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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미 May 28. 2022

‘불안’에 대한 오해

: 내면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실패한 감정?

『불안』

글/그림: 조미자 (핑거, 2019)




초록색 티셔츠 아래에 노란색과 파란색이 반쪽씩 나누어져 있는 바지를 입은 단발머리의 사람이 있다. 옷차림이 예사스럽지 않다. 이 사람이 여자아이인지 남자아이인지 구별이 되지 않는다. 몇 살인지도 잘 모르겠다. 심지어 아이인지 어른인지도 모르겠다. 그저 이 사람의 모습이 불안하게만 느껴진다.



이 사람은 그동안 작은 구멍 안에 살짝 튀어나온 끈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 궁금하긴 했다. 하지만 두려워서 알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용기를 내서 그것을 마주 보기로 결심했다. 그 사람은 끈을 끌어당기기 시작했다. 마치 지구 속 깊은 곳에서 지표면 위로 힘없어 보이는 끈 하나가 뚫고 올라온 것 같다.



무엇을 잡아당기려고 했을까?



사람이 서 있는 하얀 세상과 대조적으로 그 발아래의 세상은 온갖 색상으로 칠해져 있다. 자신만의 다양한 모습으로 자신의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것 같았다. 사람이 서 있는 하얀 세상은 이성의 세상이고, 발아래의 세상은 감정의 세상인 것 같다. 하얀색은 냉철하게 느껴지고, 다양한 색깔은 기쁨, 슬픔, 분노, 미움, 화, 다정, 환희 등과 같은 인간의 다양한 감정의 느낌이 전달되는 것 같다.



켜켜이 쌓여 있는 다양한 색들을 비집고 끈을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줄이 팽팽해지면 팽팽해질수록 색깔들도 덩달아 긴장하고 있는 것 같았다. 거대한 지구 속에서 화산이 폭발하기 일보 직전 같은 느낌이다. 끈은 얇고 별로 힘이 없어 보여서 금방이라도 끊어질 것 같다.



사람이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그때 무엇인가 그 앞에 나타났다. 온 힘을 다해 끌어올린 것은 그 작은 구멍으로는 절대로 나올 수 없을 것 같은 거대한 새였다. 그 새는 그 사람의 몸집보다 훨씬 컸다. 노란 눈에 빨간 부리를 못되게 들이대는 이 새는 공격적으로 사람을 뒤쫓기도 하고, 사람이 어디에 숨어 있던 지간에 반드시 찾아내기도 했다. 위협적으로 느껴지는 새에 대한 공포감으로, 사람은 끈을 잡아당긴 것을 후회했다. 아마도 자신의 용기가 원망스러웠을 것이다.  



그런데 사람이 그 새에 대한 생각이 느슨해질수록 새도 힘이 빠지고 작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끈을 잡아당겼을 때, 사람의 발아래 놓여 있던 다양한 색깔이 서로 섞이기 시작했다. 꼿꼿하게 서 있듯이 자신의 영역이 있었던 색들이 옆으로 툭하고 쓰려지면서 형체를 잃어버린 것 같다. 색들이 겹쳐지기도 하고, 흐트러져 보이기도 한다.



그때서야 사람과 새는 서로 마주 보게 되었다. 새의 노란 눈도 빨간 부리도 색을 잃었고, 새는 아이만큼 작아져 있었다. 새는 사람을 위협하지 않았다. 새는 더 이상 사람에게 공포의 대상이 아니었다. 사람은 이제 새가 무섭지 않았다. 사람과 새는 함께 할 수 있게 되었다.




무엇을 잡아당긴 것일까?

새의 실체는 무엇일까?



사람이 잡아당긴 것은 새의 모습을 하고 있던 ‘불안’이라는 감정이었다. 사람은 자신 마음속 깊은 곳에 항상 자리 잡고 있었던 불안을 가느다란 끈으로 힘겹게 당겨 꺼내놓았다. 이 그림책의 서두에 ‘사랑, 행복, 기쁨... 과 함께, 불안도 내 안의 감정’이라고 작가는 그 새의 모습이 불안이라는 것을 밝혀주었다.



내가 주변의 상황에 따라 불안을 느끼는 정도가 크면, 그 새는 크고 위협적으로 나를 공격하고, 내가 평안을 찾으면 그 새는 작고 순해진다. 불안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항상 내 안에 존재하는 것이다. 그 불안의 크기가 커졌다 작아졌다 할 뿐이다.



사전적인 정의로 불안은 몸과 마음이 편하지 않은 상태이다. 언뜻 보면, 부정적인 말 같지만, 온전히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그 편하지 않은 상태를 편한 상태로 만들기 위해서 사람들은 도전을 하기도 하고, 노력을 하기도 한다. 긍정적인 방법으로 불안을 해소하고자 하면, 그것은 좋은 에너지를 만들어줄 수도 있다.



그런데 불안을 인식하는 순간 금방이라도 어떤 문제가 발생할 것처럼 생각하는 것 같다. 불안을 부정적인 감정으로 제거해야 하는 감정으로만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불안은 실패만으로 인해 생겨난 감정이 아니다.



주변에서 불안을 느끼는 요소는 아주 많다. ‘시험에 떨어질까 봐, 승진이 남들보다 늦어질까 봐, 교통사고가 날까 봐, 저 사람이 내 말을 오해할까 봐, 내 옷차림이 튈까 봐’ 등등 일반적으로 걱정으로 시작되는 것들은 모두 불안으로 연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다만, 우리는 걱정이라는 말이 불안을 덮어 버려, 불안을 걱정에서 차별화시키지 않을 뿐이다. 걱정만 하지 않으면, 불안감을 느끼지 않을까?



불안은 정말 커다란 위협이 가해지지 않으면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다. 불안은 꼭 어떤 위협이 나에게 가해지거나 성과에 따른 결과를 나에게 보여주지 못할 때 우울, 폭력, 상심 등의 모습으로 고개를 들고 나오는 것 같다. 하지만 불안은 위협을 받지 않아도 느낄 수 있다. 다만, 그것을 불안으로 인식하지 못할 뿐이다. 우리는 균형이 깨지는 순간 불안을 느낀다. 불안은 매우 섬세한 감정인 것 같다.



매 순간마다 불안을 인식하며 산다는 것은 피곤한 일이고, 정말 우울한 일이다. 반면, 불안을 외면하고 산다는 것 역시도 더 큰 문제를 만들어낼 것이다. 그래서 불안이 내면 속 깊이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사는 것으로 충분할 것 같다.



힘든 감정을 마주하는 순간, 위태롭게 끊어질 듯한 끈을 조심스럽게 잡아당겨 불안을 꺼내보면, 숨 쉴 공간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불안이라는 감정은 숨겨야 하는 감정이 아니라, 숨겨 둔 감정인 것 같다. 불안이 문제가 생겨서 생기는 감정이라기보다는 인간이 갖는 많은 다른 감정들처럼 자연스러운 감정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면, 힘든 상황 속에서 스스로가 자신을 먼저 이해하는 마음이 생길 것 같다.






<우리 아이의 한 줄 평>

이 책에서 아이는 자신의 불안을 극복하고, 친구처럼 지내게 되었다.

나도 이 아이처럼 내 안의 불안과 친해질 수 있을까.





https://m.oheadline.com/articles/LXYdwOEnmD2mUE0HsOaj-Q==?uid=4f8c6c5e6d91434c8dde0827240053c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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