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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미 Jun 13. 2022

고민을 말해 봐!

: 충분히 떠들어 대기

『고민 해결사 펭귄 선생님』(2020)

글/그림: 강경수(시공주니어)




펭귄 선생님은 고민 해결사이다. 고민을 가지고 있는 동물들은 그를 찾아와 자신들의 고민을 해결하고 만족스럽게 돌아간다. 그래서 펭귄 선생님의 상담소에는 상담시간이 되기도 전에 많은 동물들이 상담을 하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오전 10시, 말끔하게 가운을 차려입은 펭귄 선생님이 깔끔하게 정리된 책상 앞에서 하루를 시작한다. 전날 밤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개구리가 오늘의 첫 의뢰인이었다.



개구리는 두 시간 가까이 편안한 자세로 누워서 겨울잠이 쏟아지는 것에 대한 고민을 이야기했다. 펭귄 선생님은 초점 없는 듯한 표정으로 그 옆에 앉아만 있다. 어떤 동물이 들어와도 펭귄 선생님의 태도는 똑같다. 고민을 상담하러 온 동물들은 편안히 누워서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고, 펭귄 선생님은 그들의 고민을 흘려듣는 것처럼 졸기도 하고, 무언가를 마시기도 한다. 그 모습이 가볍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개구리가 나가고 악어가 들어왔다. 악어는 이빨이 너무 많은 것이 고민이었다. 한 시간 반 정도 자신의 고민을 이야기하고, 악어 역시 가벼운 마음으로 나갔다. 악어가 나가고 들어온 카멜레온은 자신의 기분에 따라 얼굴색이 바뀌어서 사회생활이 불편한 것이 고민이라고 한 시간 정도 이야기를 하고 기분이 좋아져서 나갔다. 그다음 들어온 원숭이는 가끔씩 나무에서 떨어지는 악몽을 꾸는 어려움을 한 시간 반 정도 이야기하고 난 뒤 신이 나서 나갔다. 끝으로 들어온 곰은 연어를 먹는 것이 지겹다고 찡그리며 한 시간 정도 떠들다가 웃으며 나갔다.



펭귄 선생님이 쉴 틈 없이 고민을 갖고 들어온 동물, 자신의 고민을 다 털어놓고 가볍게 돌아서는 동물, 그리고 다음 순서를 기다리며 창문에 얼굴을 빼꼼히 들이대고 있는 동물의 모습이 끊임없이 같은 패턴으로 반복된다. 끊임없이 상담소 안에는 누군가가 쏟아놓은 고민이 가득 차 있다. 상담소 안의 분위기는 지루할 것 같다.



하지만 그림과 글 서사의 전개는 지루하지 않다. 쓱쓱 속도감 있게 그려진 그림과 만화에서 보이는 말풍선을 따라가다 보면 전개가 빨리 이루어져 이야기의 결론도 빨리 볼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이 생긴다.



그 기대감은 틀리지 않았다.



펭귄 선생님은 자신을 찾아온 모든 동물들을 보내고 다소 흐트러진 모습으로 업무를 시작했던 자신의 책상 앞에 앉았다. 아침에 깨끗했던 책상과는 달리 책상 위에는 사용했던 컵도 몇 개 더 놓여 있고, 휴지도 널려 있고, 노트도 펼쳐져 있다. 어지럽혀진 책상과 흐트러진 펭귄 선생님의 모습으로 펭귄 선생님이 고민을 듣느라고 많이 지쳤다고 생각하는 순간, 펭귄 상담사는 얄미울 정도로 경쾌하게 귀마개를 ‘뽁’ 뽑는다. 업무를 마치는 소리다.



귀마개가 빠지는 순간, 펭귄 선생님은 남들의 고민을 함께 짊어지지 않고, 남들의 고민에서 한 발짝 떨어져서 그들이 자신의 고민을 꺼내어 풀어놓을 때를 기다려 준 것 같았다. 그래서 펭귄 선생님이 현명하다고 생각했다. 펭귄 선생님은 어떤 말도 하지 않았고, 고민을 이야기하는 동물에게 시선 한 번 제대로 보낸 적이 없었다. 고민에 대한 어떤 최소한의 반응조차 한 적이 없다. 그저 느슨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을 뿐이다. 펭귄 선생님은 동물들의 고민을 듣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어떤 어설픈 조언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 것 같다.



펭귄 선생님은 고민을 의뢰하러 온 동물들에게 상담시간을 정해두지 않았다. 펭귄 선생님과의 상담시간은 한 시간에서 두 시간까지 동물마다 제각각이었다. 시간을 제한하지 않은 것 같다. 고민을 가지고 찾아오는 동물들에게 자신이 하고 싶은 만큼 이야기할 수 있도록 시간을 충분히 내주었다. 그래서 동물들은 자신의 고민을 솔직하고 자유롭게 이야기하면서 자신들의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그들의 고민을 해결해 나가는 시작점이 되었을 것이다.



동물들이 가지고 온 고민은 누가 해결해 줄 수 있는 고민이 아니었다. 개구리는 겨울잠을 자야 하고, 악어는 이빨이 많은 것이 당연하다. 카멜레온은 몸의 색깔이 변해야 살아갈 수 있고, 원숭이는 나무를 잘 타지만 떨어질 수도 있다. 곰은 연어를 매우 좋아한다. 그런데 이것이 고민이었고, 그 고민은 곧 자신의 생존과 관련된 본성이었다.



그런데 개구리가 개구리 하고만 살고, 카멜레온이 카멜레온들 속에서만 살고, 원숭이가 원숭이 무리에서만 살고, 곰이 곰들의 집단 속에서만 산다면, 이들이 말하는 고민이 고민이라고 생각했을까? 자신을 다른 세상의 누군가와 비교하기 시작하면서 근본적인 자신의 본성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하는 것 같다. ‘다르다’ 혹은 ‘괜찮다’라는 생각보다 ‘틀리다’ 혹은 ‘부럽다’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그래서 자신의 모습보다 남의 모습이 먼저 눈에 들어오고, 그 뒤에 보이는 자신의 모습은 고민이 된다.



해결할 수 있다면 그것은 그저 해답이 있는 문제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고민인 것이다. 그런데 해결할 수 없어서 고민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지만, 해결할 필요가 없는 것에 대해서 고민하는 것은 문제다. 이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은 자신을 힘들게 할 것이다. 해결할 필요가 없는 고민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다. 다만, 정리가 안 될 뿐이다. 말로 정리를 하던지, 글로 정리를 하던지 간에 자신의 고민을 꺼내놓는 방법을 자신에게 맞게 찾는다면, 스스로 그 고민을 내려놓을 수 있을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좀 가벼워지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 아이의 한 마디>


고민이 있을 때, 그 고민을 잘 들어주는 사람만 있어도 고민은 이미 해결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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