 환상의 세계를 속에서 소파에서 시작된 소통이 점점 그 크기와 무게가 커지면서 동동이는 자신의 주변과 소통했다. 생명이 없다고 생각한 소파의 웃지 못할 충격적인 고통을 접했고, 자신의 소중한 가족인 구슬이와 오해를 풀었고, 아빠의 사랑을 통해 자존감이 높아졌고,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채워지면서 동동이는 밖으로 나와 친구에게 먼저 손을 내밀 수 있게 되었다. 집안에서 확인된 자존감은 집 밖으로 나와 자신을 드러내는데 주저함이 없게 만들었다.


알사탕을 통해 들리는 이야기로 동동이가 주변을 이해하고, 자존감이 높아져 자신감을 얻게 된 것 같다. 어쩌면, 알사탕이 동동이를 찾아온 것이 아니라, 동동이가 자신에게 필요한 알사탕을 스스로 찾아오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이 들 정도로 동동이의 성장이 우연 같지가 않다.





<우리 아이의 한 줄 평>

나의 알사탕은 어떤 색깔일까?

나에게 필요한 알사탕은 어떤 것일까?              

            



https://m.oheadline.com/articles/Odr1-5yRBfIkjViajlLORw==?uid=377834be5ed845d58ca4e1bbedd6b0d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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