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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벋으훈 Mar 02. 2020

코노를 또 가게 되겠지


코인 노래방, 일명 코노를 혼자 자주 갔었다. 작고 어두침침한 방에서 소리를 지르면 소리를 지르며 마이크 너머로 스트레스를 날릴 수 있었다. 물론 다른 이유도 있다. 사실은 더 중요한 이유. 마치 새벽 한 시를 소환한 것처럼 사랑 운운하는 노랫말을 입에 올리며 기억을 꺼내볼 수 있었다.


 코노에서는 기억을 음미할 수 있었다. 분리된 공간이 주는 시간의 정지랄까. 문을 열고 나가면 다시 밑으로 내몰릴 기억을 만나왔다. 가까이 지냈던 사람과 그 옆의 나 자신이 조우의 대상이었다. 사랑했던 그러나 이별을 남긴 인기척을 되돌아봤다. 지금은 없지만 존재했던 것들에 대한 부질없는 미련과 향수, 원망, 증오, 아쉬움 등 복합적인 감정을 목이 쉬도록 토해내곤 했다.


 그런데 코노를 갈 동기가 사라졌다. 며칠 전 코노를 가서 첫 곡으로 박효신의 <좋은 사람>을 취한 듯 부르려는데 뭔가 이상했다. '좋은 사람~사랑했었다면~..' 취기가 오르지 않았다. 빠져들 기억이 없었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고 감정도 일렁이지 않았다. 흔적조차 지워졌다는 게 이런 걸까란 깨달음만이 덩그러니 남았다.


 한편으론 다행이다. 이건 새로운 만남이 찾아올 자리가 마련됐다는 징후다. 상대의 눈동자에 지나간 이별을 떠올리는 나를 보곤 한다. 못 본 척 새로운 손을 잡으려 애쓸 수도 있었겠지만 맴도는 혼잣말을 억누를 수 없었다. '굳이?' 내가 가진 노오력은 제한적임에도 불구하고 그 노오력을 요구하는 덴 즐비하기 때문에 굳이 감정에도 노력을 들여야되나 싶다.


 이젠 준비가 된 것 같다. 반투명 그림자도 아른거리지 않는다. 심지어 몇몇은 기생충 포스터의 인물들처럼 검은 블럭이 가려놓은 듯 이름도 가물가물하다.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5배속으로 지나가는 무명의 순간들만 얼핏 스친다. 준비는 끝났다. 근데 어떻게 시작한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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