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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요아 Mar 13. 2022

바닷속에 감춰둔 설움


가장 처음 기억하는 설움은 엄마가 잠을 자는 나를 내버려 두고 동생과 단둘이서 좋아하는 콤비네이션 피자를 외식으로 먹고 왔을 때였다. 그때는 눈물을 펑펑 흘릴 정도로 그게 그렇게 서러울 수가 없었는데, 머리가 크면서 덩달아 새롭게 생긴 서러움을 곱씹으면 그때의 서러움이란 얼마나 애틋하고 귀여웠나 생각한다. 곁에 친구들이 분명하게 있어도 이유 모를 고독을 느끼는 서러움과 애써 쓴 글을 아무도 읽어주지 않는다는 서러움과 자주 칭얼거린다는 이유로 이별을 고한 연인을 향한 서러움은 미안하다며 엄마가 건넨 식은 피자 두 조각을 먹는 서러움과 결이 달랐다.


이야기를 갑자기 사랑으로 돌리자면 신기하게 나는 번번이 차이는 쪽의 입장을 당해왔는데, 다툼의 원인은 대개 설움을 참지 않고 제때 표현하는 나의 태도에서 기인했다. 혹독한 애정결핍과 분리불안을 앓은 나는 연인이 친구를 오랫동안 만나고 있으면 나 없이도 재밌게 시간을 보낸다는 사실에 서러웠다. 나를 사랑한다면 친구를 그만 만나고 나를 보러 오라는 강압적인 태도를 취한 것도 서러움을 제때 표현하는 방식이었다. 유독 특출나다고 느낀 내 설움은 우정에도 적용되었다. 이렇게 세 명이 친한데 나를 뺀 두 명이 신나게 노는 사진을 보내면 질투를 넘어서 화가 솟았고 눈물이 났다. 외로웠으며 이런 설움을 느낄 바에는 아예 모든 지인과 연을 끊는 게 나으리라는 확신을 했다.


서러움은 숨기는 쪽이 더욱 안전하다는 결론이 내려진 후로 주체 못 할 서러움을 보관하는 방법을 골랐다. 스스로 그걸 바닷속 설움이라 불렀다. 마음이라는 바다 안에 서러움을 감춰두자는 뜻이었다. 작게는 밥을 사는 것부터 크게는 인연을 맺고 끊는 데까지 서러움을 배제하고 선택지를 골랐다. 설움이 잘 숨겨질수록 미련 없이 호쾌하다는 성격이 칭찬받았다. 가끔 홀로 동굴에 들어가지만 시간이 흐른 뒤 동굴에서 나오면 여느 때보다 밝고 명랑한 사람이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졸업요건을 마치지 못해 수료 상태인 나를 두고 친구들이 졸업 사진을 따로 찍었을 때에도 서러움을 감췄다. 바라던 기업의 최종 면접에서 떨어졌을 때도 서러움을 덮고 무덤덤하게 넘겼다.


그러나 내가 나를 사랑하는 만큼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자 이제껏 내가 쌓아둔 설움을 감추는 법이 까맣게 잊혔다. 애인의 태도에서 나를 속속들이 살피고 애정하는 마음이 몸 곳곳에 배어 있다는 걸 알면서 지도를 같이 봐주지 않는다거나 카페를 함께 잘 찾지 않는다는 몇 개의 태도를 걸고넘어졌다. 다른 친구였다면 충분히 해중에 숨겨도 될 만한 서러움인데 이상하게 이 사람 앞에만 서면 울컥거렸다. 예쁜 옷을 사주지 않으면 누가 보든 말든 마트에 드러누워 울며 떼를 쓰던 어릴 적의 나처럼 혼자 서러움 파티를 열었다. 결국 데이트를 끝내고 집에 와서는 서러움을 일일이 고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애인은 당황스러워하는 듯했다. 그도 그럴 게, 낮에는 손잡고 즐겁게 수다를 떨었으면서 헤어지고 밤만 되면 이게 조금 아쉬웠어, 라고 말하는 모습이 나라도 혼란스러울 것 같았다.


연애라는 게 이렇게 어려울지 몰랐어, 라 말하는 애인에게 그럼, 쉬울 줄 알았어? 하며 쏘아붙이듯 묻는 내 모습에 진절머리가 나서 오늘 아침에는 비 오는 나른한 주말임에도 불구하고 눈을 깜빡이며 괴로워했다. 그나마 다행인 사실은 지금 친구들과 놀고 있는 애인에게 나를 사랑한다면 이제 그만 헤어지고 곧바로 집으로 가서 나와 통화하라는 이기적인 이야기를 하며 사랑을 증명하라고 강요하지 않는다는 것. 나는 대인기피증이 다시 피어올라 좋아하는 사람을 자유자재로 만나지 못할 만큼 마음이 다시 힘들어졌는데 당신은 어떻게 편안할 수 있냐는 이기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는다는 것. 표해야 할 설움과 표하지 말아야 할 설움을 차곡차곡 구분해 바닷속에 담는다. 가끔 둥둥 떠오르는 설움이 무서워서 나는 노를 들고 바다를 탈출하기 위해 애를 쓴다. 손에 힘을 준다. 더는 노를 젓지 않아도 될 섬이 나타나기를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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