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세미 Jun 21. 2022

내 모습을 인정하는 용기

: ‘말도 안 돼, 내가 오리?’

『어떤 용기』

글/그림: 박세경 (달그림, 2019)




높은 빌딩 속에 갇혀 연휴에도 쉬지 못하고 열심히 일하는 점부리가 있다. 점부리의 옷차림이나 행동은 사람인데, 모습은 사람이 아니다. 점부리는 멋진 차, 멋진 집, 멋진 남편을 얻는 것이 성공이라고 생각했고, 모두가 부러워하는 시선을 즐기고 싶어서 열심히 일했다.



자신의 미래를 위해 현재를 투자하고 있는 현대인들의 모습과 점부리의 모습이 겹쳐진다. 점부리처럼 오늘을 희생하고 내일을 기대하면서 다른 사람들보다 좀 더 성공하는 것이 행복한 삶이라고 믿고 있는 현대인들은 많다. 이들은 멈춰 있는 것을 쉬는 것으로 여기지 않고, 남들과 함께 가는 속도에 맞추지 못하는 것으로 생각해 두려움을 느끼기도 한다. 이들은 노력하면 좋은 결과를 얻을 것이라는 신념으로 일상을 견뎌내는 것 같다.



이들은 혹시라도 자신의 노력이 인정받지 못하면, 그 이외의 것에서 실패의 이유를 찾아 다시 일어날 힘을 내기도 한다. 내가 들인 시간과 노력이 최선이 아니었다는 것을 인정하면 결과는 어차피 바뀌지 않는데 자신의 기운만 빠지기 때문이다.



점부리도 자신이 열심히 한 일이 인정을 받지 못하면, 툭 튀어나온 입, 겨드랑이 아래 나는 털, 뒤뚱거리는 걸음걸이 같은 남들과 다른 자신의 외모가 자신의 능력을 낮게 평가받도록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점부리는 성공하기 위해 이런 타고난 신체도 성형수술이나 다이어트를 통해 극복하려고 했다. 이것도 자신의 노력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점부리는 남에게 보이는 자신의 몸에만 노력을 하려고 했다. 점부리의 몸이 그런 점부리에게 경고하듯이 어깨가 잘 움직여지지 않고, 아파 왔다. 어쩔 수 없이 점부리는 병원을 찾았다.



일하는 시간에 사무실에서 나와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병원으로 가는 길은 점부리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사무실 안은 바쁘게 돌아가고 있을 텐데 점부리 자신만 사무실 밖으로 나온 것이 밀려난 기분을 느끼게 했을 수도 있다. 또, 아직 아름다운 사람의 모습이 되지 못한 채 많은 사람들 속에 섞여 있는 것은 누군가의 시선이 먼저 와닿기도 전에 스스로가 자신을 초라하게 느꼈을 수도 있다.  



병원에 도착한 점부리 눈에 의욕도, 생기도 없는 환자들의 모습이 먼저 들어왔다. 점부리는 아프다는 것이 마치 실패처럼 느껴졌다. 자신이 몸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 아픈 것처럼 생각한 것 같다. 하지만 누구나 아플 수 있다. 아픈 것에 조건을 붙일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아픈 것을 실패로 생각하는 것은 자신을 너무 궁지로 몰아넣는 것 같다.



점부리는 무거운 마음으로 의사를 만났다. 의사의 진료는 점부리가 오리라는 사실을 이야기해주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오리가 쉬지 않고 일해서 어깨가 뭉쳤고, 날개를 쓰지 않아서 그 기능도 떨어졌다고 한다. 자신이 오리인 줄도 모르고 점부리는 자신의 튀어나온 입을 창피하게 여겼고, 아침마다 겨드랑이 털을 뽑아냈다. 수영장에 가서 물속에 몸을 담글 시간도 없이 일만 했다.



점부리는 의사의 처방대로 다른 환자들과 함께 의사를 따라 병원 뒤 작은 숲으로 가서 재활을 했다. 숲에서 스마트폰을 끄고, 편안한 자세로 누웠다. 자연에 몸을 적응시켜 가면서 몸은 점점 펴지기 시작했고, 마음은 안정되어 갔다. 그리고 환자들은 서로의 눈을 보면서 자신의 이야기들을 하기 시작했다.



병원에 다녀온 점부리는 자신을 돌보기 시작했다. 제철 재료를 사서 요리를 해 먹었고, 산책도 했고, 집에서도 스트레칭과 근육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자신과 함께 재활을 한 환자들과 소통하고 그들의 마음에 공감하면서 점부리는 자신을 아끼는 방법을 찾게 된 것 같다. ‘나’만 힘들지 않았다는 위안과 서로를 응원하는 마음이 닿아 점부리가 자신이 살아왔던 삶의 방식을 버리고 좀 더 자신을 사랑하는 방식을 선택할 용기를 얻은 것 같다.  



그런 굉장한 용기로 이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려고 노력했던 점부리에게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일어났다. 매일 아침 겨드랑이 털을 뽑다가 뽑지 않게 되자 팔이 털로 가득 뒤 덮이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털 아래에 날개가 돋아나 있었다. 점부리는 그런 자신의 모습이 낯설고 무서웠다. 머리로는 오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막상 이전과는 다른 모습의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닐 것 같다.



