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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요아 Mar 24. 2022

우울에 초치기 전문


우울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지만 적어도 내 경우만큼은 의지의 문제라 믿었다. 땀이 흠뻑 나서 씻지 않고서야 못 배기는 운동을 하면 가라앉은 기분이 조금 더 올라오리라고, 크게는 내적 댄스를 추거나 작게는 흥얼거릴 수밖에 없는 리듬감 있는 음악을 들으면 울적한 순간은 가볍게 넘어가리라고 생각했지만 이번 기회에 아니었다는 걸 배웠다. 의사 선생님이 말했다. 요아 씨의 우울이 예상보다 오래가네요. 조울증 약도 잘 통하지 않는다던 그의 말에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결국 우울에 효과가 있다는 식욕억제제를 처방받았다. 절대 먹지 않겠다고 다짐한 식욕억제제를 손에 쥐고 한참을 골똘히 고민했다. 왜 살아야 하지?


어떻게 살아야 하냐는 대답은 무수히 많은 반면 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답은 없는 세상에서 나는 약을 입에 털어 넣고 드러누웠다. 플라시보 효과 때문인지 심심하면 무얼 먹어야겠다던 생각은 조금 사라졌지만 그렇다고 주야장천 비만 내리는 기분이 금세 맑아질 리 없었다. 돈을 쓰는 일조차 무의미하고 사람을 만나 깔깔대는 것조차 부질없다는 생각이 다시 들었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이제까지 우울증보다 조울증이 더 심각하다고 스스로 생각했지만 우울의 수렁에 어둑하니 깊이 빠져 있으니 둘 다 비교할 수 없이 심각하다는 판단이 들었다. 영영 나아지지 못하리라는 확신이 서면 그때야말로 헤어 나오기 어려운 문에 들어서는 기미였다. 앞으로 무얼 먹고살아야 할지 알지 못했고 일자리를 구하려면 서울로 가야 하기는 하는데 당최 서울로 향할 힘이 없었다.


이런 순간에는 핸드폰을 끄고 나를 지켜야 하므로 동굴로 들어가야겠다고 결심했다. 일정에 무리가 가지 않는 이상 핸드폰을 끄고 세상과 단절된 채 일주일만 침대 밖으로 나오지 않으면 작은 의욕이라도 샘솟지 않겠냐는 바람에서 기인한 결정이었다. 친구와는 가끔 연락하니 따로 말없이 잠수를 타도 상관없지만 꼬박꼬박 연락하는 애인에게는 상황을 설명해야 했으므로 퇴근을 준비하는 그에게 뜬금없이 연락했다. 이만 동굴에 들어가야겠다고. 힘들거나 괴로울 때마다 나를 챙기지 않고 우울 속으로 깊이 들어가 버리는 성향을 아는 그는 계속 연락하자고 말했다. 내가 우울함에 초치기 전문이거든. 메시지는 조금 쉬고 집에 가서 통화로 마저 얘기하자. 그의 말에 촌스럽게 심장이 아렸다.


이제껏 동굴에 들어가겠다고 하면 전 연인들은 그래, 다녀와, 조금만 있다가 와, 푹 쉬고 와, 라는 이야기로 나를 보냈다. 그게 물론 잘못된 건 아니지만, 오히려 내 결정에 힘을 실어주는 응원이지만 스마트폰을 끄고 이불에 안착한 나는 그 응원을 새까맣게 잊은 채 세상에 홀로 남겨졌다고 청승을 떨었다. 날카로운 물건을 찾았고 어떻게 하면 세상을 빨리 떠날 수 있을지 각종 시나리오를 대입했다. 세상을 떠나는 것이야말로 이 고통과 우울에서 벗어날 유일한 방법이라고 느꼈다. 저물고 싶은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 하나는 모두에게 버림받아 쓸쓸히 혼자로 남겨지면 어쩌나 싶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상상이었다. 그러니 우울에 초치기 전문이라는, 조금만 기다리면 통화로 너를 꺼내 주겠다는 이상한 당당함에 매료될 수밖에 없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을지 모른다.


무사히 통화를 마치고 눈을 감자 이번에는 다른 걱정이 머릿속을 채웠다. 한 달이 채 되지 않은 날짜에 속절없이 사랑에 빠졌는데, 이렇게 의지할 수밖에 없이 튼튼한 그가 나를 떠나면 어떻게 버티겠냐는 위태로움이었다. 그때 몇 번이고 보았던, 최근에는 그와 함께 보았던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2003
깊고 깊은 바닷속, 난 거기서 헤엄쳐 나왔어. 그곳은 빛도, 소리도 없고 바람도 안 불고, 비도 안 와. 정적만 있을 뿐이야. 별로 외롭지도 않아,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그냥 천천히 천천히, 시간만 흐를 뿐이지. 난 두 번 다시 거기로 돌아가진 못할 거야. 언젠가 네가 사라지고 나면, 나는 길 잃은 조개껍데기처럼 혼자 깊은 바다 밑에서 데굴데굴 굴러다니겠지. 그것도 그런대로 나쁘지는 않아.


조제는 연인인 츠네오가 언젠가 자신을 떠날 순간을 그리며 잠든 츠네오를 옆에 두고 읊조린다. "언젠가 네가 사라지고 나면, 나는 길 잃은 조개껍데기처럼 혼자 깊은 바다 밑에서 데굴데굴 굴러"다닐 거라고. 여기까지만 보면 행복이 깨질까 두려운, 연인과 잘 만나고 있지만 혹시 모를 순간에 슬퍼하는 장면으로 보이지만 마지막 문장이 덧붙여짐으로써 대사는 완벽하게 완성된다. 그것도 그런대로 나쁘지는 않아.


우울에 초치기 전문이라던 그가 훗날 나를 떠날 순간을 상상한다. 상상만 했는데도 벌써부터 무기력과 불안이 찾아오는 느낌이지만, 그로 인해 깊고 깊은 바닷속에서 헤엄쳐 나오는 방법을 터득했으니 그것이면 되었다고 안도한다. 혼자 깊은 바다 밑에서 조개껍데기처럼 데굴데굴 굴러다녀도 그것도 그런대로 나쁘지 않다고. 이불을 머리끝까지 올리려다 턱 아래로 내린다. 이제는 애인이 옆에서 홀로 곤히 잠들어도 조제처럼 깨우지 않고 그의 숙면을 빌어줄 수 있을 것만 같다. 나는 외롭고 불안해서 도통 잠에 들지 못하겠는데 어떻게 너는 깊은 꿈을 꾸고 있냐는 투정을 부리지 않고서. 좀처럼 잠이 오지 않으면 눈을 감고 그저 누워 있는 것도 회복하는 방법이니 그렇게 해보라는 그의 말을 오래 곱씹으면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설령 모두 나를 떠난대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원대한 목표 없이 순간에 몰입하겠다는 마음으로 우울이라는 바다를 유영한다. 이것도 이런대로 나쁘지는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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