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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벋으훈 Mar 30. 2021

[초단편픽션#3] 다신 없을 행복한 여행

이별과 작별 그리고 선택

 우린 이번 여행을 끝으로 헤어지기로 했다. 그와의 마지막 이별, 나에게는 다신 없을 작별, 그 헤어짐을 조금 특별하게 남기고 싶었다. 마지막은 단호할수록 좋다는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우린 여행을 떠났다. 끝을 함께하지 않으면 아쉬울 것 같다는 말에 서로 고개를 끄덕였다. 배웅 온 가족들은 눈물을 참으려 애쓰며 나를 보내줬다. 나는 내 웃는 얼굴을 더 간직해주길 바라는 마음에 미소로 화답하며 출국 절차를 밟았다. 고맙다, 미안하다, 사랑한다, 이런 말들이 왜 상투적이라 불릴 만큼 자주 쓰이는지 깨달았다. 그런 말이 꼭 필요한 순간이 있고 이때가 바로 그런 시간이었다. 우리 둘은 온기가 남은 손을 붙잡고 어깨를 끌어안으며 비행기에 올랐다.


 여행의 규칙은 딱 두 개다. 여행 계획을 세우며 서로 하나씩 정했다. 나는 ‘헤어지지 않으면 안 되냐는 말 하지 않기’를 종이 위에 썼다. 여러 개 할 생각도 없던 터라 번호도 붙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내가 쓴 규칙에 1을 붙이고 연이어 2를 썼다. 2. 헤어지기 전까지 사랑한다 계속 말해주기. 괜찮겠냐는 내 물음에 그는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그저 계속 나를 바라봤다. “사랑해.”


  꽤나 긴 비행이었다. 비행기에서만 거의 하루가 지난 듯했다. 이렇게 한국을 멀리 떠나온 건 처음이었다. 스위스의 공기는 뭐라도 좀 다를까 싶었는데 별 감흥이 없다. 진통제 때문에 전반적으로 기운이 가라앉아서 그런 걸 수도 있겠다. 반면 그는 더 심취한 듯했다. 그는 울음을 숨기지 않고 내 손을 잡았다. 그의 양손이 내 한 손을 감쌌다. 애절한 표정은 금방이라도 규칙을 어길 것만 같았다. 난 그를 쳐다보지 못했다.


  우린 서로의 손을 놓치 않고 하루를 보냈다. 멀리까지 왔지만 둘 다 관광엔 관심이 없었다. 그저 사진 찍기 바빴고 그의 카메라는 늘 나를 향했다. 스위스의 하늘은 왠지 한국보다 높아 보였고, 사람들의 웃음은 더 짙게 느껴졌다. 음식도 더 꼭꼭 씹어가며 대화도 식사의 일부라는 걸 배우는, 그런 여유로운 시간이었다. 커피도 카페인을 위해서 들이키던 평소와 달리 혀에 조금씩 묻혀가며 마셨다. 그렇게 혀의 감각이 민감해질 즈음 뜨거운 커피에 키스를 은유한 시를 드디어 이해할 수 있었다. ‘사랑해.’ 하마터면 말할 뻔했다. 눈물보다도 사랑한다는 말을 더 열렬히 삼켰다.


 사실 스위스에 오기 전까지 끊임없이 망설였다. 굳이 이렇게 빨리 죽을 이유가 있을까. 계속 질문을 던져왔다. 하지만 더 아프고 싶지 않았다. 내가 병들어가는 모습을 보며 그가 흘리는 눈물을 그만 보고 싶었다. 한번은 악을 쓰며 고통에 몸부림치다가 어금니에 금이 갔다. 가루에 가까운 흰 조각들을 뱉어낼 때쯤 결정을 내렸다. 조금이라도 사람처럼 살고 있을 때 죽는 게 낫지 않을까. 안락사를 검색했고 스위스가 나왔다. 그는 그게 자살과 뭐가 다르냐고 크게 화를 냈다. 그럼 아픈 사람들은 다 죽어야 하는 거냐고. 호스스 병동은 왜 있는 거냐고. 시한부 인생도 인생이라고. 간호사 분들이 말리러 올 때까지 그는 숨쉴 틈 없이 소리를 질렀다. 자살도 선택이고, 안락사도 선택이고, 삶을 이어나가는 것도 선택이라고. 고맙고, 미안하고, 사랑한다고. 나는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스위스에서의 마지막 날, 바늘이 혈관을 파고들었다. 바늘이 꽂힌 손으로 글을 쓴다. 다른 손은 떨고 있는 그에게 내주었다. 우린 꽤 오랜 여행을 함께 했다. 삶 자체는 내 의지대로 생겨나지 않았지만 그 여행은 선택이었다. 후회 없을 선택이었고 내 선택 중 제일 현명한 것이었다. 하지만 여행엔 늘 끝이 있는 법이다. 그 끝을 조금 앞당겼을 따름이다. 세상이 정해버릴 불안한 끝이 아닌 내가 내린, 온전한 나의 결말이다. 그의 행복을 빈다.





* 소설이라 불리기엔 부끄러운 글이라 픽션이라고만 부릅니다. 언젠간 픽션이 아닌 소설을 쓸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라며 적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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