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버드나무 May 01. 2020

작가가 된 이야기

나는 언제부터 글을 좋아했을까. 사람은 각자 고유의 인격과 개성이 있으므로 ‘평범한’ 이란 수식어가 어울리지 않지만, 특별할 것 없다는 면에서 나는 그 ‘평범한’ 학생이었다. 글쓰기에 처음 흥미를 느낀 것은 중학교 2학년 때. 한글날이라 누구든 꼭 한편은 써내야 했던 백일장에서다. 친구들 대부분은 가장 빨리 끝낼 수 있는 시를 썼다. 책을 좋아하고 글쓰기를 좋아하는 아이들은 짧은 수필을 써냈었다. 그때 나는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소설을 썼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저 웃긴, 말도 안 되는, '평소 하지 않던 색다른 장난'으로 쓰려고 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시작된 생에 첫 소설 쓰기는, 불량한 10대 아이의 이야기를 다룬 생각보다 잘 만들어진 글이 됐다. 그 글은 1년에 한 번 졸업시즌에 출간되어 학생들에게 나눠주는 학급문집에 실렸다. 당시 국어 선생님이 찾아와 내게 물었었다. “이거 실화니?” 그때 이후로 가슴속에 글에 대한 자신감과 흥미가 생겼다.


그러나 대학 진학에 대한 걱정으로 글을 쓰겠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저 하나의 취미 정도였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작가의 꿈은 스물여덟, 취업준비를 하던 중 불현듯 찾아왔다. 더 어릴 때, 시간과 가능성이 더 많을 때는 하지 못했던 생각을 취업준비를 하면서 했다. 내가 진짜 하고 싶고, 좋아하고 재밌어하는 일은 무엇일까? 생각하면서 떠 올렸던 글쓰기, 작가에 대한 꿈이었다.


중학교 2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홀로 자녀들을 키우시며 힘들게 살아오셨다. 한 푼 쓴 적도 없는 큰돈을 갚아야 했다. 힘든 나날을 보내던 중 어머니가 운영하시던 동네의 조그마한 슈퍼마켓에 프랜차이즈 편의점 담장자가 찾아와 아주 좋은 조건으로 편의점을 해 보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이 편의점은 그간 고생에 대한 신의 격려였을까, 장사는 나날이 잘 됐고 빚도 어느 정도 갚아가면서 더 이상 가난하지 않은 생활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홀로 고생하셨던 어머니의 건강이 점점 나빠졌다. 상황이 그렇게 흘러갔다. 글쓰기는, 말하자면 내 인생의 적절한 타협점이었다. 어머니를 도와 가게를 운영하면서 돈을 벌고, 남는 시간에 글을 써보자고 생각했다. 하고 싶었던 일(글쓰기)과 돈(가게), 어머니의 건강까지 챙길 수 있는 1석 3조의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막상 일을 시작하니 생각하던 ‘미래’와 너무 다른 삶이 기다리고 있었다. 최저시급이 올랐고, 장사가 잘 되니 경쟁업체가 우리 가게 주변에 생겨 벌이도 전과 같지 않았다. 또 집집마다 아픈 손가락이 있다고 했던가. 철없는 누나에게 들어가는 금전적 정신적 지출도 만만치 않았다. 지출을 줄이기 위해 알바를 쓰는 시간을 줄였다. 자연스럽게 내가 일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잠자는 시간 말고는 거의 일만 했다. 분명 열심히는 사는데 내 삶은 정체돼 있었다. 아니 오히려 뒷걸음질치고 있었다. 일 하는 만큼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아니고, 글쓰기와 관련된 어떤 성과물도 낼 수 없었다. 계획했던 미래는 어디에도 없었다. 내 인생은 나를 위해 살아지지 않았다. 내가 살고 있는 이 인생의 주인은 내가 아니었다.


우울증이 찾아왔다. 삶에 의욕도 없었다. 더 이상 이렇게 살기 싫었다. 아니 이런 삶을 지속할 자신이 없었다. 어디든 떠나고 싶었다. 내가 필요 없는 세상에서 나를 위해 며칠만이라도 살아보고 싶었다. 정말로 버티지 못할 만큼 버티다가 힘들게 엄마에게 말했다. 일하면서 조금씩 모았던 돈이 있는데, 어디든 가서 쉬다 오고 싶다고. 엄마는 가게에 매여 있는 나를 보며 항상 안타깝고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계셨다. 그래서인지 엄마는 조금의 고민도 없이 흔쾌히 다녀오라고 하셨다. 눈물이 났다. 어머니는 평생을 나와 같은 감정과 힘듦으로 가족을 위해 살아오셨을 텐데. 엄마는 그런 삶을 참으며 오히려 나를 배려하고 있었다. 나는 도망치듯 말했지만 엄마는 떳떳하게 나를 보내주었다. 그렇게 3주간의 생각 많은 여행을 다녀왔다.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 내가 살아가는 환경은 바뀌지 않았다. 내가 살아가는 세상은 그대로였다. 여전히 일이 많았고 돈은 신중하게 다루어야 했다. 다만, 환경은 바뀌지 않았지만 그 삶을 살아가는 나는 조금 바뀌었다. 나는 여행지에 조급함을 두고 왔다. 대신 ‘지금 당장이 아니어도 괜찮다’는 마음을 가지고 돌아왔다. 나는 그간, 목적이 뚜렷했던 만큼 그 목적에 충실한 삶을 살지 못해 힘들었었다. 그래서 조금 돌아가기로 했다. 그러니 보이는 것들, 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들이 많았다. 빚도 빚이지만 조금은 나를 위해 돈을 썼다. 또 운동을 좋아해 축구와 배구 동호회를 들었다. 글쓰기도 분명 이런 취미처럼 좋아하는 일이었다. 더 이상 미래를 재촉하고 삶을 얽매는 목적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 일단은 취미처럼 하기로 했다. 그렇게 찾은 여유로운 삶은, 생각지도 못했던 작가로서의 출발을 선물했다. 추억거리로 곱씹을까 하여 3주간 여행 중 썼던 일기를, 여행이 끝나고 한참이 지나서 더 자세히 썼다. 부담이 아니었다. 회상 자체만으로도 즐거운 일이었다. 쓰다 보니 이 글은 누군가에게 자랑할 만큼 잘 쓴 글은 아니지만, 적당히 긴 글이 되어 나의 첫 책으로 출간됐다. 마흔, 쉰은 돼야 작가라는 타이틀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했던 순간이 생각보다 일찍, 갑자기 찾아왔다.


그 갑작스러운 출발엔 참 많은 것들이 녹아 있었다. 언젠가 인생의 중요한 순간에 쓰일 거라 생각하고 모아두었던 돈이 있었고, 떠날 용기와 어머니의 사랑이 있었다. 무엇보다 출발을 알린 책의 소재는 다름 아닌 나의 ‘인생’이었다. 힘들었고, 무모했고, 즐거웠던 삶이었다. ‘시작이 반’. 시작이 과정의 반이나 차지하는 이유는 시작하는 순간에 녹아 있는 삶을 위한 삶이 있기 때문이리라.

작가의 이전글 비처럼 음악처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