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임신한 사실을 누구에게도 털어놓고 말할 수가 없었다. 엄마는 하던 사업이 망해서 이리저리 피해 다니고 있었다.
친구에게 털어놓아봤자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 뻔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임신말기까지 주변에서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배가 부르거나 하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은 지나갔고 고등학교 2학년, 화창한 봄날 나는 갑자기 의식을 잃었다. 주민등록증을 발급을 받기 위해 동사무소에 제출할 서류를 받아다 놓고 나서였다.
나의 기억은 거기까지다.
여동생 말로는 내가 초록색 물질을 계속 토했고 묻는 말에 대꾸는 하는데 정신이 온전해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그렇게 정신이 없는 상태에서 먹지도 않았는데 몸이 엄청나게 부어올랐다. (아이를 낳고 나서도 그 부기는 빠지지 않았다. 신발이 맞는 게 없었다. 남자 슬리퍼에 간신히 발을 끼워 넣고 어기적거리며 화장실을 다녔다. 둘째 아이를 낳을 때 의사에게 들은 바로는, 그것이 임신중독의 전형적인 증상이라고 했다. 산모도 아이도 아주 위험한 상황이었을 거라면서. 천운이라고 했다. 둘 다.)
그렇게 8일을 보내고 반은 혼수상태 속에서 아기가 출산되었다.
그야말로 출산되어 버린 것이다.
나와 동생이 자취하고 있는 집에 잠시 들렀다가 얼떨결에 아이를 받아낸 엄마는, 남편의 집으로 찾아간 모양이고 출산한 지 3일째 되는 날, 남편의 엄마와 큰누나라는 사람이 찾아왔다.
서너 살쯤 되어 보이는 사내아이 손을 잡고서였다.
두 사람은 다짜고짜 아기를 입양 보내자는 말부터 했다.
아기를 들여다본다거나 몸은 어떠냐는 인사치레는 없었다. 홀트아동복지에도 알아봤고, 큰누나라는 사람이 다니는 교회에 아이 없는 집도 있다는 얘기를 했다. 어린 네가 어떻게 애를 키울 거냐며, 하던 공부를 마쳐야 되지 않겠느냐고. 마치 나의 미래를 굉장히 걱정하는 투였다.
그때는 온 나라 안이 육이오 때 잃은 “이산가족 찾기”열풍이 불고 있었다. 텔레비전의 화면엔 각자의 기억을 검은 글씨로 하얀 판때기에 써서 가슴에 안고 있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가족을 찾은 사람들이 서로 부둥켜안고 소리 내어 울면 곁에 서 있는 아나운서가 울고 그것을 지켜보던 방청객들이 울었다. 화면도 울고 그 화면 앞에 앉아 있는 시청자들도 울었다. 그야말로 온 나라가 눈물바다였다.
“온 나라가 잃어버린 가족을 찾겠다고 저렇게 울고불고 난리인데 어떻게 그런 말씀을 하세요? 더군다나 아무리 어려도 아이 낳은 지 3일밖에 되지 않은 산모한테. 손잡고 있는 당신 아이만 소중해요? 남의 애라고 말 함부로 하지 마세요!”
당돌했다. 두 어른은 입을 딱 벌리는 눈치였다.
나는 아무도 믿을 수 없었다. 시집식구도 친정 엄마도 모두가 핏덩이 하나만 처리하면 모두가 정상이 될 것이라고 믿는 듯했다.(나는 지금도 정상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세상에 무엇이 정상이고 무엇이 정상이 아니라는 것인지, 늘 의문이 든다. 그 정상이라는 잣대는 과연 누가 만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