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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요아 Mar 27. 2021

누구의 무엇보다
무엇의 누구


210327_기획안_ver2_요아
210328_피드백 반영본_요아


이름이 주는 뽕에 취했었다. 혁오의 등장으로 홍대병이라는 단어가 스멀스멀 나타날 무렵이었나, 진정한 예술은 홍대 어느 인디 펍이 아니라 영화 「더 랍스터」의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이 아니겠냐는 혼잣말을 중얼댔다. 실존 인물 중 마음에 드는 한 명을 골라 롤 모델이라 칭한 뒤 그 옆에 이유를 적는 시간처럼 언제나 인물의 이름에 주목했다. 드라마 작가를 꿈꿀 때만 해도 「신사의 품격」 같은 드라마를 쓰겠다는 말 대신 "김은숙, 김은희 작가처럼 될 거야"라는 얘기를 더 했다.


직장 생활도 마찬가지였다. 기획안을 짜거나 섭외 피피티를 만들 때, 제목에는 늘 꼬리표처럼 이름이 뒤따랐다. 이건 제가 한 겁니다, 이것도 제가 한 거고요. 그래야만 전쟁터라는 회사에 간신히 안착하겠다는 기분이 들어서였다.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19로 많은 이들이 직장을 잃자, 비대면 업무와 이름만으로 브랜드가 된 이들의 사례가 쏟아진다. 굶지 않기 위해 브랜딩 마케터를 하는 나로서는 반가운 소식이지만, 작가로서는 괜스레 안타깝다. 모두가 자신을 포장하고 닦고 알맹이가 없다고 스스로 느낄 때면 좌절하므로. 시간이 조금 흐른 후 회복할 때가 되면 조그만 알맹이를 기어코 찾아내 예쁘게 포장한다. 모두 선물 가게 주인 같다.


요아, 요아. 제목을 붙이는 나와 달리 상사는 이름을 한 번도 적지 않았다. 언뜻 보면 누가 했는지 모르는 법이었으나 상사는 상관없다는 듯 한결같이 이름을 뺐다. 그러다 함께 일한 지 몇 주가 되었고, 파일을 열고 첫 장만 보면 매번 이름을 빼는 그 선배가 했다는 확신이 들었다. 깔끔한 요점, 간결한 팩트 체크, 거래처에 전달하는 문서가 아님에도 읽는 이를 배려하는 섬세함. 그때부터 이름보다 작품이 먼저인 사람이 되고 싶다고 다짐했다. 특이한 이름으로 태어났으나 더 특이한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고.


그러니 한 가지 비밀을 터놓자면, 에세이를 포함해 쓴 모든 글은 나의 이름을 지우고도 괜찮은 글이라는 기분이 들도록 퇴고 때마다 모르는 이가 쓴 글이라 여기며 읽는다. 그래도 이름이 주는 뽕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 때면 일부러 작가의 안티인 편집자가 어쩔 수 없이 일하며 보는 글이라는 입장으로 한 자 한 자를 뜯는다.


부쩍 에세이를 다룬 비싼 강의나 작법에 관한 인플루언서들의 조언이 늘었다. 한 단락에 다섯 문장이 채 넘지 않는 에세이를 쓴 이들이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얘기가 못 미덥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내'가 멋져 보여서인지, 혹은 '멋진 글과 멋진 그림'을 그리고 싶은 건지 한 번만 더 고려해보았으면 좋겠다. 절박함에 눈이 멀어 돈과 시간을 잃는 친구들이 너무 많이 보여서 2개월 간 마음에 품던 말을 슬며시 꺼냈다.


예 …… 그렇습니다. 저는 꼰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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