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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미 Apr 09. 2022

일단 나가보자!

: 지금의 새로운 에너지 충전과 미래의 나를 위로할 기억

『나오니까 좋다』(2018)

글/그림 김중석(사계절)     




할 일이 태산인데도 불구하고, 그 모든 일들을 외면하고 무작정 짐을 싸서 떠나 본 일이 있는가? 짐을 싸면서도 여행에 대한 설렘보다는 남겨둔 일에 대한 걱정이 앞서서 짜증이 날 수도 있고, 이 여행을 꼭 가야만 하는지에 대한 백만 가지 이유를 찾아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여행을 가지 않을 만한 별다른 이유도 찾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떠난 여행에서 실망한 적은 아마도 거의 없었을 것이다. 여행은 언제나 옳다. 기대하지 못했던 위안, 평화, 만족이라는 감정을 만나고 나면, 여행을 준비할 때 즐겁게 하지 못한 것이 민망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문밖에 나오기 전에 준비하는 번거로움과 돌아왔을 때 여전히 쌓여있는 해야 할 것들에 대한 두려움이 여행으로 떠나 있는 그 순간에 거짓말처럼 사라진다.  




짐을 한가득 실은 작은 자동차 한 대가 푸른 숲 속 길을 뒤뚱거리며 지나가고 있다. 차창 밖으로 고릴라는 손을 내밀며 숲의 공기를 느끼고, 그 뒷자리에는 이 세상의 불만을 모두 품은 듯한 고슴도치가 앉아 있다. 그 투덜거리는 고슴도치의 음성이 고릴라의 귀에는 닿지 않아 보인다. 이 여행은 이들 모두 설레는 여행이 아니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다.



고릴라는 날씨는 좋은데, 심심해서 고슴도치를 데리고 캠핑을 떠났다. 고슴도치는 내일까지 끝내야 하는 일이 있어서 오늘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바람을 쐬고 와서 일하면 일이 더 잘 될 거라는 고릴라의 말이 고슴도치의 뾰족한 생각 사이에 마음의 여유라는 틈을 만들었다. 고슴도치는 여행을 통해 자신에게 새로운 에너지가 생겨서 남은 일을 좀 더 수월하게 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기대로 고릴라와 함께 캠핑을 떠났다. 하지만 고릴라가 답답하게 운전하는 차를 탄 순간부터 고슴도치의 그 기대는 사라져서 다시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졌다. 고릴라와 고슴도치가 생각하는 여행은 서로 달라고 그 여행을 대하는 서로의 태도도 달랐다.



고릴라는 준비성이 철저하지는 못했다. 날씨가 좋다는 이유만으로도 캠핑을 갈 이유는 충분했던 고릴라에게는 짐을 싸서 떠나는 그 여정 자체로도 이미 여행이 시작되었다. 고릴라는 캠핑장을 간다는 사실 자체가 주는 여행의 설렘과 즐거움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반면, 고슴도치는 자신의 지친 일상의 에너지를 새로운 환경 속에서 환기를 시키고, 다시 충전해 오려는 목적이 있었기 때문에 캠핑장에 도착해서부터가 여행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캠핑장에 가는 그 길에서 만나는 자신을 지치게 만드는 것들을 자신의 희생으로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캠핑장에 도착해서도 고릴라와 고슴도치를 위한 파티는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새와 뱀이 있는 푸른 숲만이 이들을 반기고 있을 뿐이었다. 고릴라와 고슴도치가 잘 곳도 먹을 것도 이들이 모두 만들어 내야 했다. 고릴라와 고슴도치는 함께 텐트를 치고, 카레를 만들었다. 숲에 어둠이 내려앉았을 때가 되어서야 이들은 비로소 숲 속에 앉아 마시는 차 한 잔의 여유를 느낄 수 있었다.



