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 좋게 비가 내린다. 퇴근길 내리는 이 비를 예상했던 사람은 우산을 준비했고, 예상하지 못한 사람은 머리에 가방을 이고 달린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그 발걸음을 보슬비가 재촉한다. 물웅덩이에 비치는 남자의 얼굴에 피곤함이 배어있다.
빗소리를 따라가다 만난 마을 속에는 하루의 끝자락에 완전히 지친 사람들, 비로소 여유를 찾은 사람들, 여전히 하루를 마감하지 못한 사람들이 평화롭게 그려져 있다.
어느새 비가 그쳤다. 노란색 보름달 모양의 빵을 먹으며 비가 개인 하늘에 뜬 푸른 달을 바라보고 있는 아이가 있다. 노란색 보름달 모양의 빵과 푸른색 달은 어딘가 닮아있다. 노란색이 전해주는 따뜻함 못지않게 푸른색 달 역시 푸근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은은하게 비추어 주는 그 푸른색 달빛이 편안하게 느껴진다. 우리가 해를 눈으로 보는 것은 쉽지 않지만, 저녁 어둠 속에 우리를 비추는 달을 바라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우리가 마주할 수 있는 달은 해에 비해 우리를 내려다 봐준다는 느낌이 더 크다. 어둠 속에서 마치 우리를 따뜻하게 감싸주고 있는 것 같다.
보름달 빵을 먹으면서 달을 보던 아이는 마을 사람들이 광장으로 모이는 것을 우연히 보았다. 광장에 모인 사람들은 달을 보면서 크게 웃고 있었다.
아이는 그 사람들이 웃는 이유가 궁금해서 광장으로 나갔다. 사람들은 매일 밤 달이 해주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으려고 모였던 것이다. 하지만 아이에게 달의 이야기는 들리지 않는다.
아이는 어떻게 하면 달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지 사람들에게 물었다. 사람들은 달의 이야기를 들으려면 눈을 두 번 깜빡이고, 만세를 부르고 나서 앞구르기를 두 번 하고, 빙글빙글 한번 돈 후에 늑대 울음소리를 세 번 내야 한다고 했다. 아이는 사람들이 가르쳐 준 것을 그대로 따라 했다. 신기하게도 달의 재미있는 수다가 들렸다.
달의 이야기를 들으려면 수고로움이 따른다. 이 수고로움은 그림책에서 보여주는 여러 단계의 행동들일 수도 있지만, 자신의 시간을 따로 내고, 이야기에 집중하려는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시간을 내서 책을 읽으려면 글자를 읽을 줄 알아야 하고, 영화를 보려면 감독의 해석을 이해하고 자신만의 감상도 있어야 한다. 이러한 수고로움이 있어야 이야기가 온전히 내 안으로 들어올 수 있다.
사람들은 이러한 번거로운 수고로움을 감당하고서라도 달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했다. 그것은 이러한 번거로운 수고로움보다 사람들과 함께 광장에 모여 듣는 달의 이야기가 전해주는 즐거움이 더 컸기 때문일 것이다.
이 그림책을 보는 내내 ‘왜 사람들은 달이 해 주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할까?’가 궁금했다. 달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는 저녁 시간을 내야 하고, 여러 단계의 몸짓을 해야 한다. 게다가 달이 전해주는 이야기는 해가 방귀를 뀌자 천둥이 쳤다는 것이나, 비가 눈물을 흘리다가 그만 콧물이 줄줄 나와 버린 이야기, 숨바꼭질하다 잃어버린 별 이야기, 비밀로 가득한 해 이야기, 수줍게 웃던 은하수 이야기 등 생활 속에서 현실적으로 도움이 될만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런데 오히려 달의 이야기가 현실에서 벌어지는 이야기가 아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더 듣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 이야기를 듣는 동안은 힘든 현실을 잠시나마 잊고 꿈을 꿀 수도 있었을 것 같다. 내가 있는 지금 이곳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라 새로운 세상이 있다는 설렘과 즐거움이 전해주는 위안 같은 것이 있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그 위안으로 일상의 피곤함이 씻겨 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드라마, 영화, 연극, 뮤지컬 같은 공연이나 다양한 이야기의 책을 찾는 것은 이런 맥락일 것이다. 내가 살아보지 못한 세상에 대한 궁금증과 설렘을 내가 사는 현실 속에서 풀어내면서 잠시나마 꿈을 꿀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저녁 시간에 빵을 먹으면서 하늘을 바라보는 아이에게 ‘이야기’는 무슨 의미일까?’라는 생각을 했다. 아마도 이 아이는 외로운 아이가 아니었을까 싶다.
관심이 없던 드라마나 영화, 책이 사람들 속에서 회자되면 그것을 꼭 찾아서 보는 사람들이 있다. 그 이야기 자체에 관심이 있기보다는 그 이야기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궁금해서 찾아보는 경우가 많다. 자신도 그 사람들의 무리에 끼어 함께 그것을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 크기 때문이다. 관계로 이어지는 소통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아이도 혼자 있던 공간보다는 함께 있는 공간이 더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비가 그치고 사람들이 쏟아져 나온 곳은 광장이었다. 광장은 개방된 장소로, 사람들이 서로 소통하며,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장소다. 그 광장에 사람들이 모여 달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은 달의 이야기가 일방적인 것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달의 이야기가 사람들과의 소통으로 더 풍성해지는 것이다. 우리가 영화나 드라마를 혼자서 보거나 책을 읽고 난 그 느낌을 그대로 간직하는 것도 좋지만 같은 것을 본 사람들끼리 서로 이야기를 나누면 자신이 느끼고 생각했던 것들이 더 풍성해지고 또렷해지는 경험들을 할 수 있다. 그래서 자신이 느낀 것들을 공유하고 나눌 때 그 이야기에 대한 즐거움이 더 커지고 생각이 깊어진다.
또, 광장은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내기도 하는 물리적인 공간이다. 2002년 월드컵 당시 세상이 떠내려갈 정도로 함께 외치던 ‘대한민국!’과 부정한 정치에 대해 함께 저항했던 촛불시위와 같은 민중들의 시위 등과 같은 새로운 이야기를 써 내려갔던 곳이 광장이다. 혼자가 아니라 함께 역사를 만들었다는 것에 부여되는 의미가 큰 곳이다.
그래서 아이는 달이 전해주는 이야기보다는 그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 자체가 즐거웠을 것 같다.
이국적인 집과 광장의 모습 속에 우리의 따뜻한 정서가 녹아져 있는 그림을 아이처럼 따라가다 보면, 자신의 머리 위 달을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눈을 두 번 깜빡이고, 만세를 부르고 나서 앞구르기를 두 번 하고, 빙글빙글 한번 돈 후에 늑대 울음소리를 세 번 내면, 마치 달의 음성이 들릴 것 같다. 동시에 어느새 많은 사람들과 광장에 함께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지금 자신이 있는 곳이 힘들고 외롭더라도 재미있는 이야기가 현실을 잠시라도 잊게 해 주기도 하고, 때로는 그 현실을 바라보게 만들면서 위로를 건네기도 할 것이다. 마치 지금 코로나라는 긴 터널을 모두 지나고 있는 이 불편한 현실에서 마주하는 이야기가 광장에 대한 그리움을 더 하게 하고, 마스크 없는 광장을 꿈꾸게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 아이의 한 줄 평>
지치고 피곤해 보였던 사람들이 달의 이야기를 듣고 웃는 것을 보니까, 이야기는 사람들에게 힘을 준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