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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이경 May 30. 2024

나는 원조"고딩엄빠"다.(3)

03.

   몇 시간을 윽박지르다가 달래다가 화를 내던 남편의 엄마와 큰누나가 소득 없이 돌아갔다. 언덕 아래로 내려가는 두 어른을 나는 확인하듯 오래 바라봤다. 그들의 손을 잡고 따라가는 아이의 모습이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지고도 나는 마음을 가다듬지 못했다.

           

 사실 그전까지 내가 무슨 일을 벌인 것인지 잘 인지하지 못한 듯하다. 그냥 어쩌다 보니 일이 커져버린 것이지, 무슨 계획이나 대책이 있을 리가 만무했다.     


 아기는 제가 태어난 환경을 알기라도 하는 듯 순했다. 배고프다고 보채지도 않았다. 뱃속에서 부대꼈던 열 달 동안의 삶이 힘겨웠는지 며칠 동안 잠만 잤다.


 그 흔한 밤낮이 바뀌는 짓도 하지 않았다.   

   

  남편의 엄마와 누나가 돌아가고 일주일가량 지난 어느 날, 이번엔 남편의 아버지와 함께 엄마가 다시 찾아왔다. 비좁은 방, 아랫목에 누워있는 아기를 아버지가 품에 안았다.


  “아들이라니 나는 기분이 좋구나.”

 남편의 아버지가 처음 하신 말씀이다.

 “그래, 이제 어찌 살아갈 생각인 게냐?”

 남편의 아버지가 물었다. 나는 가만히 있었다.

 “왜 대답이 없는 거냐? 그렇게 당돌하게 대들던 기세는 어디 가고? 너 때문에 공부만 하던 우리 아들 인생 망친 거 알고 있는 거냐? 앞으로 어떡할 거냐? 쟤 앞날을?”

 남편의 엄마가 나를 향해 쏘아붙였다.


 그때 이미 남편은 학교 폭력사건으로 학교를 그만둔 상태였다. 나는 약간 어이가 없는 기분이 들었다.   

 “아드님이 그렇게 걱정되시면 데려가세요. 저는 아드님 필요 없습니다. 저는 아기하고 둘이 살 자신이 있으니까, 데려가셔서 공부시키세요.”

 내가 바로 대답했다. 남편의 엄마의 얼굴에 약간의 화색이 도는 듯했다.

“그래, 그럼 너, 다시는 우리 아들 찾지 않을 거지? 다시는 우리 아들 만나지 않을 거지?”

 “네.”

 “너 약속했다. 나중에 딴말하면 안 된다?”


 그렇게 좁은 방 안에서 열일곱 살짜리 여자애 하나 놓고 두 어른이 실랑이를 벌이는 동안, 남편은 문밖에서 들어오지도 못하고 있었다.


 시골에 살고 있던 남편의 부모님은 중소도시인 J시로 육 남매를 모두 유학 보냈다. 큰형을 필두로 모든 형제가 부모님이 마련해 준 집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남편이 막내였다. 남편은 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 6학년 2학기 때 도회로 나왔다고 했다. 친구도 없고, 나이차 많은 형과 누나는 각자의 생활에 바쁘다 보니 남편은 늘 외톨이였다고 했다.

 더군다나 낯선 곳에서.


  형제 많은 집 막내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외로움을 많이 타고 마음도 약한 편이었다. 그런 아이에게 다가 선 친구들이 불량한 친구들이었나 보다.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불량한 친구들과 어울려 다녔고 중학교 2학년 무렵엔 이미 그 바닥에서 유명인사가 되어 있었다.  

    

  내가 남편을 처음 본 것은 지역 대학의 가을축제에서였다. 그때만 해도 대학교의 축제는 지역의 축제였다. 지금처럼 축제가 흔하지 않은 때였으므로, 모든 시민들이 축제에 모여들 정도였다. 고등학교에 다니는 친구들끼리 구경 가는 것은 그리 이상하지 않은 일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그를 처음 보게 된 것이다.   

   

 첫인상은, 이상하리만치 나와 닮아 있었다.


    동종은 동종의 것을 알아본다고 했던가.


 그는 그 많은 인파 속에서도 유독 눈에 뜨였다.

훤칠한 키에 마른 몸매, 하얀 얼굴.

눈이 슬퍼 보였다. 아마, 그 애도 내가 눈에 들어온 모양이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알아보게 된 것이다.    

  

  남편이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부모님의 뒤를 따라, 뒤도 돌아보지 못하고 언덕을 내려갔다. 이번에도 나는 그들이 사라지는 모습을 오래도록 바라봤다.


  그들이 보이지 않게 되자, 휘몰아치던 태풍이 갑자기 잠잠해진 것처럼 정막이 흘렀다.


  그때서야 내가 어떤 국면에 처해 있는지 조금씩 실감이 되기 시작했다.   

   

  방문을 열고 좁은 방 안으로 들어섰을 때, 아직 그들이 남기고 간 공기가 무겁게 내려앉아 있었다. 아랫목에 이불에 감긴 채 잠들어 있는 아기의 숨소리만 고요하게 방 안을 채우고 있었다. 아기는 여전히 순하게 잠들어 있었다.


   나는 처음으로 아기의 얼굴을 자세히 보았다.


 그 며칠, 나는 아기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볼 수가 없었다. 어쩌면 그 누구보다 두려운 마음이 컸는지도 몰랐다.


 어쩔 거냐고 다그치는 어른들의 말에 반발하는 마음으로, 내가 키울 거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자신 있다고,

  대응한 건지도 모른다.   

   

  아기는 너무 예뻤다. 남편을 쏙 빼닮아 있었다.

 투명하리만치 말간 얼굴에 눈과 코, 입술이 조화롭게 놓여 있었다. 손가락은 이른 봄에 돋아나는 새싹처럼 가녀렸다. 작은 콩알을 줄지어 세운 듯한 발가락 다섯 개.

 전쟁처럼 휘몰아치고 있는 현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작고 여리고 예뻤다.


  내가 손을 내밀어 작은 손바닥 안으로 손가락을 밀어 넣자, 가냘픈 손가락으로 내 검지손가락을 꼭 잡았다.

 미세하지만 힘이 느껴졌다. 촉촉하고 따뜻했다.  불현듯 뭉클한 것이 목구멍에서 밀려 올라왔다.

 알 수 없는 감정이었다.

   

    너를 지키고야 말겠다는 생각이 가슴속 깊은 곳에서 솟구치는 걸 온몸으로 느끼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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