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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요아 Feb 14. 2022

사랑을 받는 것도 연습이 필요해서


지우고 싶은 감정을 꼽으라면 주저 않고 불안이라 답했다. 일어나지 않은 미래를 현실로 데려와 섣부르게 걱정하는 불안이라는 녀석은, 현재에 발 붙이지 못하도록 긴장을 유발하니 얼마나 강력하며 짓궂은지에 대해 한참을 생각하면 모든 일을 걱정하는 범불안장애를 앓는 스스로가 미웠다. 귀엽게 말해서 밉다고 표현했지만, 조금 더 자세히 얘기하면 지긋지긋했다. 그래도 불안은 오랜 사투 끝에 억지로 잡념을 끊어내려 노력하면 조금이나마 잠잠해지는 방법을 터득했는데, 아무리 애써도 도무지 잦아들지 않는 감정이 있었다. 외로움이었다. 근래의 나날은 외로움을 만나는 연속이었다. 엄마, 나 옆에 자도 돼? 라고 베개를 들고 칭얼대던 어린아이에서 벗어났는데 자꾸 사람들에게 곁에 있어 달라고 전화를 걸고 싶어졌다. 나도 모르게 잠에 들기 전까지 수화기를 들고 계속 떠들어주었으면 했다.


대인기피증이 서서히 나아지자 외로움은 한층 더 속도를 높여 빠르게 나를 집어삼켰다. 사람을 만나고 싶은데 제주 친구들은 일자리가 없다며 모두 서울로 향해 만날 이가 없었다. 홀로 남은 방에서 외롭다고 중얼거리니 신기하게 정말 더욱 외로워졌는데, 급기야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많지만 나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는 망상이 들었고 글 쓰는 능력으로 인정받지 못하면 독자님들에게 사랑을 받지 못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독을 잊고자 편 책에서 친구들의 다정한 이야기가 녹아 있으면 괜스레 샘이 났다. 나를 뺀 세상이 모두 풍요롭고 즐겁게 시끌벅적하다는 확신이 들었다. 날이 갈수록 외로움은 한층 더 심해져서 이윽고 다음 책을 쓰더라도 아무도 끝까지 읽지 않을 수 있다는 가능성이 자라났다. 이대로 가만 두면 또 어떤 망상을 할지 겁이 나서 미래로 미루었던 결정에 도전하기로 결심했다. 독자 분을 만나기로. 실물을 접해서 내 글을 읽는 사람이 이렇게 눈앞에 있다는 사실을 똑똑하게 기억하자고.


여정의 목적지는 춘천이었다. 지금 당장 숙박비를 내지 않고, 오 년 뒤 돈이 아닌 무언가로 값을 지불하는 특별한 방침으로 운영되는 첫서재라는 숙소에 머물 기회가 생겨서였는데, 신청서에는 엄청나게 값진 것으로 내겠다는 포부를 내세웠지만 속으로는 과연 오 년 뒤에 내가 글을 쓸 수는 있을까 싶었다. 외로움에 겹쳐 불안까지 짊어지고 도착한 춘천에서 나는 세 분의 독자님들을 만났다. 나를 알게 된 경로는 다양했다. 브런치 메인에 실린 글로 접한 분과 도서관에서 제주 토박이 책을 마주쳐 팬이 되었다는 분, 스타트업에서 일할 당시 적었던 에세이를 보고 브런치까지 넘어오신 팬까지. 서울보다도 먼 지역에서 춘천까지 와주신 독자님들은 하나같이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고 말씀하셨다. 웃으면서 그러셨냐고 대답했지만 속으로는 바들바들 떨었다. 나야말로 긴장되고 설레어서 밤을 꼬박 새웠기 때문이었다.


독자님들은 나를 보고 스스럼없이 칭찬을 쏟아내셨다. 그들이 품은 칭찬 우물의 깊이가 가늠되지 않을 만큼 칭찬이라는 물을 푸고 또 푸며 건넸다. 마음을 글로 유려하게 표현하세요, 나이답지 않게 성숙해 놀랐어요, 살아 주셔서 고마워요, 오랫동안 글을 써주세요, 여름에 나올 책을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어요. 칭찬을 들으면 어깨가 펴져야 하는데 나는 자꾸만 등을 굽혔다. 칭찬을 들을수록 사기꾼이 된 기분이었다. 춘천에 있을 테니 보고 싶으면 나를 찾아오라는 당돌함이 우습게 느껴졌다. 나는 왕복 여섯 시간이 넘는 거리를 달려와 만날 만큼 대단한 사람이 아닌데, 독자님들을 뵈니 대단한 사람이라고 내세워야 할 것 같았다. 그래야 그들이 찾아온 먼 발걸음이 헛되지 않으리라 여겼다. 그들을 실망시키지 않게 하고자 춘천 숙소에 썼던 신청서처럼 확실하지 않은 원대한 야망을 내보였다. 넷플릭스까지 진출하고 싶다던 솔직한 욕망이 독자님 앞에서 낱낱이 해부되었다.


네 시간 반의 대화를 끝나고 일어서던 길, 춘천의 서재지기님은 내게 그런 말을 하셨다. "요아 님은 사랑받을 기질이 충분한데, 사랑받을 기회가 충분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들은 뒤 나는 뭐라고 답했던가. 채워도 채워졌다는 기분이 들지 않는 애정 결핍의 근원을 궁리했던가. 머릿속에서 시간 여행을 하다가 내주어도 돌아오지 않는 사랑에 슬퍼하던 유년시절을 기억하며 떠올려봤자 아무 소용도 없다는 염세적인 생각으로 마무리했던가. 무엇이 되었든 눈물을 꾹꾹 참으려고 손톱으로 손가락을 눌렀던 기억만은 생생하다. 사랑을 받고 싶은 마음이 너무나 커서 사랑받을 사람의 특징을 검색하던 어린 시절의 나를 꼭 안아주고 싶었다. 그럼에도 제대로 된 사랑을 받지 못하고 방치된 나를 쓰다듬고 싶었다.


"그, 제가요."


쏟아지는 칭찬에 낯을 가리며 내 것이 아닌 듯한 기분에 휩싸인다고 솔직하게 터놓았다. 독자님은 사랑을 많이 받으면 곧 익숙해질 수 있으리라는 말을 더하셨다. 커다란 칭찬을 받아도 둑이 샌 듯 줄줄 흘러가 이내 칭찬을 모두 잊고 혼자라 느꼈던 이유는, 충만한 애정과 관심을 흡수할 연습이 되지 않아서가 아니었나 싶은 마음이 떠오르자 억지로 어깨를 펴고 답했다. 아니에요를 맞아요로, 죄송을 감사로. 사랑을 주는 연습은 꼬박꼬박 했으면서 받으려는 연습은 제대로 하지 못한 나는 이렇게 천천히 사랑을 안을 연습을 시도했다. 어느 미래에는 능글맞게 그 칭찬은 제 것이라며 이제 알았냐는 투로 팔을 벌리고 환영하는 모습이 나오기를 고대하며 나는 아니…… 를 맞아…… 로 바꾼다. 겸손을 갖추겠다며 칭찬을 들어도 저절로 지워버리는 머릿속 장치를 부수고 메모장을 꺼내 기록한다. 칭찬과 사랑을 받았음을 선명하게 기록할수록 홀로 있어도 사랑 받은 장면이 떠올라 덜 외로이 잠에 들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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