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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미 May 21. 2022

도전으로 시작된 인연 속 다양한 세상에서 만난 행복

: 냉정한 현실 속에 생존을 위한 적응

『깃털 없는 기러기 보르카』(2001)

글/그림 존 버닝햄, 번역 엄혜숙(비룡소)             




플럼스터 부부는 조상 대대로 살아오던 곳에 둥지를 틀고, 알을 낳았다. 여섯 마리의 아기 기러기가 태어났다. 프레다, 아치, 제니퍼, 오스왈드, 티모시, 그리고 보르카다. 플럼스터 부부는 아기 기러기들에게 이름을 붙여주었다.



이름은 다른 것들과 구별하기 위해서 부르는 말로, 존재 자체가 곧 이 세상의 주인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다. 이름에는 어떤 조건을 더 붙이지 않아도 그 인생의 주연이 자신이라는 것을 뜻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깃털이 없이 태어난 보르카도 ‘보르카’라는 이름을 얻는 순간 그것만으로도 이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 자격이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기러기들 중에 운이 나쁘게도 깃털이 없이 태어난 기러기 한 마리에 지나는 것이 아니라, ‘보르카’라는 이름은 깃털은 없지만 분명히 이 기러기도 다른 기러기들 못지않게 이 세상을 나름의 방법으로 살아나갈 수 있다는 것을 당당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보르카에게 깃털을 짜서 입혀주라는 의사 기러기의 조언대로, 보르카의 엄마는 회색 털실로 옷을 짜서 보르카에게 주었다.



많은 색깔들 중에 왜 회색이었을까? 그려진 기러기들은 대부분 흰색인 것 같은데 보르카에게 왜 회색실로 깃털을 짜서 주었을까? 그것은 아마도 엄마의 마음이었던 것 같다.



보르카의 엄마는 보르카에게 깃털을 대신할 만한 옷을 만들어주고 싶었을 것이다. 그것이 만약 흰색이었다면 남들에게 비치는 짧은 시간 동안 보르카도 다른 기러기들처럼 보였을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흰색에 오물이 묻어 얼룩이 져서 더 보기 싫었을 것이다. 그리고 회색은 흰색에 비해 기러기를 공격할만한 다른 동물들의 눈을 피하기에도 좋은 색이었을 것이다.



보르카의 엄마는 보르카가 깃털이 없어 겪을 수 있는 불편한 것들 중 추위를 막아줄 수 있는 것을 도와줌으로써 최선을 다 했던 것이다. 그러면서 보르카의 엄마는 다른 기러기들처럼 보르카가 환경에 잘 적응하면서 지내기를 바랐을 것이다.  


깃털이 없어서 추웠던 보르카는 따뜻한 털실로 만들어진 깃털 옷이 너무 좋아서 형제들에게 자랑을 했다. 하지만 형제들은 보르카를 놀리기만 했다. 보르카는 자신이 깃털이 없었던 것을 한탄하거나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형제들의 놀림으로 상처를 받았고, 그 상처는 결국 자신의 무리에서 자신을 소외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그래서 보르카는 다른 형제들의 시선과 괴롭힘이 싫어서 기러기로써 배워야 할 나는 것과 헤엄치는 것을 배울 기회를 스스로 포기하고 말았다.



평범은 같은 것을 욕망할 때 생기는 것이라는 드라마 대사가 떠올랐다. 기러기로써 당연히 배워야 할 것을 포기한 보르카는 이제 깃털만 없는 것이 아니라, 기러기로써 해야 할 것도 하지 못하는 진짜로 평범하지 못한 기러기가 되고 말았다.



봄이 지나고, 여름이 끝나갈 무렵 날은 추워졌다. 기러기들은 따뜻한 곳을 찾아 떠났다. 물론 날지 못하는 보르카는 이들과 함께 가지 못했다. 보르카의 부모를 비롯해 어느 누구도 보르카가 이 집단에서 빠졌다는 것을 눈치채지도 못했다.



풍경화, 추상화, 스케치, 만화 같은 다양한 그림으로 지루하지 않게 현실적인 이야기를 냉정하게 보여주고 있다. 다양한 세상에서 일반적이지 않은 주인공 보르카가 다른 인물들과의 관계를 통해 자신의 한계를 어떻게 극복해 나가는지를 영국이라는 배경 속에서 사실적으로 느껴지게 보여주고 있다.



보르카는 떠나는 기러기들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보르카는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고 있을 수는 없었다. 비를 맞은 보르카는 추위에 떨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 자리에 그대로 있으면 내년 봄에 가족들을 다시 만날 수 있었을 테지만, 보르카는 지금 당장 추위를 피해야만 했다. 그래서 지붕 있는 곳을 찾아갔다.



