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의 위세 앞에 몇십 년씩 운영되던 가게가 문을 닫고, 몇 대째 내려오던 가업도 휘청댄다. 회사는 저마다 신입사원을 뽑지 않고, 있던 직원마저 내쫓는 일도 생기게 되었다. 지난 2년 동안 코로나는 우리에게 이 모든 어려움을 참고 견뎌내라고만 했다.
물론 코로나가 없었던 시절에도 어려운 시절은 있었다. 취직이 쉽지만은 않았고, 경단녀도 있었고, 노후 문제도 있었다. 그러나 코로나는 그 끝을 알려주지도 않은 채 우리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어서 앞으로 얼마나 더 참아내야만 하는지를 알 수 없다는 것이 사람들을 더 지치고 힘들게 한다. 그래서 코로나 시대 이후에 자영업자들이 폐업신고를 하고, 신입사원 채용을 하지 않는 회사들이 많아졌다.
일을 그만두는 일이 자신의 의지로 시작하고 정리하는 일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하던 일을 정리해야 하고, 새로 시작하는 것은 막막하게 될 때, 모든 원인이 자신에게 있는 것 같고, 무기력해진다. 이런 자신의 모습이 한없이 초라해 보인다. 여기에 ‘코로나’라는 변수가 더해져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열심히 살지 않아서 겪는 좌절이 아닌데, 녹록지 않은 현실은 자신을 한없이 깎아내리게 만든다. 이런 현실에서 느끼는 절망감을 무엇으로 치유할 수 있을까?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택시회사에서 해고된 모범기사였던 당나귀 씨, 식당 주인이 이사를 가서 일자리를 잃어버린 식당에서 일하던 바둑이 씨, 얼굴에 있는 상처 때문에 편의점 일에서 쫓겨난 야옹이 씨, 노점에서 두부를 팔다가 쫓겨난 꼬꼬댁 씨가 있다. 이들에게는 내일부터 일할 곳이 사라졌다. 자신의 사정으로 일을 그만둔 것이 아니라, 그곳에 일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일을 그만둔다는 것이 안타까움을 더 한다.
이들을 일터에서 쫓아내는 사람들의 표정이나 시선이 그려지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이들이 무시당하고 있는 것이 느껴져서 안쓰럽다. 어떤 표정으로 그들을 대하고 있는지가 그려져 있지 않아도 상황을 통해 보이는 것 같다. 그림을 보는 사람에 따라 느끼는 정도가 달라지기 때문에 그려진 표정보다 가려진 모습이 더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이들이 처해 있는 상황에 따라, 이들을 쳐다보는 시선의 높낮이도 정해진 것 같아서 서글펐다. 그 사람이 있는 위치에 따른 무시의 단계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 운전 기술이 있던 당나귀 씨는 사무실에서 자신을 해고하는 사람 앞에 앉아서 해고 통지를 받았고, 동료들의 배웅을 받으면서 회사를 나왔다. 바둑이 씨는 특별한 기술은 없어도 되는 일이지만, 식당 주인이 이사를 가면서 바둑이 씨와 더 이상 함께 하지 못하는 것에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던 것으로 보아 식당에서 서로 정을 쌓고 함께 일한 것을 알 수 있었다. 야옹이 씨는 한쪽 눈이 불편한 것에 대해 공격을 받으면서 해고당했다. 직접 야옹이 씨를 향한 비난을 듣지는 못했지만, 아마도 야옹이 씨는 자신을 향해 퍼부은 못된 말을 들었을 것이다. 끝으로 노상에서 장사를 하던 꼬꼬댁 씨는 정중한 말투로 장사를 하지 못하게 하는 사람들에게 쫓겨났지만, 그 사람들을 만나기 전부터 그 길을 지나다니는 다른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도 이미 받았을 것이다. 노란색의 선이 꼬꼬댁 씨와 다른 사람들을 분리시켜 놓았다.
