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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미 Feb 06. 2022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설빔 바르고 예쁘게 입고서

『설빔, 여자아이 고운 옷』(2006), 『설빔, 남자아이 멋진 옷』(2007)

: 글/그림 배현주(사계절)


방앗간에 다녀온 엄마를 따라 부엌에 들어갔다. 연기가 모락모락 나는 가래떡을 뜨거운 줄도 모르고 손으로 집어 들고서는 한입 크게 베어 물었다. 부엌에는 가래떡을 말릴 큰 소쿠리도 나와 있고, 시장에서 사 온 명절 음식 재료들도 한편에 놓여 있다. 며칠 자고 나면, 저 재료들은 떡국, 전, 잡채, 갈비 같은 맛있는 명절 음식이 되어 상에 올라왔다.



부엌에서 왔다 갔다 거리면, 엄마는 내가 걸리적거려 신경이 쓰이는 듯이 나에게 방에 들어가 보라고 하셨다. 옷장 손잡이에 옷걸이에 걸린 옷 한 벌이 있다. 설빔이다. 엄마가 사다 놓은 설빔은 항상 나보다 한 뼘은 더 미리 커 있었다. 나보다 큰 옷이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새 옷은 나에게 설렘을 주었다. 명절날 아침이 되어야만 입을 수 있다는 기다림이 나를 설레게 만들었다.



명절날 아침이면, 새 옷을 입을 생각에 들떠 일어났다. 설빔을 입으면, 나는 새로운 내가 되는 것 같았다. 새해의 시작점에서 새로운 옷을 입고 어른들께 세배를 드리고 나면, 나무의 나이테가 하나 새겨지는 것처럼, 내가 좀 큰 것 같은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떡국을 먹으면 나이를 먹는 것이라는 이야기에 나는 몇 그릇을 먹고 나이를 몇 살 더 먹어서 빨리  크고 싶었던 적도 있었다. 세뱃돈을 동생보다 더 받고 싶어서 부모님께 절을 몇 번이나 더 하려고 했던 적도 있었고, 친척들이 오시면 세뱃돈이 받고 싶어 다짜고짜 세배부터 한 적도 있었다. 쌓여가는 세뱃돈을 세고 또 세던 그런 때가 나에게도 있었다.




『설빔』이라는 그림책을 만났을 때, 잊고 지낸 나의 설날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한복을 입었던 기억은 별로 없지만, 누구보다도 설날 아침을 기다렸고, 눈이라도 오는 날이면 더 들떠 있던 내가 떠올랐다. 새 옷을 입고, 세배를 하고, 세뱃돈도 받고, 떡국도 먹고,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척들과 함께 밖에서 뛰어놀던 설날은 겨울방학 속의 특별한 날이었다.



『설빔』은 그림책 표지에서부터 설날 입는 고운 한복이 시선을 끈다. 이 그림책은 여자아이 옷을 먼저 출간되었고, 다음 해에 남자아이 옷이 출간되었다. 재미있는 것은 남자아이 옷 마지막 장면에 가족 모두가 함께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모습이 그려져 있어서 이 여자아이와 남자아이가 남매 사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누나와 동생이 설날 아침에 엄마가 미리 지어 놓은 설빔을 들뜬 기분으로 차려입는다. 혼자 허둥지둥 입는 모습을 보면, 앙증맞은 아이들의 모습에 웃음이 나기도 하고, 하나도 빠짐없이 제대로 차려입은 모습이 대견스러워 보이기도 한다.



또, 엄마가 그 설빔을 직접 만들어서 아이가 혼자 입을 수 있게 아이 방에 갖다 놓은 것으로 아이를 생각하는 엄마의 마음이 느껴지기도 한다. 엄마는 설날에 자신이 만든 새 옷을 기쁘게 입을 아이들의 모습을 상상하며 힘든 줄도 모르고 옷을 지었을 것이다. 그리고 엄마는 그 옷을 아이가 입는 것을 도와줄 새 없는 바쁜 설날을 맞이했을 것이다.



하얀 눈이 내리는 평화로운 설날 아침 잔뜩 들뜬 누나는 치마, 솜버선, 저고리, 댕기, 꽃신, 털배자, 노리개, 조바위 순으로 한복을 곱게 차려입었다. 떡국 한 그릇에 나이도 한 살이니, 세 그릇 먹고 누나보다 더 컸으면 하는 장난꾸러기 남동생도 누나처럼 엄마가 지어주신 설빔을 혼자서 꺼내 입는다. 남동생은 버선, 바지, 저고리, 배자, 까치두루마기, 전복, 태사혜, 호건 순서대로 한복을 입었다.



아이들은 한복을 차려입는 것을 허투루 하지 않았다. 아이들은 전해져 내려오는 전통 안에서 정확한 방법으로 의젓하게 한복을 차려입었다. 누나는 치마를 입을 때는 겉자락은 오른손, 안자락은 왼손에 두고 다홍치마 펼쳐 들어 몸에 두르고 치마끈을 앞으로 내어 매듭을 지었고, 수눅을 맞추어 솜버선을 신었다. 색동저고리를 입을 때도 오른 섶을 안으로 왼섶을 밖으로 하여 고름을 단단하게 매듭지었다. 동생도 바지를 입을 때 허리 폭을 잡아서 왼쪽으로 접은 다음 흘러내리지 않게 허리띠를 매고 바짓부리는 접어서 바깥으로 돌려서 안쪽 복사뼈에 끝을 대놓고 대님을 두 번 감아 매듭지었다. 그리고 저고리는 왼섶이 바깥으로 보이게 입고 긴 고름으로 고를 내어 매듭을 지었다.  



입는 모습을 한 단계 한 단계 그림과 글로 보여주면서 한복을 입는 방법과 순서를 소개해 주고 있다. 한편으로는 한쪽 지면 전체에 아이의 설레는 기분을 느낄 수 있는 색깔과 다양한 꽃과 문양 위에 아이가 한복을 입고 뿌듯해하는 그림을 그려 놓았다.



그 안에는 한복에 대한 정확한 명칭과 바르게 입는 방법이 명시되어 있어 설빔의 전통문화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또, 액자처럼 보여주는 한옥의 모습과 고풍스러운 다양한 소품들을 통해 우리의 전통 생활문화도 함께 보여주고 있다.



아이들은 한복을 혼자서 잘 차려입고, 어른들께 새해 아침 세배를 하러 나섰다. 아이들은 새해를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세배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아침 식사를 하기도 전에 세배를 하러 가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신이 나게 외치듯이 인사를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그 소리 너머로 보이는 한옥의 풍경이 눈이 내리는 것마저 따뜻하게 느껴지게 한다.



2022년 임인년 새해 아침에 하얀 눈이 쌓여 있었다. 올해의 모든 걱정이 하얀 눈에 덮이고 녹아 사라지기를 바란다. 아이들의 새해 인사에 올 한 해도 잘 살아낼 힘이 났기를 바란다.  






<우리 아이의 한 줄 평>

나는 한복을 입는 것을 싫어한다. 너무 불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기 나온 아이들이 즐겁게 한복 입는 것을 보니 신기했다. 그리고 내 한복은 입는 방법이 간단한데, 여기 나온 아이들이 입는 한복은 복잡한 것도 신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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