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누가 잘 쓰는 걸까
고수리 작가님을 뵈었다. 고수리 작가님은 〈인간극장〉의 작가님이셨고, 청소년 소설로 등단하셨으며 책을 세 권이나 내신 에세이스트에 틈틈이 애니메이션 극본을 쓰시는 분이다. 작가님은 첫 책을 내고 초조해하는 내게 "첫 책을 낸 뒤가 가장 조급해지는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내가 초조한 이유는 잘 쓰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다. 긴 호흡의 글이든, 한 숨에 모든 단어를 읽을 수 있는 초단편의 글이든, 어른의 몸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의 마음을 이리저리 헤집어놓는 동화를 만나든, 모두 숨이 막힐 만큼 질투가 나서다. 그뿐만 아니라 존경받는 의사부터 변호사까지 다양한 직종의 분들이 전문 지식을 가져오면 구멍을 집으로 삼고 싶을 만큼 작아진다. 내가 아는 전문지식이라곤 내가 슬랙스를 좋아하고 청바지를 싫어한다는 특징뿐인 것만 같다.
대학에 다니며 많은 작가님을 뵈었다. 백수린 작가님께 소설을 배웠고, 동화에서는 이은용 작가님께 두 번의 수업을 들었으며, 시인이자 소설가인 이장욱 교수님과 그 외에 등단하신 숱한 선배들에게 첨삭을 받았다. 모두들 몇 권의 책을 냈으며 많은 팬을 거느리는 분들이지만 다들 한 번쯤은 "잘 쓰는 사람이 너무 많다"는 말을 하셨다. 소설은 잘 쓰는 사람이 너무 많은 레드 오션이니 다른 분야로 가라는 작가님도 계셨고, 내 글을 보면 어떤 소설가와 어떤 소설가의 글이 떠오르니 다른 문체로 바꿔보라는 선생님도 계셨다. 나는 그분들의 이름을 처음 듣는데, 내가 어떻게 그분들의 문체와 비슷해졌을까 고민하며 세상에는 글이 너무 많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각종 문학상의 심사위원으로까지 서는 분들께서 "잘 쓰는 사람이 너무 많다"고 말하면 도대체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위대한 작가들이 있는지 까마득해졌다. 자기 의심과 울적함이 따라오는 건 덤이다.
내일이면 밀리의 서재와 브런치북이 연계된 출판 프로젝트의 최종 당선자가 발표된다. 솔직히 스무 명 안에 들어가지 않겠냐는 기대감은 아주 조금 가지고 있었지만, 오늘 다시 읽어보니 브런치팀은 미리 당선자와 전자책 출간 계약과 관련된 얘기를 나눠야 하므로 미리 연락이 간다는 글이 작게 쓰여 있었다. 내 메일은 (광고) 투성이로 깔끔했다. 다가오는 유월에는 윌라와 브런치북의 컬래버레이션 공모전이 나오고, 올 말에는 늘 그랬듯 여러 거대 출판사와 브런치가 합작해 열리는 정기 브런치북 출간 프로젝트가 열린다. 나는 좌절을 딛고 다시 지원하고, 이번처럼 또 좌절할지 모르겠다. 당선된 작품을 보며 "아, 세상에는 글 잘 쓰는 사람이 너무 많군……" 하고 질투심을 바글바글 끌어안은 채 말이다.
글 잘 쓰는 사람이 글 잘 쓰는 사람이 너무 많다고 얘기하면, 도대체 글 잘 쓴다고 자부하는 사람은 어디 있나 싶어진다. 우리는 너무 일찍 겸손을 배웠고 그 겸손으로 인성이 다져진다는 정보를 교과서 밖에서 쉽게 익혔다. 칭찬을 받아도 "아니에요", "제가 뭘……", "아유, 그 정도 가지고"로 답하는 게 미덕이자 기본값으로 여겨진다. 그러니 스스로 "나 글 잘 써!"라고 말하는 사람이 적은 것 아닐까. 이상하지, 글 잘 쓰는 사람은 글 잘 쓰는 사람이 너무 많다고 하고, '너무 많은 글 잘 쓰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보고 "글 잘 쓴다"라고 말하니 누가누가 잘 쓰는지 대결하는 게임 같다.
그래, 누가 누가 잘 쓰는 걸까? 그냥 우리 모두 잘 쓴다고 하자. 다 엄청 엄청 멋지고 잘 쓰는 사람인데 아무도 모른다고. 그러니 "글이요? 제가 잘 쓴다니, 말도 안 돼요."라 말하는 건 "맞아요, 저 엄청 잘 써요! 제게 말해주신 선생님도 엄청 잘 쓰시고요!"의 뜻으로 퉁치자. 물론, "글 잘 읽고 있어요. 엄청 잘 쓰세요!"도 같은 의미로. 자, 그럼 지금부터 시작한다.
저요? 제가 잘 쓴다고요?
= 제가 좀 잘 쓰죠.
(씨익 ッ)
네! 엄청 잘 쓰세요!
= 나 말이야. 물론 그대도.
(씨익 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