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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벋으훈 Mar 25. 2020

반성 없는 분노 전시에 자격을 묻는다

d를 읽고 n을

황정은 작가의 <디디의 우산>에는 <d>와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가 수록돼있다. 그 옆에 <죽음이란 무엇인가>와 <희망에 미래는 있는가>가 배치돼있다.


#D

“나는 내 환멸로부터 탈출하여 향해 갈 곳도 없는데요.”(114)

 

 분노를 담은 해시태그가 황금폰이 아니라 버닝썬이 아니라 그..각종 성범죄 사건이 아니라 그들을 운이 없다고 말한 사람들이 아니라 그..아무말챌린지처럼 이어진다. 박사를 비롯한 N번방의 범죄자들은 성중립 AI가 아니다. N번방이 담고 있는 사고방식은 그 공간에만 국한돼있지 않다. 분노는 누구나 할 순 있지만 분노 대상이나 분노 전시 자격은 조금 고민해볼 [필요/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23일 SBS 8 뉴스 보도 덕분에(?) 이름과 학교와 봉사 경험까지 알게 됐다. 경찰의 얼굴 공개 결정보다 하루 일찍 보도함으로써 착취 내용이나 범죄 수단보다 인하공전과 학보 편집국장, 봉사 경험이 더 화두가 돼버렸다. 국민의 알권리보단 징벌적 차원에서 얼굴 공개 청원이 쏟아진 줄 알았는데.


“우리가 모르는 척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우리 일상을 말이다. 일상에 조짐이 다 있잖아. ... 그런 조짐을 느껴. 세계가 곧 한 번 더 망할 것이라는 예감이 있는데 그게 굉장히 확실하다.” (129)


 N번방은 뜬금없는 우연이 아니다. 일상엔 조짐들이 넘쳐났다. 대놓고 오가는 사람은 적어졌지만 온라인에는 있었다. 그들이 구매자였고 '박사'였다. 코로나 19로 1:29:300 법칙이라고도 불리는 하인리히 법칙이 종종 언급된다. 300개의 작은 재해가 모여 29 그리고 1개의 큰 재해를 만든다는 것이다. N번방의 N은 1이 아니고 1:29:300의 1을 차지하고 있지도 않다. N번방의 N 근처도 안 갔다거나 텔레그램을 설치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 당당하게 분노를 여기저기 전시할 수 있는지. 상투적 반복에 젖어 알면서도 분노하고 있지 않았던 건 아닌지. 혹은 알려고 하지 않았던 건 아닌지.


 지난해 ‘리벤지 포르노’의 한국어 대체어를 만드는 회의에 참관했었다. 후보엔 ‘보복(성) 성범죄’와 ‘보복성 음란물’ 등이 올랐다. 결국엔 '보복성 음란물'로 결정됐고 주된 근거는 리벤지 포르노가 어쨌든 행위보다는 영상을 가리킨다는 점이었다. 그런데 회의에 이런 의견을 밝힌 사람 혹은 남성이 있었다. "범죄는 너무 심하지 않아요?" 그럼 그게 범죄가 아니고 뭐죠. “음..실수?”


“미안하다고 말해야 할 때 빤히 쳐다보는 사람들. ... 비대한 자아와 형편없는 자존감이 뒤죽박죽 섞인 인격을 아무에게나 들이대는 사람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타인.”(66)


 ‘또 야동 돌려봤구만.’ 한 달 전 N번방 보도를 스칠 때 든 생각이다. 무슨 일인지 더 들여다보지 않고 넘겼다. ‘악의 평범성(banality)’에 대한 번역이 '평범성'보단 ‘상투성’이 더 적절하단 입장이 있다. 익숙함에 의탁 무사유에서 나올 수 있는 '악'이란 맥락에서 평범보단 상투가 맞지 않냐는 논리다. (중립은 여러 입장을 전부 알기 때문에 내린 합리적 의사결정이 아니라 무관심으로 보는 게 맞지 않나 싶다. 그냥 별 관심 없어서 잘 모르겠다고 풀어서 말해줬으면 좋겠다.) 분노 전시 자격에 대해 고민하는 이유다.


 23일 조주빈의 얼굴 공개로 SBS 8 뉴스가 주목받았다. N번방의 존재는 지난해 11월 한겨레를 통해 최초 보도됐다. 보도한 기자는 조주빈으로부터 가족의 신상까지 털리며 협박당했었다. SBS <궁금한 이야기 Y>에서 N번방을 다룬 건 1월 17이었고 텔레그램상으로 인터뷰한 내용도 공개됐다. 최근 다시 오르내리는 “PD님이 보기엔 제가 악마입니까?”라는 조주빈의 말도 이때 이미 등장했다. 조주빈의 학점을 알려준 SBS 8 뉴스가 주목받는 게 마땅한지 모르겠다.


“멀쩡하다는 것과 더는 멀쩡하지 않게 되는 순간은 앞면과 뒷면일 뿐. 언젠가는 뒤집어진다.”(69)


 N번방에 관해 꾸준히 분노해오고 목소리 낸 사람 혹은 여성이 있다. 많다. 듣지 않고 보지 않았을 뿐이다. 나의 과거와 현재가 당당치 못해 N보다 D를 내밀었다. 내게 어울리는 해시태그는 전원 처벌이나 신상 공개를 요구하는 게 아니다. 미래엔 조금이나마 떳떳하게 분노할 수 있길 욕심내 본다. 이 반성문을 읽은 사람 혹은 남성은 고민할 [필요/의무] 중 어떤 걸 택할지 궁금하다.


#나도N이다#나도가해자다



*첫 문단에 분명 아무노래챌린지를 생각하고 적은 것 같은데 아무말챌린지라고 적어버렸다. 근데 아무말챌린지도 맥락상 성립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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