일자리를 잃은 그들은 각자의 역에서 지하철을 탔다. 표정이 없는 사람들 속에 이들의 표정도 지워져 버렸다. 사람들이 지하철에 점점 가득 찼다가 모두가 빠져나가고 나서야 자리가 생겼다. 그제야 당나귀 씨, 바둑이 씨, 야옹이 씨, 꼬꼬댁 씨는 자리를 잡고 앉았다. 지하철 밖의 동네 모습이 북적이던 도시를 벗어난 듯 한적해 보인다. 나란히 앉아 있는 그들의 뒷모습에서 하루의 고단함이 느껴진다.
이들은 목적지에 도착해서 지하철 5번 출구로 나왔다. 하늘과 가장 가까운 곳으로 가는 것처럼, 그들은 끝이 보이지 않는 계단을 서로 말없이 익숙하게 올라간다. 이들의 얼굴에서 어떤 표정도 읽을 수가 없다. 이들이 함께 가는 그 길이 즐겁게 느껴지지 않을 뿐이다. 하루의 일과를 끝내고 습관처럼 걸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무언가에 홀리듯이 생각 없이 걷던 이들을 멈추게 만든 것은 낯선 사람들의 목소리에 얹어진 그들의 이야기였다. 꿈고개로 61번지 도둑들의 집에서 흘러나왔던 신세한탄의 소리는 오늘 하루 자신들이 직장에서 쫓겨나야 했던 이유와 다르지 않았다. 도둑들은 못된 짓 하는 것조차 쉽지 않게 되었고, 공부까지 해야 하고, 나이가 많아지면서 이것이 장해가 된 것에 비추어 자신들이 열심히 살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이들은 용기 있게 도둑들의 집 문을 두드리고 그들에게 말해주었다. 열심히 살았는데도 할 일이 없어졌다고. 열심히 살아도 소용없다고.
‘열심히’라는 말은 ‘열심히’만 하면 모든 것이 이루어질 것 같은 마법의 말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이들은 말해주고 싶었던 것 같다. 오히려 열심히 살았는데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일자리를 잃은 것에 대해서 이들은 배신감을 느끼고 있을지도 모른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에게 ‘열심히’라는 마법도 통하지 않는다면,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가.
도둑들도 이들에게서 자신들의 모습을 보았는지 이들을 집으로 들였다. 패잔병 같이 모인 이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해야 할지 함께 고민에 빠졌다. 그런데 눈치 없이 배가 고프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하나씩 꺼내놓기 시작했다. 당나귀 씨는 동료들에게 이별 선물로 받았던 참치 캔을 내놓았고, 바둑이 씨는 식당 주인에게 받은 한 통의 김치를 꺼내놓았다. 야옹이 씨는 쫓겨나면서 챙겨 왔던 삼각김밥을 내놓았고, 꼬꼬댁 씨는 미처 다 팔지 못해 남은 두부를 내놓았다. 그리고 도둑들에게는 냄비, 가스레인지, 수저, 양초가 있었다. 자신들이 가진 것을 모아서 그들만의 저녁 밥상을 차렸다.
그런데 예상하지 못했던 변화가 이 밥상에서 시작되었다. 손님이 많은 찌개 집을 함께 하는 상상을 하면서 이들은 희망의 싹을 틔우기 시작했다. ‘오늘도 멋찌개’라는 찌개 집에는 자신들을 외면했던 사람들이 손님으로 찾아온다. 현실에서 소외당한 사람들이 함께 차린 밥상에서 꿈을 꾸기 시작했다. 아마도 이들의 상상은 현실이 될 것이다.
당나귀 씨, 바둑이 씨, 야옹이 씨, 꼬꼬댁 씨와 4명의 도둑들은 열심히 도시 한복판에서 자신들의 일을 하고 있던 앞면지의 흑백 현실 속에서 뒷면지로 가면 꿈고개로 61번지 문에 가게 문구를 쓰고, 페인트 칠을 하고, 간판도 옮기는 이들의 모습에 색깔이 입혀져 있다. 이러한 모습에서 삶에 대한 여유와 희망이 느껴진다. 그래서 당분간은 브레멘을 찾지 않을 것 같다.
