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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미 Sep 03. 2021

왕권의 정당성

: ‘주위에 아무도 없는데 왕 같은 거 되면 뭐 하니.’

『왕이 되고 싶었던 호랑이』(2021)

제임스 서버 지음, 윤주희 그림, 김서정 옮김(봄볕)     




2021년 8월 15일, 우리는 광복을 기념했다. 이날은 중일 전쟁과 태평양 전쟁에서 패배한 일본이 연합국에게 항복한 지 76년 된 날이기도 하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떠날 대외적인 명분은 전쟁의 패배였다. 그런데, 일본은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의 승리, 즉 전쟁에 승리하면서 우리나라를 지배하게 되었다.


2021년 8월 15일,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을 점령하고 8월 31일까지 미군이 모두 철수할 것을 명령했다. 탈레반은 1994년 조직되었고, 1996년부터 2001년까지 아프가니스탄을 지배했던 이슬람 수니파 무장 정치조직이다. 이들은 극단적인 이슬람주의자들로 무력적으로 나라를 통치했던 세력이다. 특히, 이들이 행한 여성에 대한 상상도 할 수 없는 인권탄압은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여성으로서 분개할 일이다.


2021년 8월 15일, 그 하루 동안 우리나라에서는 제국주의로부터 벗어난 것을 기념했고, 아프가니스탄에서는 무장세력들로 인해 민주주의가 사라질 위험에 처해 있게 되었다. 인간의 권력에 대한 욕망이 사람을 살게도 하고 죽게도 한다.


우리나라 헌법에 있는 ‘제1조 1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2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이 조항이 든든하게 피부에 와닿기는 처음이다.




어느 날 아침, 잠이 깬 호랑이가 ‘나는 동물의 왕이야’라고 자기 짝에게 이야기했다. 그 짝은 호랑이에게 ‘동물의 왕은 사자 레온이야’라고 답을 해주었다. 그 대답에 오히려 호랑이는 변화가 필요하다고 외쳤다.


그것은 모든 동물이 변화가 필요하다고 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 같다. 나의 욕심 때문에 앞장서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이들이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내가 사명감을 가지고 희생한다 듯한 이 말을 대선이 멀지 않은 요즘 텔레비전 뉴스에서 하루에 몇 번씩 들어온 거 같다. ‘모든’이라는 단어는 위험성과 정당성을 함께 내포하고 있는 말인 것 같다. 우리는 이미 역사 속에서 그 단어가 만들어낸 폭력을 보았으며, 그 단어에 책임을 다하기 위한 희생도 보았다.


호랑이는 달이 뜰 때쯤에 자신이 동물의 왕이 될 것이며, 자신을 축하하는 검은 줄무늬의 노란 달이 뜰 것이라고 했다. 검은 줄무늬는 호랑이의 줄무늬를 상징하는 것 같다. 달도 호랑이와 동화되면서 호랑이가 왕이 된 것을 축하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하지만 모든 동물들이 원하는 변화를 위해 왕이 되고자 한다는 호랑이의 외침에는 메아리가 없었다. 호랑이의 짝에게는 정글의 왕이 되어야 하는 호랑이의 대의명분보다는 지금 바로 옆에서 아기 호랑이들의 낑낑거리는 소리가 더 마음에 와닿았다.


왕이 되겠다던 호랑이는 사자 굴에 찾아가서 사자 레오와 해가 질 때까지 싸웠다. 호랑이는 왕이 되기 위해서 싸웠고, 사자 레오는 왕권을 지키기 위해서 싸웠다. 그 모습을 멀뚱멀뚱 바라보던 다른 동물 중 몇몇은 호랑이 편을 들었고, 나머지는 사자 편을 들었다.


그림을 살펴보면, 호랑이 편을 든 동물들은 악어, 멧돼지 같은 사나운 동물들이고, 사자 편을 든 동물들은 코끼리나 말 같은 동물들이다. 호랑이와 사자 편을 든 동물들도 자신들의 이해관계로 이 싸움에 뛰어든 것 같다.


사나운 동물은 정글의 왕이 굳이 사자일 필요가 없을 수도 있다. 사자 못지않은 자신들의 힘을 과시하고 싶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자만 레오라는 이름이 있고 왕이 되고자 하는 호랑이도 자신의 이름이 없는 것을 보면, 호랑이는 누구든 왕이 되고자 하는 동물을 뜻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반면, 힘없는 동물들은 사자의 힘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그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 와중에 몇몇은 양쪽 편을 다 들었고, 몇몇은 옆에 누군가 있기만 하면 그저 싸우기에 바빴다.


