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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요아 Sep 16. 2021

제주 한복판에서 들리는 기차 소리


  심리 부검이 다가온다.


  심리 부검은 자살자가 생전에 어떤 일을 했는지, 어떤 글과 말을 남겼는지 조사해 비슷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예방책을 마련하는 인터뷰다. 예방 대책이 제대로 마련되었다면, 아니 애초에 사회적 기반이 튼튼히 마련되었다면 이토록 많은 분들이 세상을 떠나지는 않을 텐데, 생각하다 말았다. 기력이 없을 때는 비판적인 생각을 최대한 멀리 하자는 게 목표다.


  한 차례 심리 부검을 마친 유족 분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만족스럽다는 분이 없었다. 심지어 심리상담 선생님까지 꼭 심리 부검을 받아야겠냐는 질문을 했으니 얼마나 사무적이고 이성적인 얘기가 오고 갈지 가늠됐다. 딱딱한 질문과 함께 쏟아지는 잔혹한 기억에 숨이 막혀 부검 중에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는 분도 계셨다. 나는 왠지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심리 부검에서 들을 얘기보다 잔혹한 얘기를 더 많이 들었다.


  떠나고 남겨진 동생의 방은 직접 치웠다. 이사하고 한 번도 가지 못한 집이라 더욱 가야 할 것 같았다. 치워지는 유품과 함께 내 목숨이 서서히 깎이는 기분이 들었다. 꾸준히 먹기로 약속한 약봉지들이 시간을 기다리지 못하고 쌓여 있었다. 경찰은 그 약을 비닐봉지에 담았다. 나는 그냥 맨손으로 잡고 싶은데 고작 삼일 단위로 약은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증거물이 되었다. 진단서가 따로 없어 약에 쓰인 작은 영어와 숫자를 더듬거리며 찾았다. 망상과 환청을 없애는 데 도움이 되는 조현병 약이랬다. 그 약을 먹었는데 동생의 환각과 망상이 나아지지 않았음이 기억났다. 동생은 자신의 수호신과 사랑에 빠졌다고 했다. 장난이라 생각해 무덤덤하게 넘겼는데, 그때 증상이 심각해졌음을 진지하게 고려해야 했다. 만일 주변에 비슷한 경우가 있다면 꼭 그분을 병원으로 데려가기를 바란다.


  언제부턴가 살인마의 수식어로 조현병이 달린다. 범죄를 저질렀는데 심신 미약이 인정되면 처벌을 받지 않거나 면죄가 될 가능성이 높아서다. 개중에는 환청과 환각에 시달리는 진짜 조현병도 있겠지만, 조현병이 아니어도 조현병이라고 주장하는 몇몇 이들 때문에 진짜 조현병에 걸린 사람이 자신의 병명을 밝히기는 쉽지 않다. 마음의 감기라던 우울증도 밝히기를 주저하는 상황에서 조현병을 앓고 있다 직접 말하는 행위는 사회와의 단절을 고하는 행위나 다름없이 여겨질 정도다. 듣는 이로 하여금 나를 해치면 어쩌냐는 걱정에 휩쓸릴 수밖에 없어서다. 사람을 해한 환자들이 떠올라서다. 하지만 정신 장애 환자들이 강력범죄를 저지르는 비율은 0.5% 정도라고 한다. 타해보다는 자신을 해하는 비중이 훨씬 높다.




  "치료 시기를 놓쳤다면 조현증으로 갈 수 있을 뻔했는데, 아직은 아니에요."


  삼십만 원의 거금을 내고 받은 심리 검사에서 이런 답을 들었다. "우유가 다 떨어져서, 혹시 아메리카노 괜찮으세요?"의 덤덤한 말투였는데, 그래서 덩달아 듣는 사람도 아무렇지 않아 지는 멋진 화법이었다. 아, 내가 조현증이 될 수 있겠구나! 다른 세상의 얘기라 여겼던 조현증이 실은 내 세상일 수 있겠구나.


  책 『삐삐 언니는 조울의 사막을 건넜어』에서 이주현 작가님은 뇌의 기분 조절에 문제가 생겼다가 트라우마나 스트레스로 방아쇠를 당겨지는 게 조울병이랬다. 조울증으로 판단받기 전에는 우울증을 앓았다면서. 우울하지 않은 현대인은 없다는 말처럼 지금을 사는 많은 이들이 우울증을 앓는다. 어쩌면 우울증인 줄 알았던 분들이 훗날 조울증으로 밝혀질 수 있다.


  시간 맞춰 꼬박꼬박 챙겨 먹는 게 귀찮아 상의 없이 멋대로 약을 중단하고 난 후의 일이다. 회사에서 회의를 하는 중 갑자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세상이 한순간 음소거가 되고 맞은편에 앉은 동료의 입이 소리 없이 뻐끔뻐끔 움직였다. 당황해 옆을 둘러보자 다른 동료는 턱을 괴고 말하는 사람과 눈을 맞추며 고개를 끄덕였다. 현실실을 부정한 나는 눈을 꽉 감았다. 왼쪽 귀에서 연기를 내뿜고 달릴 준비를 하는 기차 소리가 나고 있었다. "요아 씨, 괜찮으세요?" 눈을 뜨자 다들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네, 그런데…… 혹시 여기 근처에 기차가 있나요?" 어느 한국 소설의 대사 같았다.




  기존에 있는 병도 모자라 조울증까지 얻자 방아쇠로 짚이는 사람을 다시 미워했다. 그러나 과거는 미워하고 탓해도 달라지지 않는다. 용서를 받는대도 찝찝하다. 사과하라 소리친 뒤 받는 사과는 안 받느니만 못하다. 사연을 제치고 지금을 바라봤을 때의 나는 어쨌거나 조울증이라는 병이 있고, 정규직이 싫어 계약직을 자원했고, 사람들을 괴롭히기 싫어 제주로 피한 모습이다. 이사를 가거나 시간을 여행하지 않는 한 선택의 결과는 여전하다.


  언젠가부터 체념이라는 말이 포기와 일맥상통하는 듯해 쓰지 않았지만, 약간의 체념은 일상을 더 치유롭게 만들었다. 라떼가 다 떨어졌을 때 '왜 라떼가 없어? 아니 왜 내가 지금 나한테 행복을 주려고 하는데 세상이 날 막아?'가 아니라, '그러면 아메리카노를 마셔야겠다.'로 말이다. 조금 더 건강해지면 '아메리카노랑 고민했는데 선택이 하나뿐이라니 깔끔하군!'으로 넘어가고.


  제주에 왔네, 첫 책이 2쇄를 못 찍었네, 기차 소리가 들리네, 조울증이라네, 단짝과 다퉜네. 그러면 그냥 거기서 마침표다. 친구와의 사이를 회복하기 위해 고민하고, 병세가 악화되지 않도록 제때 알맞은 약을 먹어야겠지만 적어도 이 상황에 다른 이야기와 생각을 담지 않도록. 좋아하는 상황을 만나면 좋은 거고, 싫은 상황을 만나면 어쩔 수 없는 거고. 딱 그 정도의 적당함을 지니는 연습으로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 나는 내 편이고, 당신은 당신의 편이며 나는 그런 당신을 애정한다. 각자의 든든한 편이 된 우리의 힘을 존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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