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쳐 보이는 낯선 사람의 피곤함이 나를 움직이는 날이 있다. 그 마음이 공감이 돼서 그 사람에게 작은 배려를 보인다. 나는 그 사람의 마음을 열려고 손을 내민 것이 아닌데, 그 사람이 나에게 마음을 열 때가 있다. 그리고 나는 예의라는 이름으로 그 사람의 무례를 감당해 내야 하는 순간이 생긴다. 그러면 이러한 관계는 지속되기가 쉽지 않다.
처음에는 서로 다른 사람들이 만나서 각자 살아온 이야기를 풀어놓으면, 그 삶이 다르면 달라서 새로워서 재미가 있고, 그 삶이 비슷하면 비슷해서 그 사람을 더 빨리 이해하게 된다. 하지만 서로의 상황을 살피면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지 못하는 관계는 그 관계를 유지할만한 이유가 없어진다. 그러나 마음이 사라졌다고 해서 상대방에게 이제 ‘싫어,’ ‘안 돼’라는 말을 하기가 어렵다.
사람을 만나는 관계에서는 모두 그렇지만, 특히, 아이를 키우는 입장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스스로가 ‘나도 아이를 키우는 입장인데 그것도 이해하지 못하나’ 하는 마음이 들면, 스스로에게 민망하기도 하고, 자신이 너무 이기적인 부모가 되는 것 같아서 기분이 복잡할 때가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곰씨가 바로 우리들의 그런 모습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동안 곰씨에서 내가 보이기도 했고, 혹시 내가 토끼가 된 적은 없었는지 나를 되돌아보기도 했다.
곰씨는 하얀 곰이다. 그가 앉아 있는 의자의 테두리도 하얗다. 그 하얀색의 연결고리로 그 의자가 곰씨의 공간임을 말해 주는 것 같다. 곰씨의 의자는 공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긴 의자다. 곰씨는 자신의 집에서 1인용 의자에 앉아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공원 같은 공개된 장소에 있는 긴 의자에 앉아서 자신의 시간을 보내려는 것으로 볼 때, 곰씨는 이미 다른 이들과 소통할 준비가 되어 보였다.
그런데 긴 의자에 앉으면 서로가 마주 볼 수가 없다. 또 모르는 사람들이 오래 앉아 있기에는 다소 어색한 공간이기도 하다. 그래서 곰씨는 타인과 ‘적당한’ 혹은 ‘조금’의 소통만을 원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곰씨는 이미 형성된 관계에서 친밀함을 유지하려거나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 노력하기 위해서 긴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곰씨는 긴 의자에서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는 동안 마주치는 낯선 이에게 약간의 호의를 보일 수 있는 그 정도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있을 뿐이다.
곰씨는 지친 탐험가 토끼에게 자신의 의자에서 ‘잠시’ 쉬었다 가라고 먼저 제안했다. 곰씨에게 들려주는 탐험가의 이야기는 신기하고 유쾌했다. 그 배려는 탐험가가 그의 고단함을 내려놓고 쉴 수도 있었고, 곰씨에게도 즐거웠던 시간을 만들어 주었다. 곰씨는 그가 ‘잠시’ 쉬기를 바랐다. 그런데 이 탐험가 토끼는 무용가 토끼를 곰씨의 의자에서 만나게 되었고, 아기까지 낳아 매일매일 곰씨를 찾아왔다.
무용가 토끼는 춤을 사뿐사뿐 추어야 하는데, 깡충깡충 추어서 마을에서 쫓겨났다고 했다. 그 모습을 탐험가 토끼가 위로해 주었고, 곰씨의 축하를 받으며 그들은 결혼을 했다. 그 토끼 부부가 아기 토끼를 한두 마리 데리고 곰씨를 매일 찾아올 때까지만 해도 곰씨는 그들을 반갑게 맞이했다. 그러나 토끼 가족이 점점 더 늘어나면서 곰씨가 보내는 의자에서의 시간은 점차 엉망이 되어 갔다.
제일 먼저, 곰씨는 차를 즐길 수가 없게 되었다. 곰씨는 힘들다고 말하기보다, 차를 즐기기가 ‘조금’ 힘들어졌다고 표현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곰씨는 토끼 가족들의 방문을 견딜 만했던 것이다. 곰씨는 차를 마시면서도 한쪽 팔에는 아기 토끼들을 안고 있고, 다른 쪽 팔로 찻잔을 들고 있다. 곰씨가 아기 토끼들에게 애정이 있는 것이 느껴진다. 그리고 토끼 가족들의 시선도 곰씨를 향해 있어서 이들도 곰씨와 시간을 함께 보내기 위해서 찾아온 것 같이 보인다.
