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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드나무 May 10. 2020

나의 공간

독립에 관한 생각

혼자 자취를 할 때 삶의 패턴은 가족과 함께 지내는 집에서 지낼 때와 다르다. 생활 방식 자체가 달라진다. 그 생활방식의 차이는 내가 활용할 수 있는 어떤 공간에 관한 문제와 관련이 있다. 혼자 사용하는 공간. 내 공간에서는 나름 나는 체계적인 편이다. 반면에 변명같이 들릴지는 몰라도 누군가와 공유하기 시작하면 그 공간은 게으름을 방치하는 곳, 휴식을 취하는 곳 이상의 의미를 가지기가 힘들어진다. 자취를 할 때는 의도하진 않았지만 자취방을 글을 쓰기 최적화된 곳으로 만들어가고 있었다. 어디 한번 외출하려면 돈도 들고 이것저것 부산스럽게 챙겨야 할 것이 많기 때문에 웬만하면 집에 있으려고 했다. 자취방은 많은 기능을 소화해 내야 했다. 글을 쓸 때는 분위기 좋은 작업공간이 돼야 했고, 밥을 먹을 땐 멋진 식당이 돼야 했다. 잠을 잘 때는 은은하게 빛나는 조명이 있으면 좋을 것 같았다. 친구들이 놀러 올 때 필요한 여분의 침구류나 같이 영화도 볼 수 있는 빔도 구비했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자취 생활의 목적이자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했던 글쓰기와 독서에 맞춰 그 공간은 변해가고 있었다. 그리고 고향집에서 내 방은 휴식공간이었다. 일을 오래, 많이 했기 때문에 퇴근 후엔 휴식이 필요했다. 처음엔, 자취를 하고 돌아와서 한동안은 방에 이것저것 글을 쓰거나 독서를 할 수 있는 도구들을 많이 가져다 놨었다. 앉으면 글이 잘 읽히는 소파, 은은하지만 글을 읽기에 적당히 밝은 조명, 앉았을 때 불편하지 않은 의자, 적당한 높이의 책상.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일과 휴식. 꿈을 뒤로한 채 살아가는 지루하고 우울한 삶을 살지만, 힘든 일을 하면서 짬을 내 글을 쓰기는 또 싫었다. 이 우울하고 지루한 삶에 활력을 주기 위해 방에 (사용한 적은 몇 번 없지만) 통기타와 베이스 기타, 바이올린이 들어왔다. 악보를 놓을 조그마한 책상도 함께. 한 번씩 노래하거나 연주하는 영상을 찍기 위해 작은 삼각대도 가져다 놨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방에서 사라졌다. 마침내 내 방엔 두툼한 매트리스와 계절에 따라 바뀌는 이불, 푹신한 배게 밖에 남지 않았다. 

삶의 양식이라고 해야 할까? 어쨌든 내가 살아가면서 하는 주된 활동과 필요한 목적에 맞춰 내 방, 나만의 공간을 꾸며간다. 그리고 내 방의 변화를 감지하기 시작하면서 글의 초반부에 말했던 ‘동거’ 여부가 나에게 아주 중요한 요소임을 알게 됐다. 나 혼자 살아가는 공간에서는 주도적으로 그 공간의 모든 것을 신경 쓰면서 나에게 맞추려 하지만, 동거인이 있을 때는 그 공간을 아주 제한적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자취방은 단칸이긴 하지만 화장실, 싱크대, 신발장, 방의 구조를 나에게 맞춰 주도적으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것이 좋았다. 반면에 기숙사를 사용할 때나 집에서 가족과 함께 지낼 때는 그 공간이 존재하는 절대적 목적 말고는 무엇도 바꾸려 하지 않았다. 기숙사는 정말로 잠만 자는 공간이었다. 공부도 게임도 기타나 그림과 같은 취미도 그곳에서 하지 않았다. 책상이 있었고 룸메이트가 기숙사에 있는 시간이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 공간은 딱 잠만 자는 공간이었다. 공부는 도서관에서 했고 취미활동은 동아리방에서 했다. 집도 다르지 않았다. 물론 룸메이트 보다 당연히 훨씬 더 편한 가족과 있었기 때문에 간간히 기타도 치고 글도 쓰고 책도 읽었지만 내 방이나 집을 그런 활동에 맞게 꾸미거나 바꾸진 않았다.

나의 기분과 흥미, 취향, 의지에 따라 다른 사람을 신경 쓰지 않고 공간을 바꿀 수 있느냐의 문제는, 나의 경우엔 무언가를 향한 ‘의지’와 큰 연관이 있음을 알게 됐다. 어떤 공간을 주도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 삶에 의욕과 어떤 것에 관한 열정을 가져다준다. 아마 그 의지와 열정은 책임감에서 나온다. 비록 내가 바꿔 놓은 그 공간을 적극적으로 사용하지 않더라도, 내 공간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 내 삶은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지게 된다. 물론 그것은 단지 상징적인 의미로써 나에게 책임감을 부여할지 몰라도, 그 책임감은, 그 공간이 부여하는 의미는 이젠 정말 나의 삶은 누구도 책임져 주지 않고 스스로 나의 모든 것을 책임지며 살아가야 한다는 실체가 되는 것이다. 때문에 내가 그 공간을 직접적으로 사용하지 않더라도 나의 인생의 무언가를 위해 하는 생각과 행동에 조금 더 무게를 지우고 살아가게 되는 것 같다. 나의 공간. 독립을 원하는 것은, 아마 그 이후에 펼쳐지는 삶이 또 다른 삶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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