자연의 공기가 비집고 들어와 잠깐의 여유를 선물했다. ‘나오니까 좋다’라는 말이 고슴도치의 음성을 타고 숲에 흘러 들어갔다. 모든 것이 멈춰버린 듯한 시간과 낯선 공간에서 자신에게 집중하면서 자신의 머릿속에 숨 쉴 공간 하나가 생겼다. 자신의 머릿속에 빽빽하게 들어차 있던 일에 대한 버거운 생각들이 자신을 짓누르는 것이 자연 속에서는 비현실적으로 다가왔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그 여유는 주변을 돌아볼 수 있게 만들어 놓았다. 자신에게만 꽂혀 있던 그 시선이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주변으로 옮겨졌다. 다음 날 아침, 고슴도치는 고릴라뿐 아니라 그 주변에 있던 뱀, 꽃에게도 인사를 했다. 뱀은 깊은 숲 속이라는 것을 보여주기도 하고, 고릴라와 고슴도치가 자연 속에 동화되어 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장치 같기도 하다. 뱀들은 고릴라와 고슴도치에게 다시 오라고 마치 이야기하면서 배웅하고 있는 것 같다. 고릴라와 고슴도치는 다시 오겠다는 약속을 하면서 다시 일상으로 떠났다.   



집 밖을 나서는 것이 일상이 아닌 코로나 시대 속에서 푸른 숲으로 덮여 있는 캠핑장에 좋은 날씨를 만끽하고자 친구와 함께 가는 여행에 독자는 많은 이야기가 없어도 설레기에는 충분하다. 물론, 독자가 고릴라인지 고슴도치인지에 따라 이 여행의 즐거운 시작이 어디서부터 인지는 서로 다를 수는 있다.



이러한 고릴라와 고슴도치의 모습은 낯설지가 않다. 자신이 하고 싶으면 하면 된다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지만, 실제로 제대로 하는 일은 없는 것 같은 고릴라와 해야 하는 일만을 고집하며 온갖 투덜거리면서 단념하고 돌아서지도 못하고 결국은 허술한 친구의 일을 함께 하는 고슴도치의 모습은 우리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자신이 고릴라라면, 하고 싶은 마음이 없으면 시도조차 하지 않으려는 고슴도치가 답답하면서도 자신의 부족한 면을 도와주는 고슴도치가 고마울 것이고, 자신이 고슴도치라면, 제대로 하지도 못하면서 많은 일을 만드는 고릴라가 짜증이 나면서도 자신에게 새로운 경험을 선사하는 고릴라가 고마울 것이다. 결국 이들은 서로에게 고마움을 느낄 것이다. 그래서 자연이 주는 여유를 느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오니까 좋았겠지만, 이것을 함께 할 수 있는 친구가 있었기 때문에 좋은 것에만 그친 것이 아니라, 다시 일상을 살아낼 힘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 그림책의 푸른 숲은 물리적인 장소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지친 자신의 일상에 위안이 되어주는 공간일 것이다. 그것은 자연일 수도 있고, 새로운 일일 수도 있고, 가족이나 친구 같은 사람일 수도 있다.



자신의 일상이 벅차게 느껴질 때면, 자신의 틀에서 한 번 빠져나와 보는 용기와 결단력이 필요할 것이다. 일단, 나가보자! 그러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자신의 마음에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에너지가 싹트기 시작할 것이다. 혹시라도 여행에서 돌아와서 아무런 변화를 느끼지 못해도 괜찮다. 그 시간은 추억을 남겨주었을 것이다. 지금이 아니라 미래에 힘든 나를 위로할 수 있는 소중한 기억을 가지게 된 것이다. 지금 드러나지 않는다고 없는 것이 아니니까 말이다.       





<우리 아이의 한 마디>

‘나오니까 좋다’가 아니라 ‘친구와 함께라서 좋다’가 아니었을까. 나도 친구랑 함께 하면 무엇을 해도 좋기 때문이다. 아마 고슴도치도 고릴라가 함께 있어서 좋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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