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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미 Sep 01. 2021

토끼의 간 보다 쓰레기 수거

: 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는 우리의 바다


 『할머니의 용궁 여행』(2020)

글/그림: 권민조(천개의바람)     




일주일에 한 번 재활용 쓰레기 버리는 날이면, 경비실 앞에 종이상자, 플라스틱, 캔, 병, 스티로폼이 각자의 산을 이루고 있다. 몇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그 산이 새로운 산으로 금세 바뀐다. 코로나로 인해 배달 음식이 많아지면 재활용 쓰레기의 양도 상당히 늘어났다. 저 많은 재활용 쓰레기들 중 재활용품으로 다시 사용되는 것은 얼마나 될까. 순식간에 ‘괜찮겠지’라는 생각보다 ‘어쩌지’라는 걱정이 앞섰다.




아윤이 할머니는 해녀다. 할머니가 미역 밭을 가꾸고 전복을 주우려고 바다에 들어갔는데 살려달라는 광어를 만났다. 할머니가 광어를 살리려고 따라갔다가 용궁까지 가게 되었다. 할머니의 등에 아가미가 생기고 배가 납작해졌다. 물이 뜨거워졌다가 차가워졌다가 몸이 늘어났다 줄어들었다 하기를 108번쯤 하니 용궁에 도착했다. 마법 같은 일이다. 용궁에 도착하자마자, 할머니에게 용왕이 아프니 간을 내놓으라고 했다.



‘별주부전’ 이야기가 겹쳐진다. 용왕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 자라가 육지로 올라와 토끼를 꾀어 용궁으로 데리고 갔다. 용궁에서 토끼에게 간을 내놓으라고 하자, 토끼가 자신의 간을 육지에 놓고 왔다고 하여 다시 육지로 돌아와 위기를 모면했다는 이야기다.



토끼는 기지를 발휘하여 자신의 간을 지켰지만, 할머니는 경상도 사투리로 쏟아낸 분노와 갈고리로 자신의 간을 지켜냈다. 할머니가 만난 용왕은 코에 낀 플라스틱 빨대 때문에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할머니는 해산물을 채취할 때 사용하는 갈고리로 그 플라스틱 빨대를 빼주었다.



용왕의 병이 이렇게 낫자 다른 바다 동물들도 앞다투어 자신을 치료해 달라며 할머니 앞에 줄을 섰다. 그들은 사람들이 버린 쓰레기들 때문에 아파하고 있었다. 그것들이 무엇인지도 모를 뿐 아니라, 직접 바다 동물들이 써 본 적도 없는 것들로 고통당하는 것을 보자 할머니는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할머니는 차례대로 치료해 주었다. 일회용 비닐장갑에 들어간 물고기를 빼주고, 플라스틱 통 안에 몸이 낀 가재를 빼주고, 비닐봉지에 걸려 있는 쏠배감팽을 빼주고, 게의 집게발 두 개를 묶어 놓은 고무줄을 잘라주고, 고래 입을 벌려 놓은 플라스틱 막대기를 빼주었다.



바닷속 동물들뿐만 아니라 물 밖에 있는 바다 동물들도 치료를 받았다. 할머니는 물개 몸에 씌워진 그물을 빼주고, 바다표범 몸에 있는 기름때는 벗겨 주고, 새의 부리에 낀 면도기도 빼주고, 바다사자를 돌돌 말고 있는 비닐봉지와 펭귄이 먹은 비닐봉지도 다 빼주었다. 이들은 비닐봉지 안에서 나는 음식 냄새로 해초나 해파리 같은 먹이인 줄 알고 비닐봉지를 먹었던 것이다.



할머니에게 치료를 받은 바다 동물들은 해양 오염의 피해를 입었다. 사람들이 버린 쓰레기가 바다로 흘러 들어가서 그들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위협이 인간에게까지 미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그림이 만화처럼 유머스럽게 그려진 면이 있지만, 결코 웃어넘길 수 없는 그림이다. 이것은 다큐멘터리다.



할머니는 자신이 돌아가는 것을 말리는 바다 동물들에게 사람들에게 이렇게 당하고만 살 것인지 아니면 자신을 육지로 보내서 사람들에게 이렇게 고통받고 있는 사실을 알리고 앞으로 개선된 환경에서 살 것인지를 선택하라고 한다. 마치 토끼가 간을 육지에 두고 왔다고 기지를 발휘한 것처럼 말이다. 바다 동물들은 후자를 선택했다.



할머니는 용궁 동물들의 호위를 받으면서 용궁에서 나왔다. 집에 돌아와서 완전히 뻗어 버린 할머니 옆으로 바닷속에 건져온 쓰레기가 가득 담긴 망사리가 놓여 있다. 용궁을 다녀온 할머니는 자신의 10가지 해녀 수칙에 ‘무조건 바다부터 살린다!’라는 0번째 수칙을 추가하였다.  



용궁에 다녀오기 전에 할머니가 숨을 한 번 참고 물속에 들어가면 그 인고의 시간은 할머니에게 16,870원을 벌 수 있게 해 주었다. 용궁을 다녀온 이후 할머니는 그 인고의 시간을 지구의 수명을 늘리는 것에 쓰기 시작했다. 버려진 생활 쓰레기는 상상을 초월할만한 분해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알루미늄 캔은 500년 이상, 나무젓가락은 20년, 종이 우유갑은 5년, 폐건전지는 200만 년 이상, 유리병은 100만-200만 년, 폐타이어는 50년, 스티로폼 그릇과 비닐봉지는 500년 이상이 걸려야 썩는다고 한다. 그 시간을 지구가 버텨 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우리는 이미 용궁 속에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할머니의 용궁 이야기는 먼 나라 이야기도 특별한 이야기도 아니다. 우리나라도 여름 장마에 호수나 강에 쓰레기 섬이 만들어지면서 식수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고, 그 쓰레기를 치우는 데만 한 달가량이 걸렸다고 한다. 이제 여름 장마를 쓰레기와의 전쟁이라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쓰레기는 바이러스처럼 우리를 당장 위협하지 않지만 점차적으로 우리의 생존을 위협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쓰레기를 걷어낸 자연을 다시 마주하려면 생각보다 더 긴 시간이 걸릴 것이다.



지구는 오늘을 살고 있는 지금의 세대의 것이 아니고, 후대의 것을 잠깐 빌려서 사용하고 있는 것이라고들 말한다. 이 말을 잊고 살았던 우리에게 이 그림책은 그 말의 무게를 새삼 느끼게 했다. 이제 쓰레기를 쓰레기통만 버리면 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버려야 하는지도 중요하다.

     




<우리 아이의 한 줄 평>

‘나는 바다에 쓰레기를 버린 적이 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내 쓰레기가 바다로 가서 동물들이 고통을 받을까 봐 걱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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