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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미 Jun 18. 2022

전쟁 중에도 꿈을 쏘아 올린 소년

: ‘한낮에도 별을 볼 수 있는 사람들에게’

『로켓보이』(2011)

그림: 조아라(한솔수북)




한 소년이 있다. 이 소년은 까까머리에 한복을 입고, 검정 고무신을 신었다. 소년이 종이로 비행기를 접어 하늘 높이 날려 보내고 싶었는데 생각처럼 잘 되지 않았다. 소년은 좀 더 높은 언덕 위로 올라갔다. 그런데 하늘에 진짜 비행기가 나타났다. 소년이 날린 종이비행기가 진짜 비행기를 향해 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진짜 비행기가 소년에게 점점 다가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소년의 종이비행기는 얼마 날지 못하고 땅에 처박혔고, 진짜 비행기는 마을을 향해 날아갔다. 소년은 그 진짜 비행기를 따라 뛰었다. 소년의 마음은 어땠을까. 아마도 진짜 비행기가 신기해서 좀 더 보고 싶은 마음이 아니었을까.



진짜 비행기들은 순수한 소년의 마음을 무시한 채 낮게 깔리며 사람들이 사는 마을을 폭격하기 시작했다. 그 진짜 비행기는 전투기였다. 그 이후로 소년에게 비행기는 더 이상 신기하지 않았을 것이다. 두려웠을 것이다. 시시때때로 전투기들은 마을을 부수고, 사람을 죽였다. 소년은 자신의 눈앞에 폭탄에 맞아 죽은 듯한 아기 엄마와 울고 있는 아기를 보았다.



주변에 아무것도 없이 오로지 그들만이 그려져 있는 장면이 마치 무대 위에서 올라간 그들에게 핀 조명이 쏘아져 내리는 것처럼 느껴진다.



마을의 다른 사람들처럼 소년도 엄마와 함께 피난을 떠났다. 작은 체구에 배낭을 멘 소년은 추운 날씨와 많은 피난민들을 뚫고 기차를 탔다. 소년은 신이 났다. 전쟁의 공포보다 특별한 일 없으면 탈 수 없는 기차를 탄 것이 더 기쁜 아이에 지나지 않았다.



소년이 도착한 곳은 제대로 된 집 한 채 없는 피난민촌이었다. 그곳에는 소년 또래의 많은 아이들이 있었다. 아이들은 미군이 마을에 들어오면 먹을 것을 받기 위해 그 주변에 모여들었다. 영어를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미군 눈에 들려고 ‘기브 미 쪼꼬렛,’ ‘기브 미 껌’이라고 외치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 목소리를 뚫고 미군 허리에 걸려 있는 쌍안경에 더 관심이 있는 아이가 눈에 들어온다. 소년이다.



소년은 그 쌍안경을 얻었다. 그리고 그것으로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밤하늘에 떠 있는 달과 별을 보면서 소년은 꿈을 갖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소년은 우주로 날아갈 생각만 했다. 소년은 다시 종이비행기를 접었다.



밤하늘에 전투기가 뜨면 엄마와 소년은 이불을 뒤집어썼다. 현실이다. 공습이 사라지면 소년은 로켓을 타고 우주로 가는 상상을 했다. 아마도 이 무서운 현실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있었을 것이다.



소년의 꿈은 상상에 멈추지 않았다. 소년은 자신의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직접 로켓을 만들어 보았다. 친구들을 모두 불러 모아 하늘을 나는 로켓을 보여주려고 했지만, 소년이 처음으로 만든 로켓은 날지 못했다.



기대에 차서 로켓으로부터 친구들은 멀리 떨어져 있다. 하지만 친구들은 기다리다 지쳐 하나, 둘 자리를 떠났다. 만화처럼 친구들이 한 명씩 사라지는 그림에 그 아이들의 마음과 소년의 마음이 이해가 되어 웃음이 터진다. 소년도 친구들처럼 자신의 도전에 실망했지만, 마음을 다시 잡고 로켓을 새롭게 만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제는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소년은 친구들을 부르지 않았다.



소년의 로켓이 드디어 땅에서 솟아올랐다. 하지만 땅 위로 낮게 정신없이 날던 로켓은 아주머니들 빨래터를 휩쓸고 지나갔다. 빨래터에 있던 사람들이 놀랐다. 아이가 만든 허접한 로켓이라고 할지라도 전투기가 뜨는 것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는 사람들에게는 가슴을 쓸어내릴 일이었을 것 같다. 소년의 엄마는 화가 났다. 소년은 빨랫감을 손에 들고 혼내러 오는 엄마를 피해 도망을 갔다.



전쟁이 끝났다. 로켓을 품에 안은 훌쩍 커버린 소년은 화가 나서 빗자루를 들고 달려오는 엄마를 피해 도망갔다. 로켓 때문에 엄마에게 혼이 나는 변하지 않은 소년의 모습이 반갑다. 여전히 소년 안에 그 꿈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교복을 입고 있는 소년과 엄마가 뛰쳐나온 그 양옥집의 모습이 엄마에게 야단맞고 있는 소년의 상황과 대조적으로 평화롭게 느껴진다.



결국 소년은 언덕 위에 올라 밤하늘을 향해 자신의 로켓을 쏘아 올렸다.



누런 갱지 위에 연필로만 그려진 이야기였다. 책장을 넘기면, 어떤 색도 입지 않은 그림이 다채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어떤 글도 쓰여 있지 않은데, 인물들의 말소리가 들린다. 다 읽고 나면, 짧지 않은 한 편의 영화를 본 것 같다.



한국전쟁이라는 엄청난 역사 속에서 소년은 현실을 원망하고 좌절하기보다는 꿈을 꾸었다. 삭막한 전쟁 속에서 소년의 눈에 비친 하늘은 전투기만 날아다니는 곳이 아니라, 자신이 우주로 나갈 수 있는 통로였다. 하늘의 달과 별이 소년의 마음속에 가득 차 있었다. 모든 것을 망가뜨린 한국전쟁이 이 작은 소년의 꿈을 빼앗아 가지는 못했다. 이 꿈이 있었기에 소년은 그 힘든 전쟁의 시간을 버텨냈을 것이다. 하고자 하는 바가 있다는 것이 자신의 하루하루를 지켜낼 힘을 주기도 하는 것 같다.




<우리 아이의 한 마디>


한국전쟁이라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꿈을 잃지 않은 로켓보이처럼 나도 내 꿈을 어떤 상황에서도 잃지 않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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