이들이 싸우는 장면은 매우 역동적이다. 일단, 격투기 경기장의 문을 열 듯이 열린 책장을 활짝 열면, 4개의 지면에서 정글의 동물들이 뒤엉켜져 싸우고 있다.


주황색과 초록색으로 겹겹이 찍은 투박한 실크스크린의 그림은 이들이 얽히고설켜 엉망진창으로 싸우고 있는 모습을 입체감 있게 느끼게 해 준다. 정글 속에서 피가 터지게 싸우는 모습이 초록색과 주황색 단 두 가지 색깔만으로도 표현했는데도 불구하고, 다른 많은 색깔의 이미지와 함께 그 전쟁의 분위기가 충분히 전달된다.


누군가가 물었다.


“우리가 뭘 위해서 싸우는 거지?”


개미핥기는 옛 질서를 위해서 싸운다고 했고, 얼룩말은 새 질서를 위해서 싸운다고 했다. 하지만 이들이 싸우는 모습은 정신없고 복잡해 보여서 아군과 적군을 구분하는 것조차도 어려워 보인다. 이들의 싸움의 목적은 단지 싸움을 위한 싸움인 것 같다. 누구를 위한 것인지도 왜 싸우는지도 전혀 알 수가 없다. 누가 되었건 이 전쟁에서 살아남는 동물이 왕이 될 수밖에 없는 분위기다.


그 사이 달이 떠올랐다. 호랑이가 예견했던 줄무늬 달이 아니라 벌겋고 볼록한(fevered and gibbous) 달이었다. 호랑이가 왕이 된 것을 축하하기 위해 뜬 달이 아니라, 호랑이의 욕심으로 시작된 명분 없는 싸움에 화가 나서 폭발하기 일보 직전에 동물들에게 경고를 하기 위해 뜬 달인 것 같다. 정글에 있던 모든 것들이 멈췄다.


결국 이 싸움으로 모든 동물이 죽고 호랑이 혼자 살아남았다. 옛 질서를 위해서 싸운다던 무리도 새 질서를 위해서 싸운다는 무리도 정글에서 함께 사라졌다. 그렇게 호랑이 왕조가 시작되었다.


초록색과 주황색으로 표현된 정글의 모습은 처음에는 힘이 있고 강렬해 보였는데, 호랑이만 남아 있는 정글의 모습은 이제 고요하고 음산해 보인다. 모든 나무와 풀들이 마치 호랑이를 원망스럽게 내려다보고 있는 느낌이다.


권력은 힘이 있는 자가 잡는 것이 아니라, 주변으로부터 부여받는 것이다. 아마도 사자 역시 왕의 칭호를 동물들로부터 부여받지는 않았을 것 같다. 사자 레오가 왕이 된 것이 정당했다면, 호랑이가 감히 어느 날 갑자기 자고 일어나서 내가 왕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또, 아무리 동물이라고 할지라도 호랑이가 왕이 되는 방법으로 사자 레오를 찾아가서 다짜고짜 싸우는 것을 선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혼자 남은 호랑이는 더 이상 용맹스럽지도 않았고 용맹스러울 필요도 없었다. 스스로가 자신의 자리를 지켜야 할 이유도 없어졌을 뿐 아니라, 지켜줄 대상도 없어졌기 때문이다. 호랑이는 모두를 제압하고 살아남았지만 결국은 혼자가 되었다. 왕은 왕인데 왕이라 할 수 없게 되었다.



무력을 앞세워 인권탄압을 하면서 왕이 되고 싶어 하는 호랑이가 2021년에 아프가니스탄에 나타났다. 국민에게 고통을 주는 통치자는 의미가 없다. 모두가 떠나고 싶어 하는 나라의 통치자도 의미가 없다.


자신만 남아서 어쩔 수 없이 왕이 된 호랑이가 지배하는 정글이 아니라, 모든 동물의 존경과 박수로 왕이 된 호랑이가 지배하는 정글이 의미가 있다는 메시지가 지금의 아프가니스탄에도 전해지길 바란다. 권력의 정당성, 그것이 ‘정상국가’의 시작이 될 것이다.      




<우리 아이의 한 줄 평>

권력이 있어도 친구가 없다면, 권력이 없어도 친구가 있는 것보다 못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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