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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요아 Apr 07. 2021

분명 바다 뷰인데 왜 답답하지?


월세부터 반전세,

옥탑방에서 로열층으로 불리는 3층까지.



여러 곳을 살았다. 보증금 없는 좁은 방에서 1억이 넘는 원룸으로 옮기기도 했는데, 모든 집을 아우르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뷰가 엉망에 진창을 거듭한다는 것.


그러니 이사를 준비할 때마다 '아름다우면서 어둑한 암막 커튼'을 찾는 데 시간을 들였다. 진한 남색이나 갈색은 방을 더 좁아 보이게 하니 베이지와 아이보리 계열이면서 깜깜한 암막 커튼으로. 흰색과 가까워질수록 암막 기능은 낮아졌으니 화가 쌓였다. 뭘 이 정도로 화가 나느냐 싶겠지만, 답답하지 않은 커다란 방으로 갈 돈이 없으니 암막 커튼만 바라보고 있는 것 아닌가 싶어 그런 궁핍함에 울적했다.


도로변 뷰, 맞은편 집 뷰, 매연이 자욱한 옥탑 뷰.


뷰를 포기하면 집이 넓어지니 다음 집은 꼭 초록이 가득한 집으로 가겠다 각오해도, 막상 발품을 팔면 마음속 우선순위는 집의 면적이 압도적 승리였다. 30평과 35평의 차이보다 5평과 7평의 차이가 더 컸다.


감염병으로 부득이 귀향한 요즘, 제주 생활이 그나마 기대되는 이유는 어쩌면 서울에서는 꿈꿔보지도 못할 ‘물 뷰’를 누릴 수 있겠다는 기쁨이었다. 바다를 볼 때마다 갇힌 기분에 숨이 막히는 트라우마도 충격 요법으로 치료할 수 있으니 여러 방면으로 좋은 선택처럼 보였다.


원룸을 기준으로 제주는 서울보다 집값이 훨씬 저렴한 덕분에 비상금 통장을 깨지 않고 입주할 만한 여러 후보를 쉽게 찾았다. 그중 항만과 가까운, 새벽녘의 연푸른 하늘과 석양이 질 때 보이는 붉은 하늘을 1열에서 관람할 수 있는 원룸 빌라를 찾았다. 집을 보기도 전에 이미 그 집에 살고 있다고 생각했고, 원룸 구조도를 찍어 가구를 어떻게 배치해야 할지 고민도 다 해두었다. 엄마는 집이 너무 외진 곳에 있어 치안이 걱정된다 했지만, 지금 내게 가장 중요한 건 숨을 고르게 쉬는 일이었으므로 치안이나 비행기의 길이 겹쳐 들리는 비행 소리 같은 건 고려 대상에 없었다.


공인중개사와 만나기로 한 시간이 가까워지자 마음이 들떴다. 30분 전, 중개인에게 다 와간다고 말하니 중개인은 갑자기 급한 사정이 생겼다며 문자로 비밀번호를 보냈다. 초보 독립러라면 너무하다고 징징거렸겠으나 집을 한두 번 본 것도 아니니 마음 편히 둘러보겠다며 기뻐했다. 버스가 잘 다니지 않아 정류장에서 내려 2km를 꼬박 걸어 도착한 바다 근처 빌라, 분주한 어업 종사자분 사이로 걸어 다다른 빌라에서 나는 당혹스러움을 느꼈다.


  숨이 막혔다.


까마득하게 넓은 망망대해를 보니, 내가 서 있는 이 방은 일곱 평이더라도 좁디좁은 공간처럼 느껴졌다. 보기 힘든 뷰에 감동받은 건 5분 남짓뿐, 얼른 이 집을 나가 시끌벅적한 시내로 돌아가고 싶었다. 폐소 공포증도 많이 나았으니 바다만 보면 답답한 마음도 해소될 줄 알았는데, 그와는 정반대의 감정을 겪으며 혼란스러운 마음으로 다시 2km를 걸어 정류장에서 한 시간 배차 간격의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무엇이 문제일까.


일기장을 펴고 해답 없는 질문에 여러 답안을 지었다. 고민을 끝으로 심정과 가장 가까운 답이 나왔다. 나는…… 바다보다 산을 좋아하는구나!



광고 아님



향초 가게에 들를 때마다 바다에서 풍기는 짭짤한 소금 향을 골랐다. 초록색보다는 파란색이 더 좋다. 굳이 고른다면 불보다는 물이 낫고, 확실한 건 등산보다 물놀이를 선호한다. 비록 수영은 못하더라도.


그래서 당연히 바다를 좋아하는 줄 알았건만 침대에 누워 바다를 보니 오션뷰는 호텔에서만 가끔 누려도 충분하겠다는 마음과 싸우느라 혼났다. 정말 이 침대에 계속 눕는다고 숨이 잘 쉬어지겠어?


놀 거리가 없어 심심한 어린 시절, 우리는 무엇이 좋냐는 질문으로 시간을 때웠다. “산이 좋아, 바다가 좋아?”는 “짜장면이 좋아, 짬뽕이 좋아?”와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만큼이나 당연한 질문이었다. “둘 다 안 당기지만 그나마 바다…”라 답하던 꼬맹이는 스물여섯에야 알았다. 나 말이야, 산을 좋아하고 있더라고!


그 후 아침마다 수목원을 걷는다. 현장체험학습 때만 꾸역꾸역 가던 숲을 어느새 좋아하게 되었다. 좋아하고 싶어서 좋아하는 게 아니라,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어떻게 좋아하게 되었다. 좋아한다 여긴 바다는 사실 가까이 오래 보니 좋아하는 게 아니었다. 이런 게 말랑말랑한 어른이 되는 과정인 걸까. 가장 친하다 생각하는 나의 취향도 제대로 알 수 없으니 누군가를 쉽게 재단하고 평가하는 건 더더욱 말이 안 되는 일.


최근에 "당신은 참 단단해요. 그만큼 쉽게 깨질까 봐 걱정이에요."라는 말을 들었다. 떨어져도 깨지지 않고 다시 튀어 오르는 말랑말랑한 탱탱볼 같은 어른이 될 수 있는지 매일 궁리했는데 오션뷰에서 답을 찾았다.




"지웅아, 민트초코 라떼 만들어 봤어. 마셔봐!"
"누나, 나는 내가 민트초코를 싫어하는 줄 알았다?"
"오! 근데?"
"근데 진짜 싫어하네."

……아!
카누 민트초코라떼 '는' 광고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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