보르카가 찾은 지붕이 있는 곳은 크롬비 호라는 배였다. 그 배에서 지친 보르카는 잠이 들었다. 잠든 보르카를 발견한 선장은 보르카에게 뱃삯으로 일을 시켰다. 보르카가 평범해지기 시작하는 대목이다. 깃털이 없다는 이유로 따가운 시선을 받고, 결국 나는 법과 헤엄치는 법을 배울 수 없었던 보르카가 배를 탔다는 이유로 함께 일을 해야 한다는 평범한 대접을 받게 된 것이다. 보르카를 바라보는 시선에서 편견이 사라졌다.



선장은 같은 기러기가 아니었기 때문에 보르카를 편견 없이 바라보았을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선장도 보르카가 입고 있었던 회색 털로 짠 깃털 옷이 진짜 깃털로 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선장은 런던에 도착했을 때, 보르카를 일 년 내내 기러기들이 살고 있는 큐 가든(Kew Gardens)이라는 곳에 내려주었다.



큐 가든은 기러기들이 1년 내내 살 수 있는 곳으로, 온갖 다양한 새들이 살고 있어서 깃털 없는 보르카는 그들의 시선을 끌 수 없는 곳이었다. 보르카는 그곳에서 친절한 기러기들을 만나서 헤엄치는 법을 배웠고, 행복하게 지낼 수 있게 되었다. 선장은 보르카를 깃털 없는 기러기가 아니라, 기러기 무리에서 살아야 하는 ‘평범한’ 기러기로 보고 있었다.



이 그림책은 ‘장애’, ‘편견’이라는 중심어로 주제를 정리해 볼 수도 있지만, 나는 ‘도전’과 ‘인연’이라는 키워드로 이 그림책을 바라보고 싶다. 선장의 편견 없는 시선 덕분에 보르카는 큐 가든에서 친절한 기러기들을 만났고, 헤엄치는 법을 배웠고, 행복하게 지낼 수 있게 되었다.



그 시작은 보르카가 다시 봄이 올 것을 기다리며 늪지에 남아 있지 않고, 스스로 추위를 피해 크롬비 호에 올랐던 그 첫발이었을 것이다. 생존일지라도 생활하던 곳을 벗어나는 것에는 도전 정신이 필요하다. 어쩔 수 없이 몰린 상황이라고 해서 도전이 자연스러운 것은 아니다. 큰 결심이 필요한 결단력이 필요한 일이다.



한편, 보르카는 깃털은 없지만 헤엄치는 것을 배워 평범한 척이라도 할 수 있었던 자신의 노력조차 형제들의 놀림으로 포기했었다. 그런데 자신이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크롬비 호에서 매칼리스트 선장, 프레드, 파울러를 만나서 뱃일을 함께 하는 평범한 기러기가 되었다. 그들과의 인연인 보르카에게 큐 가든이라는 새로운 환경을 만나 행복할 수 있게 했다.



우리는 인생의 여정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그 과정 속에서 생각하지 못했던 인연으로 새로운 세상을 접하기도 하고, 의도하지 않았던 또 다른 인연을 만나기도 한다. 자신이 행복해지기 위해서 혼자서 살 수 있는 세상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듯이 말이다. 



수많은 관계 속에서 좌절하고 상처를 받기도 하지만, 그것을 극복하는 것도 그 많은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 두려워도 새로운 것에 한 발 들여놓는 용기와 도전의식은 새로운 세상의 문을 열게 한다. 그래서 좀 더 다양한 세상을 만나게 되고, 그 속에서 자신만의 삶의 방식을 찾아갈 때, 세상은 또 하나의 색깔이 입혀지고, 자신은 행복에 이르게 되는 것은 아닐까? 깃털이 없어서 날 수 없고, 모두 떠난 둥지에서 혼자 추위에 떨 수도 있었지만, 스스로 따뜻한 곳을 찾아 나서서 결국 회색 깃털 옷을 입고서도 새로운 환경에서 기러기답게 헤엄치며 살 수 있는 법을 배울 수 있었던 보르카처럼 말이다.      





<우리 아이의 한 줄 평>


형제들에게 무시당하고 혼자서 우는 보르카가 안쓰럽게 보였다. 보르카가 자신을 무시하는 상대를 또 만나게 된다면, 앞으로는 혼자서 울지 말고 자신의 속상한 것을 상대방이나 친구들에게 직접적으로 말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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