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D-8
퇴사가 일주일 남짓 남았다. 3년 반 정도를 일한 첫 직장이었다. 나는 확신을 가지고 '때'를 아는 사람이 부러웠다. 어김없이 나는 '때'를 잘 못 맞춘 것 같다. 조금 더 일찍 그만뒀어야 했는데.
입사할 때 내가 생각한 퇴사할 '때'는 지금이 아니긴 했다. 19년 2월에 입사를 결정하고서 다짐을 했다. 2년 일하고 모은 돈으로 세계여행하기. 21년 3월에 떠나겠다고. 인생이 계획대로 흘러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1년을 채웠을 무렵 그만둘까 흔들렸지만 더 다녀보기로 결정했을 때, 내 인생을 망치러 온 파괴자 코로나가 왔다. 세계여행이라는 꿈은 그 어느 때보다 불가능해 보였고, 코로나가 좀 잠잠해지는 것 같아도 떠나야 할 그 '때'가 언제인지 알 수 없어 근속 기간이 길어져만 갔다.
1년 차부터 날 힘들게 한 사람은 3년 반이 지난 오늘까지도 힘들게 했다. 초반에는 나랑 다른 파트에 있는 저 사람의 눈치를 왜 봐야 하고 왜 비위를 맞춰야 하나 생각했는데, 이렇게 자주 부딪힐 줄 알았으면 그냥 맞출걸 그랬다. 그 사람이 1년 동안 육아 휴직을 간 동안은 걱정이 없었다. 그 사람은 나보다 적어도 5년은 더 일했는데, 남들과 같이 일하는 거에 대해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것 같아 더 대단할 뿐이다. 직장 생활에서 더러운 똥은 피할 수 없고, 참아야 한다는 걸 괴롭게 배웠다. 물론 같은 파트에서도 싸하게 행동하는 사람이 있어서 분통이 터진 적은 있지만, 어느 정도 예의와 대놓고 똥은 아니어서 참을 수 있었다.
대표의 가스라이팅도 만만치 않아서, 잘하면 당연하고 조금이라도 실수를 하면 쥐 잡듯이 잡는 이곳에서, 모두가 서로에게 예민해지는 것 같았다. 이 직업이 나를 이렇게 만드는지, 이 직장이 나를 이렇게 만드는지 헷갈렸다. 마음이 모난 날에는 이 직장의 장점이라고는 바이크를 탈 때 바다가 보이는 예쁜 출퇴근 길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바이크까지 없이 빼곡한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을 했으면 어땠을지 눈앞이 아찔했다.
퇴사 노티스를 할 때 가스라이팅은 극에 달했고, 대표가 나에게 원했던 퇴사 시점까지 후임자를 뽑지 않을 것 같아 남은 사람들만 더 힘들어지게 되었다. 퇴사를 앞둔 지금도 마냥 행복해야 하는데 전혀 행복하지 않다. 곧 퇴사할 인원이 2명이라 다른 사람들의 연차를 소진시키기 위해 최소 인원으로 돌아가고 있는데, 마지막까지 코로나에 걸려 남들의 연차가 잘리고 안 그래도 없는 인원이 더 없어 질까 봐 노심초사하며 다니고 있다. 날카로워진 나는 결국 이 문제로 가까운 이와 다투기도 했다. 대표의 가스라이팅은 코로나에 더 최악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언제 이 직장을 그만둬야 할지 감을 못 잡고 있었다. 퇴사할 '때'도 내가 생각해 낸 것은 아니었다. 퇴사를 못했다면 이 버틸만한 지옥을 버티며 더 예민해졌거나, 다행히 튕겨져 나갔을 수도 있겠지. 어쨌든 다행히 나는 이곳을 떠난다. 퇴사를 시켜 줄 수 없다던 대표와의 찝찝한 마무리를 남겨두고. 아무도 나에게 수고했다고 말해줄 것 같지 않지만, 나는 내가 열심히 했다는 것을 안다. 다음엔 여기가 아닌, 더 좋은 환경에서 더 열심히 일 할 것이다. 경제적 자유를 찾아 일을 안 할 수 있다면 더 좋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