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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요아 Aug 03. 2021

일상 사별자의 품


  상담을 시작한 초창기부터 선생님은 언젠가 나와 비슷한 처지의 어떤 선생님을 소개해주겠다고 했다. 아들을 잃은 후 상담학을 공부하며 같은 상황의 유족을 어루만지는 분이었다. 다가오는 일요일은 각자의 사연과 기분을 나누는 유족 자조 모임에 참여할 용의가 있었기에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소설의 한 장면처럼 그날은 아침부터 안개가 꼈다. 센터에 도착하니 우산을 쓰고 허공을 응시하는 분이 보였다. 저분이 오늘 소개받기로 한 선생님이 아닌가 짐작했더니 맞았다. 우리는 어색한 인사를 나누며 텅 빈 건물로 들어섰다.


  그는 앉자마자 입을 떼고는 십 년간 당신이 겪은 일을 세세히 말해주었다. 알고 보니 그의 아들은 신문에 나올 만큼 충격적인 사건으로 세상을 질 만큼 슬픈 이유를 지녔고 내 동생처럼 가족을 진절머리 나게 괴롭히지 않는 선한 사람이었다. 살아있다면 나와 동갑이었을 그의 아들과 비교하면 내 동생은 떠난 시점으로 비교했을 때 그보다 나이도 많고 대학도 두 번이나 다녀왔고 만족스러운 연애도 끝낸 이였다. 타인의 아픔을 발판 삼아 내 아픔을 위로하려 만난 의도는 아니었지만, 그의 사연을 들을수록 점점 슬퍼할 자격을 빼앗긴 기분이 들었다. 틈만 나면 짜증을 내고 돌아서면 차단하던 동생과 만난 적 없는 그의 아들이 자꾸 비교가 되었다. 할 수 있는 말은 "열여덟이면 정말 어리네요. 제 동생은 스물셋이어도 어리다는 소리를 들었는데……"뿐이었다. 조금이나마 위로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지만 정작 내가 위로를 하는 모양새였다.


  동생을 떠나보낸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코로나로 사람을 만나지 못하는 청춘들의 고민을 듣겠다는 취지의 일회성 온라인 모임이 열렸고, 전문 상담사가 진행한다는 소식에 기꺼이 참여했다. 익명으로 사연을 나누고 위로와 응원을 나누는 자리에서 나는 내 동생의 사연을 가져갔다. 사람들은 무거운 표정으로 이야기를 듣더니 카메라에 얼굴을 들이민 채 "그런데 조금 너무하신 거 아닌가요? 자리와 어울리지 않는 사연을 들고 오셔서요. 이런 건 전문 상담사 분한테 말해야 할 정도잖아요."라고 외쳤다. 나머지 이들도 저마다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어쩔 줄 모르는 얼굴로 바닥만 응시하며 얼른 이 시간이 지나기를 기도했다.


  이후 글이 아니면 입을 다물고 사는 내게 유족 선생님과의 만남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설레는 시간이었으나 막상 만나보니 위로가 되지 않았다. 그는 "요아와는 상황이 다르지만, 나는 조울증을 앓고 있어서……"라는 말을 했고 그 순간 마음에 균열이 갔다. 자꾸 앞의 말이 어른거렸다. '나는 너와 다르지만'이라는 말투에서 불행 울타리를 두르던 과거의 내 모습이 겹쳐 보였다. "그…… 저도 조울증을 앓고 있어요." 참던 말이 입 밖으로 새어 나왔다. 그는 당황스러운 표정을 했나, 반갑다는 뜻의 밝은 표정을 했나.


  너는 내 아픔을 알지 못해서, 너는 내 상황을 몰라서, 너는 내 입장이 되어 보지 못해서 그래.


  나는 한 때 그 말을 하루에도 몇 번이고 마음으로 중얼거리는 사람이었고 그 이유로 손을 뻗던 지인을 내팽개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드문드문 열리는 에세이 강의에서는 절대 자기 연민을 품는 사람이 되자고 말했으나 자살 유족이 된 이후로부터 인내심이 끊어졌다. 살며 한 번 겪을까 말까 하는 폭력을 여러 차례 겪은 것도 모자라 동생까지 삶을 등졌으니 세상에서 내가 제일 불쌍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이번 기회에 자기 연민을 단단히 두른 사람을 만나니 어쩌면 이 모습이 내 미래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엿봤다. 상대의 얘기를 듣기보다 내 아픈 얘기를 더 늘어놓는 사람. '우리'라는 아래 이 아픔을 겪지 않은 사람은 평생 나를 이해할 수 없다는 굳은 믿음.


  만남이 끝나고 집으로 가는 길, 예정되어 있던 자조 모임을 취소했다. 더는 울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자살이라는 충격적인 사건을 겪은 유족이 아닌, 사람이라면 응당 겪을 수밖에 없는 주변인을 떠나보낸 일상 사별자로서 남아 있기를 원하는 마음이 컸다. 시간이 흐르면 아무리 건장한 사람도 흙으로 돌아가는 법이다. 그리고 사람이라면 흙으로 돌아간 이를 주변에 한 명 이상은 당연히 보는 법이다. 증조할머니를 보내고 할아버지를 보내고 아빠를 보내고 동생을 보내고 친구를 보내는 식의. 세월이 흐르면 당연히 사랑하는 누군가를 잃는 상황을 겪고도 굳건히 삶을 지속하는 어른처럼, 가끔은 애도하며 슬퍼하다가 일상에서는 작은 것을 보며 행복해하는 그런 이가 되고 싶다는 열망이 생겼다. 자살 유족이 아닌 일상 사별자의 품으로 오니 세상이 한 뼘 더 넓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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