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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미 May 08. 2022

마법 같은 말, ‘엄마’와 ‘아버지’

: 사랑합니다!

『나의 엄마』, 『나의 아버지』(2016)     

글/그림 강경수(그림책공작소)    


                



2016년 5월 8일, 어버이날 강경수 작가는 『나의 엄마』와 『나의 아버지』를 그림책으로 출간하였다. 특별한 설명이 없어도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을 세심한 마음으로 그려냈다. 그리고 감동을 남겼다. ‘엄마’와 ‘아빠’도 아니고, ‘어머니’와 ‘아버지’도 아닌 ‘엄마’와 ‘아버지’라는 마법 같은 말이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엄마와 아버지에 대한 깊고 복잡한 이야기를 책의 표지에서 한 번에 다 보여준다. 『나의 엄마』는 세로로 놓인 띠지로 이야기가 전해준다. 띠지가 있는 상태의 표지에는 할머니와 젊은 여자가 손을 잡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띠지를 떼어내면 그 젊은 여자는 어린 여자아이와 손을 잡고 있다.           

   


『나의 엄마』는 ‘맘마’로 시작되어 ‘맘마’로 끝난다. ‘맘마’를 말하는 아이는 ‘엄마’를 부르게 되고, 모든 순간에 ‘엄마’를 찾던 아이는 자신이 ‘엄마’가 되었다. 엄마의 사랑으로 자란 아이가 결국 누군가의 엄마가 되어 자신의 엄마가 비워둔 자리에 앉게 되었다. 엄마가 되는 순간부터 내 아이가 엄마가 되는 순간까지, 혹은 아이가 세상에서 엄마를 찾기 시작하는 순간에서 내 아이가 나를 찾기 시작하는 순간까지를 엄마의 일대기 혹은 딸의 일대기로 그려져 있다. 엄마의 사랑을 받고, 그 사랑을 자식에게 주는 여자의 숙명 같은 모습이 그려져 있다. 여자들만의 모습으로 비치어지는 것이 공감력을 높이면서도 삐딱한 시선으로 마음이 덜컹거리기도 한다.                     


한편, 『나의 아버지』의 표지는 빨간 바탕 위에 자전거가 그려져 있고, 아버지의 모습은 타공(打孔)이 되어 있다. 그 안으로 파란 바탕 위에 어린아이가 서 있다. 형태만 있는 아버지의 모습이지만, 아이에게 자전거를 가르쳐주려는 아버지의 마음이 느껴지고, 그 상황이 그려진다.                     




책장을 펼치면, 두 책 모두 오른쪽에는 그림이 그려져 있고, 왼쪽에는 글자가 쓰여 있다. 『나의 엄마』는 단 두 글자만이 쓰여있는데, 이 두 글자가 그림보다 더 강렬한 이미지로 마음에 남는다. 글자의 모양에 따라 아이가 엄마를 어떻게 부르는지가 느껴지고, 그 아이의 심정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것 같다. 그림은 아이가 엄마를 찾는 많은 상황이 그려져 있고, 엄마의 마음은 손으로 표현이 되어 있는 것 같다. 엄마의 손은 아이가 엄마를 찾는 것에 대한 대답이다. 아이를 향한 엄마 마음의 행동이다.           


 

‘아이가 있는 나는 지금 어디쯤 있는 엄마이고, 우리 엄마는 지금 어디쯤 있는 엄마일까?’라는 생각이 ‘우리 엄마도 나처럼 이랬겠구나’라는 생각에 미치면서 어느 순간부터 엄마를 이해하게 되었다.      



우리 엄마는 입버릇처럼, ‘너희들 다 크면, 나는 날개 달고 훨훨 날 거야’라는 말을 했었다. 그때는 그 말이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 눈에 비친 엄마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특별히 포기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굳이 우리가 다 커야 자신이 뭔가 할 수 있다는 것이 엄마의 인생에 우리가 장애물이 된 기분이 들어서 그 말을 들을 때마다 기분이 별로였다. 그래서 나는 한마디도 지지 않고 퉁명스럽게 받아쳤다.      


‘뭐 지금은 마음대로 안 하는 거 있어?’     


엄마가 된 지금에서야 그 내 말을 곱씹어 보면, ‘당신이 마음대로 다 하고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지금이 당신의 현실입니다. 당신의 꿈은 사치입니다’라는 말로 엄마에게는 들리지 않았을까 싶다. 나는 이제야 안다. 엄마라는 사람들이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것들이 모두 자신이 원하는 것들은 맞지만, 그것이 가족 안에서 자신이 원하고 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하는 것이다.       



또, 우리 엄마는 언제나 내 속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말을 할 때가 있다. 그러면서 ‘내가 너를 모르냐?’라는 말을 내 앞에 툭 던져 놓는다. 나도 나를 잘 모르겠는데, 엄마가 나를 안다는 말을 저렇게나 확신에 차서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데 내가 엄마가 되고 보니, 아이의 생각과 행동이 훤히 읽힐 때가 많다.      



엄마는 아이를 그저 모른 척하는 것뿐, 모르는 것이 아니다. 오로지 이 세상에서 나를 설명할 필요도 없고, 나의 모든 모습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엄마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누구의 엄마이든지 간에 엄마는 모두 같은 모습인 것 같다.      



사십이 넘어서도 아직 엄마가 곁에 있다는 것이 새삼 고맙다.       




