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버드 May 27. 2022

동남아에선 바이크를

발리에서 시작된 바이크와의 인연


어느덧 3년 차 라이더가 되었다.

여러 가지 입문 계기가 있었지만, 바이크에 대한 거리감을 확 줄여준 건 6년 전 발리 여행이었다.

어느 동남아 국가가 그렇듯 발리도 스쿠터가 많았고, 대도시가 아니라 그런지 스쿠터를 빌리는 여행자도 많았다. 전혀 바이크 경력이 없던 우리도 스쿠터를 빌려 보기로 했다. 일주일 정도 발리에 머물 계획이여서, 우붓에서 바이크를 빌리기로 했다. 여행자들이 멀어서 가기 어려워 하는 발리 북서쪽 스노쿨링 포인트인 '멘장안'을 갔다가 꾸따, 울루와뚜를 거쳐 우붓으로 돌아와 반납하기로 했다. 바이크 타던 친구가 자전거만 탈 수 있으면 스쿠터도 탈 수 있다며 타는 법을 알려주겠다고 했다. 여행을 같이 가기로 한 친구는 떠나기 전 미리 급하게 짧은 레슨을 받았고, 나는 뒤에 탈 생각으로 바이크 타는 법을 배우지 못 한 채 발리로 떠났다.


우붓에서 며칠 동안 지내면서 뜨라가와자강 래프팅도 하고, 인생에서 기억에 남을 아궁산도 다녀오고, 논뷰가 보이는 마사지 샵에서 마사지도 받은 뒤, 마침내 바이크를 빌려 배낭을 메고 낀따마니 지역으로 향했다. 택트를 닮은 작은 스쿠터였다. 길을 나서 보니 산유국 답게 한국에서는 상상도 못할 작은 주유소들이 곳곳에 있었고, 슈퍼에서 페트병에 휘발유를 담아서 파는 곳도 많았다. 우리가 가야 할 길은 꽤 높이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지형이었다. 바뚜르 산과 호수의 웅장함에 놀라고, 현지 남자아이들이 팬티도 안 입고 놀고 있는 평화로운 동네 바다에서 쉬기도 했다. 여행자들은 잘 가지 않는 북쪽 도시인 싱아라자의 시장도 둘러보았다. 하루 종일 바이크를 타고 달려, 밤이 되어서야 멘장안에 도착했다.

작은 주유소, 아주머니가 주유를 해주시고 계신다
바뚜르 호수를 보면서 먹는 나시고랭, 헬멧이 내팽개쳐져 있다

다음날 아침에 원숭이를 구경하다가, 친구가 바이크 타는 법을 가르쳐 주겠다 했다. 혼자 타는 게 무서워서, 몸무게 차이가 많이 나는 친구를 뒤에 태우고 출발했다. 안 그래도 무섭고 균형도 잘 못 잡는 초보인데, 뒤에 무거운 사람까지 태우다니. 결국 당연히 슬립해버렸다. (바이크를 탄채로 넘어졌다) 내 첫 슬립이었다. 나는 심하게 다치지 않았지만, 친구가 좀 심하게 다쳤다. 이 때의 트라우마는 제주도까지 이어져, 우도 대여점의 아저씨가 얼 타는 내 모습을 보고 바이크를 빌려주지 않으셨다. 결국 발리에서 운전대를 잡아보지 못했다.

하지만 슬립이 그날의 최악이 아니었다. 멘장안에서 신나게 니모와 수영을 하고 섬에서 사슴까지 만나고 나서, 꾸따로 장거리 이동을 해야 하는데 비가 왔다. 심지어 아주 많이. 바이크 경력 하루인 친구와 나는 이미 호텔 예약을 해놨기 때문에 출발을 해야만 했다. 그 숙소가 우리가 머물렀던 숙소 중 가장 비쌌다. 지금은 비 오는 날 바이크는 절대 타지 않는다. 그때는 얼마나 위험한지 정말 몰라서 가능했던 일이었다. 목숨을 걸고 빗길을 달린 것이다.

원래 텐덤을 하면 아무 생각 없이 주변 구경을 더 잘 할 수 있지만, 비가 많이 와서 운전하는 친구가 폰 내비게이션을 볼 수 없었다. 뒤에 탄 채로 계속 길을 알려줘야 했다. 그날은 거의 같이 운전을 한 셈이었다. 한국에서 사간 비닐 우비는 거센 비를 이겨낼 수 없어서, 작은 슈퍼에서 현지인들이 입는 두꺼운 판초 우의를 샀다. 새로산 비옷은 찐 라이더용이었기 때문에 바이크를 타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고, 앞뒤로 안전하게 반사판까지 달려 있었다. 최고의 비옷이었다. 그 비옷은 결국 나와 산티아고 순례길까지 함께 하게 된다. 버려야 했을 때 비옷에 담긴 추억들 때문에 많이 아쉬웠다. 배수가 잘되지 않는지 엄청난 웅덩이를 지나고, 어마어마한 교통체증까지 겪으면서 해가 지고 나서야 꾸따에 도착했다. 그날 밤 티본스테이크를 먹었는데, 말도 안 되는 저렴한 가격도 충격적이었지만, 너무 맛있었다.

까미노 용서의 언덕에서 입고 있었던 발리 라이더 비옷
정말 맛있었던 T본 스테이크

그 모든 고생에도 불구하고 발리 여행에서 바이크의 속도감을, 바이크를 타는 감각을 제대로 느꼈다. 빗길이여서 더 그랬겠지만, 차보다 느린 속도인데 얼마나 빠르게 느껴지던지. 솔직히 고생보다 즐거움이 더 컸다. 그렇게 바이크에 대한 거리감을 줄인 후, 베트남에 혼자 여행을 갔다. 우버앱을 켰을 때 바이크 택시와 차 택시가 같이 나오면서 가격 표시가 되었는데, 혼자인 덕에 상대적으로 저렴한 바이크 택시를 많이 이용했다. 그러는 동안 아주 탠덤 전문가가 되어서, 바이크가 너무 편안했다.

내가 바이크와 친밀해진 계기는 발리와 베트남 여행 덕이었다.  세계여행을 가게 된다면 빠이에서, 미얀마에서 바이크를  것이다. 동남아에 여행을 간다면,   쯤은 바이크를 타보았으면 좋겠다. 바이크만큼 여행에 적합한, 그곳에 대한 모든 감각이 열리는 수단은 없으니까. 혹은 나처럼 너무 재밌어서 결국 바이크를 계속 타게 될지도 모르니까.

P.S 무엇보다 안전이 제일 중요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겨울 라이더의 일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