아기 토끼들이 더 태어나면서 곰씨는 자신의 시간을 긴 의자에서 제대로 보내지 못하게 되었다. 아기 토끼들은 곰씨의 의자에서 놀이터처럼 놀고, 음악을 듣고 있는 곰씨를 올라타고 올라가서 눈을 가리는 등 곰씨에게 함부로 하는 모습이 보인다. 부부 토끼는 아기 토끼들에게 어떠한 제지도 하지 않았다. 부부 토끼는 곰씨가 아이들을 예뻐하니 다 이해해줄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애들이 다 그렇지’라는 편한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자식은 그 부모한테 가장 소중하고 귀한 존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조차 자식들이 자신에게 함부로 하면 화가 난다. 부모의 몸과 마음이 편한 쪽으로만 상황에 맞춰 생각하는 것은 타인에게는 민폐다.
곰씨의 의자는 결국 토끼 가족들 차지가 된다. 곰씨는 의자 끝에 걸터앉아서 책도 제대로 읽지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토끼 가족 누구에게도 곰씨를 바라보는 시선을 찾을 수가 없다. 이들은 이제는 곰씨의 의자에서 자기들이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에 익숙해진 것이다. 그들에게는 곰씨를 찾아오는 것이 매일매일의 일상이 되었다. 더 이상 곰씨에게 자신들이 손님이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들 마음대로 생각하고, 곰씨도 자신들처럼 그들과 함께 하는 일상을 즐길 것이라고 함부로 판단하는 것이다. 이들이 하는 곰씨와의 소통은 더 이상 없다. 이들이 매일 곰씨를 찾아오는 건 곰씨와 함께 하려는 것이 아니다.
곰씨는 그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싶은데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를 모른다. 곰씨는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이 아니라, 망설이는 말만 혼자서 되뇔 뿐이다. 차 한잔 마음 편하게 마시지 못하는 상황이 되자 곰씨는 토끼 가족에게 자신의 마음을 말하기로 결심한다.
“여러분과의 시간은 더할 나위 없이 재미있답니다. 그런데 제가 차를 마실 때 아이들은 음악을 먹고, 아니 아니 빵을, 그게 아니라 제 꽃이...... 아, 제가 무슨 말을 하는 걸까요?”
말하는 곰씨를 토끼 가족이 오히려 의아하게 쳐다본다. 곰씨는 땀을 뻘뻘 흘리고 있고, 토끼 가족 사이로 물음표가 떠다닌다. 결국 곰씨는 정작 하고 싶은 말을 꺼내지 못했다. 곰씨가 고민하는 모습에서 곰씨의 몸에 하얀색 색깔이 없어지고 의자도 하얀색을 잃었다. 자세를 자꾸 바꾸는 곰씨의 모습과 빨간색 난잡한 선들이 그의 고민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곰씨가 고민을 끝냈다. 그가 내린 결론은 의자에 아무도 앉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곰씨는 의자에 뻗어 누워서 시집을 읽기도 했고, 자신이 앉아 있는 자리만 빼고 페인트칠을 하기도 했고, 무거운 바위를 옮기기도 했고, 긴 의자 옆에 1인용 의자를 만들어 놓기도 했고, 똥을 싸놓기도 했다. 자신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한 방법은 다 했지만, 토끼 가족은 곰씨의 마음을 눈치 채지 못했다. 오히려 곰씨를 도와준다면서 매일매일 찾아와서 귀찮게 했다. 게다가 하늘도 곰씨를 도와주지 않았다. 마지막에 절규하는 심정으로 곰씨가 의자에 똥을 싸 놓았을 때는 비가 내려서 실패했다. 날카롭게 쏟아지는 비를 보면서 곰씨가 소리친다.
“말도 안 돼! 날보고 더 이상 어쩌란 말이야. 내가 얼마나 노력했는데. 난 세상에 다시없는 친절한 곰이라고.”
나는 이 말에 정신이 들었다.
‘이 세상에 나만 노력해서 유지되거나 회복될 수 있는 관계가 있을까.’
‘나는 이 세상에 다시없는 착한 사람이 되어야 할까.’