반면, 『나의 아버지』를 펼치면 한 아이가 자신의 아빠를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여러 명의 아이들이 자신의 아빠로부터 무엇인가를 배우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어떤 아이는 자전거를, 어떤 아이는 연날리기를, 어떤 아이는 물수제비를, 어떤 아이는 수영을 배운다.      



‘나는 아빠에게 무엇을 배웠을까?’라는 생각이 어린 시절의 추억 하나를 들추어냈다. 우리 아빠는 내가 아기였을 때, 차사고로 왼쪽 손의 약지와 새끼손가락을 잃었다. 우리 아빠의 손가락은 모두 8개이다. 그 모습을 한 번도 이상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나에게는 익숙하고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나는 아빠의 온전한 손을 본 적이 없다.      



내가 초등학교 때, 아빠는 오른손으로 칼을 쥐고, 왼손을 지지대 삼아 나의 연필을 모두 깎아주셨다. 날카로운 연필 깎기가 ‘씽씽’ 소리를 몇 번 내면 금세 새초롬하게 깎여 나오는 연필과는 다르게 아빠가 깎아준 연필은 울퉁불퉁하고 몽톡했다. 그 연필로 글자를 쓰면 더 따뜻하고 부드러운 느낌이 나에게는 안정감을 주었다. 그래서 나는 아빠가 깎아주는 그 연필을 아껴 썼다. 왜냐하면 우리 아빠는 출장이 잦아서 연필을 다 쓸 때까지 집에서 돌아오지 않는 날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칼로 깎은 연필을 아껴 쓰다가 너무 뭉툭해져서 할 수 없이 연필깎이로 싹 갈아버리는 날이면, 아끼던 나무가 ‘툭’ 잘려 나가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나도 칼로 연필을 깎는 것을 아빠에게 배우기로 했다. 그날 처음으로 아빠의 손을 자세히 보았다. 그 움직임을 배우려고 천천히 집중해 보았다. 그런데 아빠가 무심하게 ‘아빠가 손이 온전하면, 훨씬 잘 깎는데...’라는 말을 아빠와 내 사이에 던져 놓았다. 그때 ‘우리 아빠는 손이 온전하지 않구나’라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칼로 능숙하게 연필을 깎으면서 나는 내가 아빠로부터 이것을 배웠다는 것을 생각해 본 일이 없었던 것 같다. 내가 처음부터 알았던 것처럼 일상적으로 했다. 그러다가 내가 아빠처럼 아이에게 연필을 깎아주면서 아빠가 내게 해주었던 그것들이 생각이 났다. 그리고 아빠가 자신의 손이 온전했으면 더 잘 깎아주었을 것이라는 말도 이해가 되었다. 내 눈에는 좋아 보이기만 했던 아빠가 깎아준 연필이 아빠 눈에는 부족한 점이 보였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도 아이도 내가 그랬던 것처럼, 내가 깎아준 그 연필을 특별하게 생각했다.      



아이는 아빠가 가르쳐준 그 일들을 실패할 때마다 아빠를 찾는다. 그리고 그 일을 해내는 아빠의 존재가 아이에게는 크다. 아이는 실패를 통해 결국 성공을 하게 되고, 모든 것에 익숙해지면서 커다랗던 아빠의 존재를 잊기도 한다. 그러다 그 익숙한 것들에 실패하게 되면 아이는 그제야 다시 아빠를 찾는다. 그런데 그땐 이미 아빠는 사라지고, 힘없는 아버지의 모습을 마주하게 된다. ‘아버지’라는 말에는 아이였던 자신도 사라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다. 자신도 더 이상 아이가 아니다.      



자신도 아빠가 된 것을 깨닫게 된다. 이제 자신이 ‘못 하는 것이 없는’ 아빠의 모습을 아이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누구의 아빠든지 간에 그 모습은 조금씩 다를지 모르지만, 모든 아빠는 가족을 지키는 슈퍼맨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슈퍼맨의 고단함을 슈퍼맨의 아이가 아는 순간 그 아빠가 가지고 있던 슈퍼맨의 마법은 사라진다. 그리고 아빠는 아버지가 된다.          




엄마와 아버지는 여성과 남성의 의미가 없는 것 같다. 따라서 이 두 권의 책을 여성과 남성의 역할로 분리하여 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이 두 단어에는 한 사람이 성인이 되어 자신의 힘으로 세상을 살아나가는 에너지를 만들어주는 마법 같은 힘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누구든 평생을 그 단어를 부르면서 살 수 없다는 것이 이 두 단어를 떠올리면 목이 메는 순간이 있게 되는 것 같다.



내가 그 단어의 주인이 되었을 때는 자식에게 한없이 내어주는 부모의 마음을 이해하고, 부족했던 자식으로서의 자신의 모습을 깨달으면서 후회하고, 자식에게는 본능처럼 자신의 것을 모두 내어주고 있는 것 같다. 이 단어는 ‘사랑합니다’라는 단어를 품고 있는데, 그 단어를 마음껏 표현하지 못한 아쉬움도 함께 있는 것 같다.      


나의 엄마, 나의 아버지!     

사랑합니다.      


  



<우리 아이의 한 줄 평>     

평상시에 부모님에게 잘하는 것이 없는데, 어버이날 같은 특별한 날이라도 잘해드려야겠다.      

               


https://m.oheadline.com/articles/R9j3IQZw9JUHRgxCRUb-kA==?uid=4f8c6c5e6d91434c8dde0827240053c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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