점부리는 의사에게 도움을 청했다. 의사는 날개가 돋아난 점부리의 모습을 아름답다고 했다. 점부리는 예전에 아름다운 사람이 되고 싶었었다. 그런데 결국 아름다운 사람은 되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 두려운 자신의 모습을 아름답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듣게 되었다. 점부리는 사람이 아니어도 오리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이 처음에는 의아했지만, 이제 남들이 부러워하는 ‘사람’이 아니라 진짜 ‘자기’의 모습을 찾고 싶어졌다. 날개는 점부리에게 다른 사람의 시선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모습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해 주었다.



점부리가 날갯짓을 반복할수록 점부리의 팔과 어깨는 점점 더 강해졌고, 매일매일 연습한 덕분에 안정적으로 날 수 있게 되었다. 날개는 점부리를 자유롭게 만들어주었고, 빌딩 안에 갇혀 있던 꺼내 점부리를 세계 곳곳으로 데려다주었다. 점부리는 오리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날개를 통해 찾게 되었다. 날개는 점부리의 용기였다.



점부리는 사람이 되려고 했던 욕망을 버리고, 오리로의 삶을 새롭게 살기 위해 한 발을 떼었다. 점부리는 아직은 완전한 오리는 아니었다. 점부리가 완전한 오리였다면 의사인 왜가리처럼 사람의 옷을 입지 않았을 것이다. 점부리는 오리가 되어 가고 과정에 있는 것이다.



점부리의 이야기를 통해서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볼 용기, 자신의 한계를 인정할 용기, 자신의 능력을 인정할 용기가 적절한 시기에 ‘나’에게 찾아와 나의 삶을 좀 더 행복하게 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 그림책은 지금 ‘나’의 위치에서 어떤 용기가 필요한지를 자꾸 생각하게 한다. 나에게도 지금 이런 용기가 필요할까.



사람과 사람의 옷을 입은 동물들의 모습이 인간 생활처럼 자세하게 그려진 그림을 보면서 이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더 사실적으로 느껴졌다. 한편으로는 각자의 개성을 살려내지 못하고, 자기 삶의 주인공으로 살지 못하고, 남들의 시선 속에 갇혀 지내면서 모두 같은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지친 모습이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 각자 가지고 태어난 것을 충분히 활용하면서 이 세상을 자유롭게 살면 금방이라도 행복해질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생각들을 책 밖으로 꺼내서 나에게 대입을 해 보면, 혼란스러웠다. 나에게는 점부리가 가지고 있는 용기가 지금 필요하지 않다. 나는 점부리의 그 시간을 지나왔다. 그래서 그저 그 용기가 부러울 뿐이다. 그리고 점부리가 자유를 느끼며 누리는 그 시간들 뒤에 또 다른 용기를 필요로 하는 시간이 올 것이라고 생각하니 점부리가 지금 누리는 그 자유로움을 더 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제 내 나이를 인정해야 하는 용기와 자식을 내 품에서 내놓을 용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머릿속으로 떠올리는 나의 모습과 거울 속에 비친 나의 모습이 다르고, 내가 그리고 있는 내 아이의 미래와 아이가 그리고 있는 그 아이의 미래가 다르다. 이것을 인정하고 그에 맞는 삶을 자신 있게 살아야 할 텐데, 점부리가 날개가 생긴 것을 보고 두려워하듯이 노화로 인해 벌어지는 나의 변화들이 나는 두렵다. 활짝 편 날개를 다시 접어야 할 때가 날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보다 두려움이 더 클 것 같다.



날개를 활짝 펴고 더 이상 세계를 누리지는 못하지만, 그 날개를 잘 접어 사람들 속을 걸어 다니는 것에 즐거워할 수 있는 용기 혹은 낮게 날면서 주위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볼 수 있는 것에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면, 그 용기 또한 저절로 생기지는 않을 것 같아서 두렵다. 점부리가 용기를 얻기 위해 어깨가 아팠던 것처럼 나도 이런 용기를 얻기 위해 무엇인가를 내 인생에 지불해야 될 것 같은 두려움이 생겼다.



그리고 그 두려움을 에너지 넘치는 긍정적인 마음으로 극복해 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것조차 버거운 지점이 있다. 그렇다면 자신을 다독일만한 또 다른 어떤 용기가 필요할 것 같은데, 그 용기가 무엇인지 예상조차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과정을 나만이 겪는 것이 아니라, 내 곁에 있는 가족과 친구들과 함께 겪어낼 수 있다는 것이 나를 안심시킨다.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그것만으로도 어떤 용기인지는 모르지만 한 번 내 볼 수 있을 것 같다. 심호흡 한 번으로 용기를 내 볼 엄두가 나는 것은 나를 사랑하고 응원하는 이들이 내 곁에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점부리가 함께 아팠던 친구들 덕에 외롭지 않게 자신을 찾는 행복의 여정을 떠날 수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우리 아이의 한 마디>

성공한 삶이라는 것은 자신이 만족한 삶인 것 같다. 나도 내가 만족하는 삶을 살아야겠다.



https://m.oheadline.com/articles/8g1KOajJ1tJnc23fNQakeA==?uid=4f8c6c5e6d91434c8dde0827240053cb


매거진의 이전글 전쟁 중에도 꿈을 쏘아 올린 소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