이 그림책을 보면, 독일의 그림형제 ‘브레멘 음악대’라는 이야기가 떠오른다. 농장에서 쓸모없어진 당나귀, 사냥개, 고양이, 수탉이 브레멘을 찾아 함께 떠나던 중 도둑들의 은신처에 머물면서 도둑들을 쫓아내고 악기를 연주하며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는 이야기에서 이 그림책의 당나귀 씨, 바둑이 씨, 야옹이 씨, 꼬꼬댁 씨와 도둑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일상에서 밀려난 등장인물들이 현실에서 좌절을 느끼면서 브레멘을 꿈꾸고 이들이 도둑들을 만나면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는 것이 닮아 있다.
그런데 이 그림책이 원작보다 더 공감이 되었다. 등장인물들이 당나귀, 바둑이, 야옹이, 꼬꼬댁이 아니라, 당나귀 씨, 바둑이 씨, 야옹이 씨, 꼬꼬댁 씨이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인격이 부여되었고, 우리 주변에서 누구든 겪을 수 있는 상황으로 설정되어 있어서 사람들 속에 섞여 있는 이들의 모습과 고민이 전혀 이질적이지 않다.
이들은 뜻하지 않은 현실의 차가운 바람을 피하기 위해 브레멘에 가려고 했다. 브레멘은 꿈의 공간이기도 하지만 다르게 생각해 보면, 현실을 도피할 수 있는 변명의 공간이 되기도 한다. 물론 열심히 살지 않아서 브레멘을 찾는 것이 아니다. 열심히 살았기 때문에 현실에 미련 없이 브레멘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열심히 산 것이 소용이 없는 것이 아니라, 열심히 살아낸 힘이 있어야 밀려난 현실 속에서 또다시 희망을 꿈꿔볼 수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브레멘에 가는 그 새로운 길에 서면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삶을 만날 수도 있다. 그 여정 중에 만난 사람들과 함께 뜻하지 않은 희망의 끈을 보기도 한다. 그 새로운 희망은 지친 마음을 기댈 수 있는 곳에서 시작되는 것 같다. 그 희망이 반드시 성공하고 만족하는 삶을 이끌어 내는 것을 장담할 수는 없지만, 희망이 주는 삶의 에너지는 분명히 있다.
이 그림책의 표지에 당나귀 씨, 바둑이 씨, 야옹이 씨, 꼬꼬댁 씨가 각자 자기 일터의 프리즘으로 같은 마을을 바라보고 있다. 그 마을의 모습은 각자의 눈높이에 맞춰져 보인다. 현실의 짐이 무거울 때, 각자의 짐을 짊어지고 함께 갈 수 있는 친구가 있다면, 서로 의지가 되어 희망을 갖고 앞으로 나가게 되어 굳이 브레멘을 찾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나만 힘든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잊지 말고, 오늘 하루도 브레멘으로 가려고 하기보다 자신이 있는 곳에서 내일 하루를 동료들과 함께 꿈꿔보는 것에 주저하지 않기를 바란다.
‘열심히 살았는데도 할 일이 없어졌다는 거예요?’라는 문구가 마음에 남아 따라갔던 이야기가 열심히 살아도 소용없어서 브레멘을 가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고민을 함께 하니 새로운 꿈도 꿀 수 있어서 브레멘에 오늘 가는 것을 미뤄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그래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열심히 하는 것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없는 세상은 절망적이기 때문이다. 단지, 지금 내가 밀려난 현실이 내 인생의 모든 것이 아니라, 내 이상을 쫓아가는 그 과정의 하나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열심히 해도 안 된다면, 과감하게 새로운 꿈을 꾸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코로나’라는 변수가 더해져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 어떤 때보다도 더 힘들지만, 전 세계가 함께 겪고 있는 만큼 가까운 미래에 희망의 뉴스로 각자가 또 다른 새로운 미래를 설계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우리 아이의 한 줄 평>
‘이들에게 브레멘이란 무엇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들에게 브레멘은 꿈일 것 같다. 이들은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다시 새로운 꿈을 이룰 준비를 하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