나에게 무례한 사람에게 참고 참다가 겨우 한 마디를 건네면, 우리는 예상하지 못하는 말을 들을 때가 있다. ‘그래? 알았어. 진즉에 말하지. 몰랐네.’ 그동안 참고 이해했던 사람의 시간을 의미 없게 만드는 말이다. 결국 참았던 사람이 ‘그래, 이해해 줘서 고마워’로 이 대화는 대부분 흐지부지 끝이 난다. 참는 것이 착한 것이 아니고, 상대가 상처 받을까 봐 나 혼자 전전긍긍하면서 방법을 찾는 것이 착한 것이 아니다. 착할 필요가 없다. 왜냐면, 나의 마음과 상황을 설명하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곰씨가 선택한 방법은 모두 자기 스스로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누워서 책을 보는 것도 페인트에 묻지 않으려고 움직일 수 없게 된 것도 무거운 바위를 옮기다 결국 자기 발에 떨어뜨려 다치는 것도 허술한 1인용 의자에 앉아 있던 것도 자괴감을 감수하고 의자에 똥을 싸는 것도 모두 자신을 괴롭히는 방법이다.
그리고 이 방법들은 토끼 가족에게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토끼 가족은 곰씨가 자신들을 만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을 눈치도 채지 못했다. 오히려, 그런 방법들이 곰씨를 괴롭게 할 것이라는 것을 알았던 것처럼, 그들은 곰씨를 도와준다는 명분으로 계속 찾아왔다. 그리고 비에 맞아 쓰러진 곰씨를 이들이 먼저 발견했고, 그런 곰씨를 걱정하고 간호했다. 덕분에 곰씨는 정신을 차렸다.
곰씨가 진짜로 건강을 회복하게 된 것은 실컷 울고 나서 자신의 속마음을 토끼 가족들에게 모두 이야기하고 난 뒤이다. 곰씨는 자신의 마음속 이야기를 하나씩 하나씩, 천천히 천천히 조심스럽게 그들에게 부탁하듯이 말했다. 그것도 울고 나서 며칠이 지나서 겨우 말한 것이다. 그래도 이렇게라도 하고 나자 곰씨가 편안해졌다. 마음을 졸이면서 살다가 그 마음을 다 내보이고 나니 곰씨는 너무 피곤해져서 잠이 들었다. 토끼 가족들도 곰씨를 더 이상 방해하지 않았다. 넓은 숲 속에 곰씨만이 혼자 긴 의자에 포근한 이불을 덮고 깊이 잠들어 있다. 그 주변에 토끼 가족들이 각자 흩어져서 자신들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비로소 곰씨와 토끼 가족들에게는 적당한 거리가 생긴 것이다.
이 책의 본문은 여기서 끝이 난다. 한 장 더 넘기면 속지에 ‘그 이후로 이들은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라고 이야기해주듯이 본문의 마지막 장면과 같은 숲 속에서 우리는 한가롭게 산책하고 있는 곰씨를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아기 토끼 셋이 그 곰씨 뒤를 따라서 걷고 있었다. 그들은 곰씨에게 매달려 있지 않았다. 또 곰씨와 토끼 가족들은 곰씨의 의자에서 북적거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숲이라는 넓은 공간에서 각자의 방법으로 살면서 서로 외면하지는 않고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그림책의 저자는 이렇게 말했다.
누군가와 함께 한다는 것은 처음처럼 신나는 일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깊어지는 관계 속에선 간혹 ‘싫어’라는 말도,
‘오늘은 혼자 있고 싶어’라는 말도 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상대가 나의 마음을 알아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기보다는 때로는 솔직한 나의 마음을 말하는 것이 우리의 관계를 더 견고하게 지속시켜 줄 때가 있다. 물론 때로는 그 솔직함이 상처를 줄 수도 있고, 그 상대가 토끼 가족처럼 나를 진심으로 위하는 눈치 없는 사람이 아니라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어떤 상황이든지 간에 내 마음이 편안해지는 방향에 맞추어 생각이나 방법을 찾아야 될 것 같다. 누군가의 희생으로 이루어진 관계는 대가를 치르기 마련이다. 희생을 치르는 사람이 보상을 받고 싶은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상대에게 맞춰 이 세상에 둘도 없는 착한 배려심 많은 사람이 되기보다는 서로가 맞춰 이 세상을 외롭지 않게 살아가는 사람이 되는 것이 더 중요할 것 같다. 내 마음을 보여서 받아줄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 관계가 유지되는 것이고, 받아줄 수 없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과의 인연은 거기까지인 것 같다. 사람 사이에 적당한 거리와 마음의 균형이 사람 사이의 소통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